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새로운 시위문화 ▲시민과 노동운동의 조우 ▲삶의 치유 ▲진보의 길 찾기 ▲자신감의 회복희망버스는 어떻게 2008년 '촛불'에 이어 2011년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을까. 16일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집단토론회 '왜 희망버스인가'에서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은 이러한 여섯 가지 키워드로 '희망버스 현상'을 설명했다.
김규항 발행인은 "지금까지의 시위문화가 머리띠를 두르고 조끼를 입은 남성들에 의한 딱딱하고 군사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 옳고 그름을 떠나서 시민과 청년세대로부터 많은 괴리감과 거부감을 들게 했다"면서 "희망버스를 통해 이런 것들이 많이 극복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쁨과 사는 맛 회복하는 치유의 여행, 희망버스"
희망버스의 시작은 '교감'이었다. 김 발행인은 "'고공농성'이 노동운동 가운데서도 가장 지사적인, 그로인해 시민과의 소통과 교감을 얻기 어려운 시위방식임에도 불구하고 김진숙 동지가 트위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 보여준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도 유지되는 유쾌함, 부드러움'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면서 일반 시민과의 소통과 교감에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희망버스 탑승객들이 보여준 시위문화 역시 '지사적인'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 발행인은 "희망버스는 '깔깔깔'이라는 제목이 드러내듯이, 명망가 중심의 권위주의적인 분위기가 아닌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시위문화를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일상과 분리된 특별하고 지사적인 싸움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에서 재미를 주는 소풍 같은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발행인은 1차 700여 명, 2차 1만여 명, 3차 1만5000여 명을 거치면서 점점 더 새로운 시위문화가 주류를 이루는 양상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시민과 노동운동의 조우' 또한 희망버스를 설명하는 주요한 키워드다. 김 발행인은 "희망버스를 통해서 시민들은 자신이 바로 노동자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정리해고 문제가 내 문제, 내 아이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재인식하고 연대의 기쁨을 맛봤다"면서 "시민들이 노동자인 자신의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의 변화를 위한 운동과 조우하고, 그 운동의 주인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변혁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 발행인은 희망버스를 통해 "소유하고 승리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사회에서 시민들이 '사람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꽤 오랜만에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 이후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되면서 소박한 신념이나 삶의 원칙들이 무너졌던 시민들이, 자신들과 비교했을 때 비할 수 없는 극한 현실에 있는 김진숙 동지가 당당하고 유쾌하게 인간적 품위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서 강박과 불안으로부터 역설적으로 해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돈이 아니라 사람, 경쟁이 아니라 연대, 기쁨과 사는 맛을 회복하는 치유의 여행으로서 희망버스를 타고 있다"는 것이다.
희망버스는 '정권교체를 넘어선 진정한 사회변화'를 위해 진보가 나아가야할 방향 역시 제시하고 있다. 김 발행인은 "이명박 정권과 대립하고 있는 세력을 진보개혁세력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가운데 '개혁세력'은 현재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현실과 관련해서 분명히 책임이 있는 장본인"이라면서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집권하는 동안 신자유주의, 반노동 정책으로 일관해놓고서는 지금에 와서는 이명박 정권에 모든 책임과 원인을 돌리면서 재집권플랜을 가동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희망버스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인 정동영 민주당 의원을 언급하며 "한진과 이명박 정권만 비판할 게 아니라, 자신이 속해 있는 민주당과 개혁세력의 친자본적이고 반노동적인 정책에 대해 불이익을 감수한 싸움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발행인은 희망버스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자신감 회복'을 들었다. 김 발행인은 "1만5000명이라는 숫자가 제도정치에서 그렇게 큰 의미를 갖고 있는 숫자는 아니지만, 이 1만5000명이 비현실적인 주제를 가지고 함께 외치면서 '우리의 정치를 우리가 만들 수 있다, 다른 세상을 우리가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더 쉽고 재미있게, 희망버스 계기로 노동운동 프레임 변해야"
이날 토론회에서는 희망버스를 통해 나타난 새로운 시위문화를 기존의 시위문화와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 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토론회 사회는 손석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이사장이 맡았다.
희망버스 탑승객 김성산(대학생)씨는 "노동집회에 한 번도 참석해보지 않았던 것은 '저 사람들 왜 모여있지', '이상한 노래만 부르네' 하는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라면서 "이번 3차 희망버스를 타면서도 민중가요나 구호들, 구시대적으로 보이는 깃발들에 거부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발적으로 희망버스를 탔던 저도 거부감을 느끼는데 지나가는 부산시민들은 어땠을까"라면서 "물론 그러한 노래나 깃발에 깃들어있는 가치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싸우는 게 이기기 위해서라면 일반 대중들의 눈치도 봐야하는 것 아닐까"라고 노동운동의 '이미지 개선'을 주문했다. "희망버스를 계기로 노동운동의 프레임이 크게 변화해서, 보다 대중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또 다른 희망버스 탑승객인 박효미(어린이책 작가)씨 역시 김씨의 이러한 주장에 동의했다. 박씨는 "시민들이 희망버스를 타면서 어떤 희망의 아이콘을 얻었다고 하지만, 일반시민들이 더 많이 참석해야 변화할 수 있다"면서 "쉽고 재밌는 시위를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아이들도 어른들도 참여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 오는 시위문화를 만들어 가면 좋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김규항 발행인은 "웃으면서, 문화적인 행사만 하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왜 쇠파이프를 들겠는가, 그런 분들의 투쟁 덕에 그나마 안락하게 살아왔던 분들이 자신의 정서적 거부감 때문에 모든 것을 구문화로 치부한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며 "양자가 상보해서 새로운 운동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덧불였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기존의 노동운동'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금속노조 소속 김형우 부위원장도 참석했다. 1차, 2차, 3차 희망버스 모두 함께했다는 김 부위원장은 "우리가 집회를 하면 꼭 군대 같다, 네 줄로 서라, 다섯줄로 서라, 똑같은 말 계속하고, 당장 쳐부수고 싶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웃음)"라며 "희망버스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의 예측할 수 없는 재기발랄함을 보면서 '조직된 노동자들이 바뀌어야 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부위원장은 노동운동 진영이 희망버스와 보다 적극적으로 결합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답답함을 나타냈다. 그는 "2008년 촛불 당시 노동조합이 결합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면서 "촛불 때도 그렇고, 지금 희망버스도 그렇고 꼭 노동조합이 주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시민들이 키워놓은 판에 얼른 들어가서 뭉쳐야 희망이 커질 수 있다, '노조가 주도 안 했는데 왜 끌려가야해'라는 구태의연한 사고에서 벗어나 뭉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