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이란 생각은 안했어요. 소일거리로 시작했죠. 주말이나 휴일에 오가면서 일하면 괜찮겠다 싶었죠. 거기서 난 수확물은 이웃과 나눠먹고."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 율곡리에 사는 조경현(57)씨의 얘기다. 귀농 3년차를 보내고 있는 그는 처음엔 주말농장을 그렸다. 광주광역시에서 30년 넘게 자영업을 하면서 담양에 땅 3300㎡를 산 것도 이런 연유다. 2003년이었다. 밭에 복숭아를 심은 건 정말 우연이었다.
"어느 날 아침 텔레비전에 복숭아 농사꾼이 나왔는데요. 그 사람 말이 귀에 쏙 들어오더라구요. 복숭아 재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조씨는 그 길로 복숭아 농사꾼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묘목 2000주를 구입했다. 복숭아 재배 요령도 들었다.
"복숭아 묘목을 심었죠. 재밌었어요. 내가 먹을 과일을 직접 심어서 가꾼다는 게. 틈만 나면 찾아가 일을 했죠. 힘든 줄 모르고."
이렇게 그는 5년 동안 주말마다 과원을 가꾸러 다녔다. 복숭아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는 게 큰 기쁨이었다. 주렁주렁 열매가 달리고 토실토실 과실이 튼실해지는 건 큰 보람이었다. 도시에서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도 와서 일을 도왔다. 가지치기와 봉지 씌우기도 거들었다. 수확 때가 되면 도시락을 싸들고 왔다.
"일하는 게 재밌었어요. 여러 사람이 도와주고. 수확한 과일을 나눠먹는 것도 흐뭇했죠. 받는 사람도 고맙다고 하고. 나중에 맛있게 먹었다고 얘기하고. 농사짓는 보람을 제대로 느꼈죠."농사에 재미를 붙인 조씨는 아예 짐을 싸서 귀농을 했다. 2008년이었다. 아직 귀농 초년생인 셈이다. 하지만 그의 복숭아는 벌써 소문이 자자하다. 과육이 단단한 품종(차돌)이어서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조씨의 '신바람 농사' 덕인지 당도도 12∼14도 브릭스(BX)로 높다. 판로 걱정도 없다. 농사 규모가 6600㎡로 늘었지만 모두 직거래로 팔린다. 가격도 괜찮다.
"지인들이 많이 가져가죠. 지인들 소개로 또 많은 사람들이 사 가고. 한 번 맛을 본 사람들은 해마다 우리 복숭아를 찾고."
조씨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본격적인 농사꾼으로의 변신이다. 복숭아만 따면서 지내기엔 일 년 열두 달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하여, 그는 소를 키울 요량으로 집 옆에 축사 330㎡를 지었다. 조만간 송아지를 사서 넣을 생각이다. 특별한 욕심은 없다. 농촌에서 열심히 일하며 건강하게 살면 그뿐이다.
"귀농 이후 모든 게 넉넉해졌어요. 몸도 자유롭고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고. 남편도 도시에 살 때 시간 나면 술 마시는 게 일이었는데. 지금은 공기 좋은 데서 살며 함께 일하는 보람이 얼마나 큰지 몰라요. 이게 행복인가 싶어요."부인 김순덕(54)씨의 얘기다. 그녀는 "시골로 이사 온 이후 도시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도 사는 재미"라며 활짝 웃었다. '여름손님'까지도 반갑게 맞는 김씨와 이장을 맡아 마을의 크고 작은 일까지 챙기는 조씨. 이들은 오늘도 '귀농하길 정말 잘 했다'며 스스로 대견해하며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