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위원회 조합원들이 대부분 상경투쟁을 떠난 14일, 일요일의 85크레인 맞은편 인도에는 가족들이 유난히 많아 보였다. 거기서 크레인 중간을 지키고 있는 4명의 사수대 중 3명의 조합원 가족들을 만났다.
박성호 조합원(정리해고철폐투쟁위원회(정투위) 해고자 대표)은 1988년에 한진중공업에 입사해 1991년 고 박창수 위원장 집행부 때 교선부장을 맡았다. 박창수 위원장 의문사 규명 등 장례투쟁을 하다가 수배받던 시절 해고됐고, 1년 수배 끝에 결국 구속됐다. 1994년 전국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시절 한진중공업 LNG 선상 점거파업 때 해고자 신분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구속됐고, 1996년 노동조합 집행부가 구속돼 가족대책위 투쟁 중 함께 싸우다가 세 번째 구속됐다.
1991년 해고돼 10년 넘도록 해고자였지만 노동조합 조합원 신분으로 함께한 시간이었다. 그런 그가 2003년 김주익 지회장이 목숨을 끊었을 때 회사와의 싸움 끝에 2003년 12월 1일 13년 만에 복직됐다. 그의 아내 정만심씨는 그 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서울에 있는 조남호 집앞에까지 가서 싸우더라도 우리 힘으로 복직하고 싶었죠. 서울서 싸울 거라고 보따리 싸서 간 지 20일 만에 김주익 지회장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다시 부산으로 왔어요. 그리고 김주익 지회장 돌아가시고 복직이 된 겁니다. 김주익 지회장 그리 될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 분이 돌아가시고 조합원들이 싸웠지만 그 목숨 값으로 복직이 됐다고 볼 수도 있죠. 그런 힘을 빌려서 복직될 거라고는 생각도 않았던 것입니다." "조남호 회장이나 인간 박성호나 목숨은 똑같아"
때로는 아내로 때로는 동지로 힘든 싸움끝에 복직되었는데 2011년 정리해고 통보 받았을 때 가족으로서의 심정은 어땠을까.
"사람이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이뤄낸 것인데 이렇게 똑같은 일을 당하니까 황당하죠. 우리가 힘 없으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가 싶기도 하고 분노스럽습니다."오랜 기간 노동조합 활동을 해온 남편에 대해 정만심씨는 "수시로 싸웠다"고 털어놨다.
"자식을 키워야 하고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사람들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고민이 들때마다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억울하고 더러워서 산 속에 들어가 세상과 결별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죠. 누구나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김진숙 지도위원도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금까지의 길을 선택했으리라 생각해요."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있으면서 한진중공업과 정리해고에 관심이 모아지고 희망버스가 세 차례 다녀갔다. 그러나 조남호 회장은 정리해고 철회에 대한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가족들은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조남호 회장이나 인간 박성호나 목숨은 똑같이 하나입니다. 돈을 많이 가졌다고 목숨이 더 필요하고 더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남편은 아이들한테는 하나밖에 없는 아빠 아니겠습니까. 김 지도나 싸우는 사람들 보면 눈물겹습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2003년 김주익 지회장 당시, 아이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죠. 그때도 조남호 회장이 약속 뒤집는 바람에 김주익 지회장이 크레인에 올라갔는데 지금도 똑같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 살기 좋은 건 잘 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노동자들에게 너무 폭력적이지 않습니까. 한진은 조남호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열심히 일했습니다. 제가 아파도 남편은 일하러 나갔습니다. 깨끗하게 살았고 옳은 길을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노동자가 아니라도 세상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을 존중하고 함께 지켜주는 사회였으면 합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싸우다 목숨을 잃고, 살아남은 죄로 어렵게 살아가는 그의 가족들, 전국에서 너무 많이 봤습니다. 그분들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가장을 잃고 형제를 잃고 살아가는 분들의 삶을 누가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내 남편이 크레인에 있는 지금 내가 그 삶을 짊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진숙 지도위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조합원들이 김 지도에게는 가족이고, 그래서 이 싸움 꼭 이겨야 합니다."누구는 연장해주고, 누구는 나가라 하고... 이런 식으로 갈라놓나?
한진중공업 울산공장에서 지난해 7월 부산으로 전환배치됐다 지난 1월 정리해고된 신동순 조합원의 아내 조은순씨는 사택에서 나가라는 독촉장을 두 번이나 받았다.
