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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민주연대와 <오마이뉴스>는 세계 거대 여행 사업체들에 돌아갈 돈을 현지인들에게 주자는 취지의 '공정여행'을 널리 알리고자 '지금은 공정여행 시대를 기획했습니다. 공정여행족과 함께 여행을 하고 온 김현자 기자의 '차마고도' 여행기와 이정희 기자의 '내몽골' 여행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머지않아 해발 2700m의 이곳 루구후에 공항이 들어설 거란다. 루구후 첫째 마을과 루구후 호수 일부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머지않아 해발 2700m의 이곳 루구후에 공항이 들어설 거란다. 루구후 첫째 마을과 루구후 호수 일부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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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아이 책임 안 지는 남자

8박 9일간의 여행 중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은 루구후다. 그곳에서 만난 소수민족은 독특한 방법으로 사랑을 하고 '모계씨족사회'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모서인들. 이들을 '모쒀족'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중국 정부의 공식 명칭은 모서인이다. 현재 모서인은 대략 1만 명, 인구가 적어 소수민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이 주변의 소수민족들을 흡수한 것은 대략 50~100년 전쯤. 소수민족 사람들 중 중국에 흡수된 과정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들이 이번 여행을 통해 만나고 있는 소수민족들은 중국에 흡수된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과연 다행으로만 생각할까? 혹은 티베트나 신장위구르자치구처럼 독립을 꿈꾸는 소수민족들도 있지 않을까?'

지금 비록 중국에 흡수되어 있지만 자신들만의 문화를 가진 민족인데 중국인들 스스로 만든 규정에 의해 독자적인 민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모서인들을 만나러 가는 길, 생각이 분분하다. 아는 만큼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고 중국 소수민족에 대해 좀 더 많은 것들을 알고 갔더라면 좀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을 거라는 후회와 함께.

모서인들은 13세에 성인이 된다. 성인 남녀가 마음에 드는 짝을 만나는, 즉 눈이 맞는 것은 '등불야회(완회)'란 축제를 통해서다. 남녀가 어울려 노래 부르고 춤추고 놀면서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그 여자의 손바닥에 점을 찍거나 선을 그어 구애를 하는데, 여자가 이를 받아들이면 남자는 여자의 집으로 찾아가 사랑을 나누게 된다. 여자가 남자의 물건을 문밖에 걸어 이별을 말할 때까지.

그런데 해가 뜨기 전, 그러니까 남들의 눈에 띄기 전에 남자는 여자의 집에서 나와야만 한다. 또한 누군가와 사랑의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또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가져선 안 된다. 그리고 남자는 둘 사이에 태어나는 아이와 여자를 책임지지 않는다. 아이는 여자의 가족들이 키우는데, 누군가의 연인이자 아버지이기도 한 여자의 오빠나 남동생은 아버지가 해줘야 할 것들을 가르치거나 해준다. 모서인들의 모계씨족사회는 이렇게 유지되어 왔다. 

중국인들은 모서인들의 이런 사랑을 '저우혼(走婚)' 혹은 '야사혼'이라 부른다. 하지만 틀린 말이다. 사랑은 나누지만 우리와 같은 형태의 결혼을 하지 않는 그들의 사랑에 결혼을 뜻하는 '혼인할 혼(婚)'자를  쓰는 것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모계씨족사회에서 한 집안을 이끄는 할머니를 다부라 부른다. 헤어질 때 우리의 안전한 여정을 기도하겠다던 루구후 모서인 객잔의 다부.
 모계씨족사회에서 한 집안을 이끄는 할머니를 다부라 부른다. 헤어질 때 우리의 안전한 여정을 기도하겠다던 루구후 모서인 객잔의 다부.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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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계사회가 오히려 합리적일 수도

이 글을 쓰다가 모서인과 중국의 소수민족에 대해 좀 더 알아볼 것이 있어 검색을 했더니, 어떤 사람이 '남자 맛을 아는 모서인 여자가'란 말로 모서인 여자들이 이 남자 저 남자 바꿔가며 성을 즐기는 것처럼 쓰고 있었다. 또한 웃기게도 모서인들의 사랑을 잘못 이해한 중국인들 사이에 최근 필요에 의해 관계를 맺는 것이 유행한다나! 저우혼이란 명칭으로.

