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들이 벌이고 있는 포퓰리즘의 상징, 무상급식을 서울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무효화시키지 않으면 이 나라는 포퓰리즘으로 망하게 될 것이며, 좌파에 의해 완전 점령당할 것이다."
일부 극우단체의 주장이 아니다. 국내 한 중견기업체가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전 사원에게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여를 독려하며 배포한 공고문 중 일부다. 이 공고문을 낸 곳은 "거꾸로 타는 보일러"로 잘 알려진 귀뚜라미그룹. 귀뚜라미그룹은 지난 3일 "서울시민 모두, 오세훈의 황산벌 싸움 도와야", "공짜근성=거지근성" 제목의 글을 공고했다.
특히 공고문 서두에 "(최진민 귀뚜라미그룹)회장님께서 전 그룹 임·직원에게 공유를 요청하셔서 공지합니다", "특별한 경우가 없다면 8월 24일 서울시 주민들은 투표에 참여하도록 하라는 지침을 주셨다"고 명시돼 있다.
현행 주민투표법 제28조에 따르면, "직업·종교·교육 그 밖의 특수관계 또는 지위를 이용하여 주민투표에 부당한 영향을 미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공짜 점심 먹고 자라면 나이 들어서도 무료 배급소 앞에 줄 선다"
공고된 본문의 내용도 무상급식에 대한 폄하와 색깔론으로 가득차 있다.
귀뚜라미그룹은 해당 공고문에서 "무상급식 반대 278만 명만 나갈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나가서 싸워야 한다, 스스로 국가를 지킬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국가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명시했다. 이어 "애국자라면 모두 나서서 싸워야 할 것"이라며 "이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공고문에서는 주민투표를 "빨갱이와의 전쟁"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귀뚜라미그룹은 "서울시민 모두는 반드시 투표장에 나가서 서울시의 교육과 시정을 장악하고 빨갱이들의 행패를 표로써 완전 제압해야 할 것"이라며 "서울시민 모두가 빨갱이를 무력화시키는 일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짜근성 = 거지근성"이란 제목의 공고문은 무상급식 찬성론을 "서울역 노숙자 근성"으로 표현했다.
귀뚜라미그룹은 "어린 자식들이 학교에서 공짜 점심을 얻어 먹게 하는 건 서울역 노숙자 근성을 준비시키는 것"이라며 "가난한 집안의 아이가 공짜 점심 먹고 자라면 나이 들어서도 무료 배급소 앞에 줄을 서게 된다, 가난 근성의 대물림이라는 것이 바로 이거다"고 주장했다.
또 "어린 자식들에게 노숙자 근성을 심어줄 것인지, 대책없는 퍼주기식 복지로 나라를 결국 파산나게 할 것인지 국민이 선택해야 한다"라며 '보편적 복지' 담론에 적의도 여과없이 드러냈다.
"특수관계인에 의한 부당한 압력... 선관위 즉각 조사해야"
한편, 이를 제보 받은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18일 보도자료를 내고 "해당 공고문은 자유로운 주민투표 운동의 범위를 벗어나 회사 내 특수관계인에 의한 부당한 압력으로 볼 수 있다"며 "특히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무상급식을 비판하고 빨갱이, 좌파의 책동 등 비상식적인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선관위 등에서 투표의 불참 역시 투표행위로 해석하는 등, 보이콧 행위 자체가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는데도 투표참여만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다"며 "부당한 주민투표 개입행위에 대해 선관위가 즉각적인 조사에 나설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귀뚜라미그룹은 해당 지침 내용에 대해 즉각 사과해야 할 것"이라며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 기업들도 최소한의 상식을 가져주길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귀뚜라미그룹 관계자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회장님이 직접 쓰신 글도 아니고 직접 공고하도록 요청한 것도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대개 회장님이 지인들이 보내주신 글 중 좋다고 보시는 글들은 간부들에게도 '토스'하신다"며 "이번 경우도 그런 케이스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 관계자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참여하라는 지침을 줬다"고 명시된 것에 대해선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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