"작년 여름, 남편이 부산으로 배치전환 되고 나서 저도 12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진중공업 사택으로 이사를 들어갔습니다. 가족이 다함께 이사해야 사택 입주가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울산 살던 거 다 정리하고 갔는데 간 지 6개월도 안돼 정리해고 통보서를 받았습니다. 7월 31일 사택에서 나가라는 독촉장을 두번 받았습니다. 희망퇴직서를 쓴 사람들은 회사측에서 2년 더 살 수 있도록 연장해줬다고 하더라고요. 함께 이사왔던 사람들인데 이런 식으로 사람을 갈라놓는 회사한테도 화가 나고 억울해서 도저히 나갈 수가 없습니다."조은순씨는 억울한 심정을 다 말하기도 전에 저녁 집회가 끝나고 급히 집으로 갔다. 군대 간 아들이 휴가를 나왔기 때문이다. "즈그 아버지랑 같이 있음 얼마나 좋겠어요, 아빠는 움직일 수 없으니 아들이 휴가 나오자 마자 이곳(85크레인)에 와서 인사 하고 갔습니다. 아들이 군에서 고생했는데 저녁밥이라도 제 손으로 지어 줘야죠."신동순 조합원은 허리 디스크가 있어 크레인에 올라가기 전 큰 병원에서 MRI 검사를 한 결과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진통제를 한 달분 가지고 올라갔는데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있다며 지금쯤 약이 다 떨어졌을 거라고 건강을 걱정했다.
그렇게 신동순 조합원의 가족이 자리를 뜨고 잠시 후에 사수대 박영제 조합원의 가족이 왔다.
6월 27일 행정대집행 이후 크레인 중간에 선 지 50일, 가족들은 무엇보다 사수대의 건강이 걱정이다. 사수대 중 한 명은 한여름 무더위에도 옷을 갈아입지 못하다가 인권위가 왔을 때 2주만에 옷을 갈아입기도 했고, 샤워를 할 수 없어 물티슈로 땀을 닦아냈다. 때로는 먹을 것도 제대로 올라가지 않고 전기도 공급되지 않아 가족들의 애를 태우고 있는데 최근 노사 간담회를 하고 있는 중에는 밥과 반찬이 그나마 잘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박성호 조합원의 아내 정만심씨는 애가 탄다.
"남편의 피부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이번 정리해고 투쟁으로 2009년부터 싸우면서 속에 있는 화가 피부로 솟아 나더라고요.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크레인에 있으면서 심해졌는데 며칠 전 금속노조 김호규 부위원장과 의료진이 올라가서 양약 처방을 받았어요. 피부 상태는 그후 나아졌고 그때 물이 다섯 동이 올라가서 열흘 만에 머리를 감았습니다. 최소한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것은 해결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감옥에 가도 이것보다는 낫지 싶어요. 자기들 기분 내키면 밥 잘 올리고 기분 수틀리면 며칠 굶기며 밥을 헤집어 검사하고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한진 용역들이 크레인에 밥을 올리면서 그렇게 하는 것은데 이건 한진중공업 회사의 입장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싸우는 사람들 처절...침이라도 놓아주고 싶어 온다"
'코리아타코마'를 한진에서 인수하는 과정에서 해고된 나현균씨는 현재 한의사로 주말에 85크레인을 찾아 조합원들과 가족들 건강을 챙기기도 한다.
그는 "노동자의 생존권이 언제라도 버려질 수 있는 사회를 산다는 것이 부끄럽다. 거기 맞서서 싸우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처절하다. 돈만 벌면 제일이라는 생각, 정권을 잡은 사람은 돈 가진 사람들만 지켜내면 된다는 생각이 안타깝다. 마음에 위로라도 되고 싶고 침이라도 놓아주고 싶어서 온다"고 했다.
정작 건강이 걱정되는 회사 안 크레인에는 들어갈 수 없고 85크레인 건너편이나 정투위 사무실에서 진료를 했다.
2차 희망버스 때 차벽 앞에서 박성호 조합원의 아내 정만심씨와 딸 예슬 양이 경찰에 연행되는 일도 있었다. 아버지가 20년 넘게 투쟁하고 있고 그 현장에 아들과 딸이 있다.
우리보다 더 힘든 비정규직 사업장에 희망버스가 가야 하는데 한진에 희망버스가 세 차례나 와줘서 고맙고 미안하다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공장 출입이 통제돼 박성호 조합원을 직접 만날 수 없었지만, 취재수첩에는 지난 6월 공장 안에서 박성호 조합원에게 들었던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역사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민주노조 만들다가 대공분실에 끌려가기도 했던 김진숙 지도위원은 해고돼 아직도 복직되지 못했고, 전노협이 만들어지고 박창수 열사가 의문사를 당했던 시기였어요. 전노협, 이름만 들어도 벅찬 시절이 있었지요. 김진숙, 박영제가 1세대, 고 박창수 열사가 2세대, 고 김주익 지회장이 3세대, LNG 선상파업을 벌였던 조길표 지회장이 4세대, 2003년 김주익 열사 투쟁을 함께했던 차해도, 김인수가 5세대, 그리고 30대 젊은 나이에 2011년 정리해고투쟁하는 친구들이 6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크레인 위에 목숨을 걸고 올라가야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행정대집행 있기 전전날, 나이 들면 고향 남해로 가 살고 싶다던 박성호 조합원은 그날도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역사를 설명하며 크레인과 함께 새벽을 맞이하고 있었다.
8월 15일, 김진숙 지도위원 크레인 농성 222일째, 중간 사수대 농성 50일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울산노동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