중국인들을 비롯한 외부인들이 모서인들을 이렇게 바라보는 것에는 중국 정부와 중국 방송의 책임이 크다. 소수민족들을 이용해 돈벌이에 미친 중국 정부는 '대 샹그릴라 계획'을 발표, 최근 몇 년 전부터 루구후를 적극 홍보하는데, 방송을 통해 루구후와 모서인들의 이런 사랑을 '저우혼'이라는 말로 소개하면서 대놓고 문란하다고 표현했다니 말이다.

빗나가는 이야기인데, 최근 루구후와 모서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점차 많이 알려지면서 중국 정부는 자기들만의 주관만으로 모서인들을 나시족과 같은 민족이라고 단정 짓는단다. 모서인들이 자신들의 조상 내력까지 명확하게 밝히며 극구 아니라고 하는데도 말이다.

왜? 옛날부터 나시족들의 왕도였던 '리장 고성'이 1997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에 따라 유명해진 후 찾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이 둘을 연관시켜 놓으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좋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를 자기네들의 필요에 맞추는 것처럼, 루구후의 모서인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자기네들 목적에 따라 이처럼 끼어 맞추는 것이다.

여하간, 그 누군가를 자신의 잣대나 견해만으로 바라보고 판단하여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정말 그런 것처럼 단정 짓고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다수의 인류가 지금과 같은 형태의 결혼을 하고 있지만, 대다수가 선택했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모서인들이 이런 사랑을, 모계씨족가족 구성을 선택한 이유가 분명 있지 않을까.

솔직히 어떤 면에선 모서인들의 사랑과 가족 구성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결혼으로 묶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없을 것이며, 혼수가 적다고 상처받는 일도, 가난한 남성이 돈이 없어 독신으로 늙어가는 일도, 바람을 피워 배우자에게 상처를 남기는 일도, 고부 간의 갈등도 없을 것 아닌가. 아니 무엇보다  사랑의 상대를 돈이나 명예보다 인간 본성(매력 등)에 충실해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루구후 가는 굽이굽이의 길 그 시작점인 여령십팔만.
 루구후 가는 굽이굽이의 길 그 시작점인 여령십팔만.
ⓒ 국제민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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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보다 훨씬 높은 해발 2700m에 있는 고원 호수 지역

리장(여강)에서 루구후까지 버스로 대략 7~8시간. 사진은 해발 3000m를 오르내리는 굽이굽이의 산길, 그 시작점인 여령십팔만이다. 사진 속 까마득한 산길을 몇 시간이고 달려야만 루구후에 닿을 수 있다. 워낙 높은 산을 돌려 난 길이라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다. 그래도 루구후 가는 길은 지겹지 않았다. 이국적인 풍경에 볼 것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운이 정말 좋았다. 무너진 흙더미와 무너진 도로를 만났지만 그 부근에 우회할 수 있는 길이 나 있었기 때문. 도로에서 노는 아이들과 방목해 기르는 말이나 소, 염소 무리들이 도로를 벗어나길 기다렸다가 달리길 열 번 남짓. 그 정도가 우리를 방해한 전부였다. 첩첩산중에서 차가 고장 나거나 빠지거나, 산사태로 무너진 흙과 돌을 치우고 가야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별일 아니란다.

점심을 서둘러 먹고 리장을 떠난 우리가 루구후 세 번째 마을인 '리싸이' 쨔우·쨔시 형제 집에 도착한 것은 큼지막한 별들이 후드득 쏟아져 내릴 듯 총총한 시간. 8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예정에 없던 농무시장과 이족의 집, 티베트 불교의 흔적이 남은 곳에 잠시 들렀으며, 루구후에서 길을 잃고 헤맸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 빨리 도착한 것이다.

윈난성과 사천성의 경계에 있는 루구후는 해발 2270m에 위치한 백두산보다 훨씬 높은 해발 2700m쯤에 있는 고원 호수 지역이다. 호수 둘레에 그리 많지 않은 가옥들이 띄엄띄엄 마을을 이룬다. 이들의 전통가옥은 나무로 지은 귀틀집인데, 중국 다른 지역의 집들처럼 태양열 기구가 대부분의 집에 설치되어 있고 TV위성 안테나도 흔하게 설치되어 있다.

루구후에서 하룻밤을 잔 우리는 아침을 먹고 모서인 전통가옥에 찾아가 모서인 할머니가 아침마다 자신의 신에게 치성 드리는 것도 보고, 절대 꺼지지 않도록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하는 한 집안의 불씨, 전통가옥의 여러 가지 상징들, 장례 절차, 라마승의 역할 등, 모서인들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서도 자세히 들었다. 지면상 모두 풀지 못함이 아쉽기만 하다.

그리고 집 앞에 있는 루구후 호수로 달려가 그들의 전통 배인 돼지구유배(주차오선)를 타고 뱃놀이를 한 뒤, 루구후 주변 여러 소수민족들이 주로 찾는 용닝 시장과 윈난에서 두 번째로 큰 티베트 불교사찰 자메이사(찰미사)를 탐방한 후 루구후로 돌아왔다. 조금 먼 곳으로 마실 나가 오후 내내 실컷 놀다가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루구후 호수에서의 뱃놀이
 루구후 호수에서의 뱃놀이
ⓒ 국제민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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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구후 주변의 여러 소수민족들이 이용하는 용닝시장에서 만난 돼지. 한마리가 아니었다. 잠깐 서 있는 동안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들을 주워먹고 다니는 돼지 세마리를 봤다. 여러 마리의 닭도 봤다. 이들은 알아서 집에 들어간단다^^
 루구후 주변의 여러 소수민족들이 이용하는 용닝시장에서 만난 돼지. 한마리가 아니었다. 잠깐 서 있는 동안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들을 주워먹고 다니는 돼지 세마리를 봤다. 여러 마리의 닭도 봤다. 이들은 알아서 집에 들어간단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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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나눌 짝 찾는 축제...우린 한패가 되어 놀았다

참으로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낀 루구후에서의 두 번째 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저녁을 서둘러 먹은 후 5분 남짓 걸어 모서인들이 춤추고 놀며 사랑을 나눌 짝을 찾던 등불야회를 보러 갔다. 아니 즐기러 갔다. 우리가 갔을 때만해도 한산했던 마당이 조금 후 등불야회를 보러 온 중국 관광객들로 가득 차 북적이기 시작하자 등불야회가 시작됐다. 

모서인들은 마당 한가운데 불을 놓고 우리의 강강술래처럼 둥글게 돌며 춤을 추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들이 각각 패를 지어 남자는 발을 구르고 여자는 손뼉을 치며 놀기도 했는데, 언뜻 이들의 춤은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관광객들에게 두세 가지 정도의 스텝만 보여주기 때문에 그리 보이는 것. 실제로는 수십 가지의 스텝을 복잡하게 즐기며 놀았단다.

등불야회에서 부르는 노래는 구애 혹은 사랑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춤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모서인들과 관광객들이 공연배우와 구경꾼으로 나뉘었는데, 나중에는 모두 섞이어 한패가 되어 놀았다. 우리 일행도 모서인 전통복장을 입고 그들과 섞이어 놀았다.

등불야회가 끝나고 보니 인근에 관광차 5대와 승용차 여러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세 번째 마을의 이 축제가 외부인들에게 알려지자 바깥세상과 훨씬 가까운 첫 번째 마을에서도 얼마 전부터 재현하고 있는데, 극장에서 관람만 하는 형태라 함께 어울리고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 마을보다 훨씬 먼 이 마을로 오고 있기 때문이다.

루구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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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자

"완회(등불야회)가 열리는 날에는 집집마다 무조건 두 명씩 참여를 해요. 축제로 번 돈을 한 달에 한번 공평하게 마을 사람들이 나누는데, 가계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리장이나 인근 도시로 돈 벌러 나가 고생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마을로 돌아오고 있다고 하네요. 객지에서 고생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죠."

축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여행을 이끌고 있는 국제민주연대 미성씨가 등불야회에 얽힌 이야기를 묵묵한 감동이 실린 목소리로 짧게 들려줬다. 미성씨의 말을 들으며 어린 시절 자주 봤던 정경들이 떠올라 시큰해졌다. 먹고 살기 힘들던 70~80년대 돈 벌러 객지로 나가 명절 같은 때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안고 돌아오곤 하던 동네 언니들이 떠올라.

최정규 작가의 권유로 재현한 마을 축제, 대박 났네

불과 3년 전만 해도 등불야회는 모서인들만의 작은 축제에 불과했단다.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짝을 찾는 젊은이들이 점차 늘면서 그들 사이에서도 차츰차츰 잊히고 있는. 어느 날 마을에 낯선 이방인이 들어와 주기적으로 여행자들과 함께 마을을 찾을 테니 그들에게 보여줄, 함께 즐기며 놀 수 있는 전통문화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청년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마을을 찾는 외부인이라곤 어쩌다 한두 명, 그것도 루구후 호수를 바라보며 스쳐지나가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와서 잠을 자고 머물며 우리들이 춤추고 노는 것을 보여주면 돈을 주겠다고? 정신 나간 사람이 공연히 해보는 소리 아냐?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이때 낯선 이방인에게서 진정을 느낀 짜빠· 짜시 형제가 마을 청년들을 설득해 오늘날과 같은 등불야회를 재현하게 됐고, 돈 나올 구멍이라고는 도무지 없던 이 마을을 살리는 주요 수입원이 된 것이다. 그 이방인이 국제민주연대 공정여행 프로그램 개발도 하고 공정여행을 직접 이끌고 있는 최정규 작가. 그때 그는 당시 외부인이 거의 가지 않는 낯선 루구후를 하루 꼬박 걸려 찾아갔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발걸음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들의 지나친 이기라고 생각해요. 보셔서 알겠지만 마을에 TV가 들어와 있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이들도 알거든요. 그럼에도 어쩌다 찾는 여행자들을 위해 가난하고 불편해도 참고 살아달라는 것은 자기들 입장만 생각하는 거지요. 이들에게는 아이들의 미래가 달린 일인데 말이에요."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높이인 해발 2700m의 루구후 주변 산을 깎아 다리를 놓고 있는 모습이다.  달리는 차안에서 찍어 흐리다. 멀리 보이는 것은 루구후 호수.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높이인 해발 2700m의 루구후 주변 산을 깎아 다리를 놓고 있는 모습이다. 달리는 차안에서 찍어 흐리다. 멀리 보이는 것은 루구후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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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구후는 외부 세상에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그곳을 찾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제민주연대 공정여행팀이 거의 유일하다. 루구후에서 만난 여러 흔적들은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이 때문인지 다음날 아침 그렇지 않아도 눌러 앉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루구후와 루구후 사람들이 좀 더 특별한 정-뗄 수 없는, 형제와 같은-과 감동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이런 루구후를 아쉽게 떠나와야만 했다. 최근 중국 정부는'대 샹그릴라 계획'을 발표했는데 때문인지 루구후 주변 곳곳이 마구 파헤쳐지고 있었다. 내년쯤 공항이 들어설 거란 소문도 있다. 공항이 들어서면 비행기를 이용해 루구후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점점 많은 자본이 들어오고, 자연은 파괴되고, 현지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거의 없고 등, 여타의 관광지들이 겪는 상처를 루구후도 겪을 텐데….


태그:#공정여행, #국제민주연대, #루구후, #모서인, #자메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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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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