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 살 된 아기들이 포크를 들고 국수를 먹는 모습은 매우 귀엽습니다. 엄마들이 먹여주려 해도 스스로 먹겠다고 떼를 쓰고, 식탁 위에 떨어진 국수가닥이 손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지만 그걸 집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애를 쓰는 모습도 재미있습니다. 게다가 겨우 집어올린 그 가닥을 보며 스스로도 대견한 얼굴을 한 채, 그걸 입에 넣고 오물오물 먹는 모습은 피식 웃음이 나게 만듭니다.
국수를 야무지게 먹는 그 아기들은 하나같이 고집이 있습니다. 옆에서 엄마들이 먹여주려 하거나 흘린 국수 가닥을 집어주려 했다가는 완전 난리가 납니다. 게다가 끈기가 장난이 아니라서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국수 한 가닥을 자신의 힘으로 입에 넣는 순간까지 헛 포크질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 똥고집에 지친 어른들이 옆에서 매운 갈비나 뜨거운 감자탕을 먹고 있을 동안, 미키마우스나 피카츄가 그려진 자신의 그릇에 담긴 국수의 목적은 깨닫지도 못한 채 말이죠. 그러면 엄마들은 지그시 내려다보며 한 마디씩 합니다. '역시...국수만 주면 애가 너무 조용해진단 말야'.
그런 엄마들의 마음을 아는 것일까요? 아기를 안은 엄마가 가게에 들어가면 섬세한 여주인들은 '아기국수'라는 걸 만들어 내줍니다. 좀 유명한 비빔국수를 파는 가게라면 당연히 '아기국수'가 정식 메뉴로 당당히 등재돼 있기 마련이고요. 매운 걸 먹기 어려운 아기들을 위해 간장과 깨소금, 참기름 그리고 약간의 설탕을 넣어서 맛을 낸 '아기국수'의 위력이 한번 더 빛나는 순간 입니다.
고소하고 달콤해서 아기들은 그 맛과 먹는 방식의 즐거움에 푹 빠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다 커서도 '아기국수'의 맛을 그리워합니다. 어른이 되면 당연히 맵고 짜고 톡 쏘는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듯이 대부분의 어른 음식들이 그런 맛을 선보이지만, 언제나 변함없는 '아기국수'맛은 얼큰하게 한잔 걸치고 온 날 저녁에도 급하게 당기는 슴슴한 맛이 자랑인 음식입니다. 한 마디로 세대불문의 음식이라 할 만하지요.
가끔씩 아기들은 자신이 먹던 국수 그릇 위로 손을 쫙 펼쳐서 손바닥으로 국수 뭉치를 퉁퉁 쳐보기도 합니다. 국수 가락이 손가락 사이에서 꼼지락거리는 것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 같이 여겨지는지 그 촉감을 심히 즐기는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 긴 국수 가락을 입에다 성공적으로 골인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질 즈음 소년으로 소녀로 자라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쯤 부터는 비빔국수, 쫄면, 냉면 같은 것에 맛을 들이다가 비오는 날이면 칼국수 같은 걸 찾을 줄도 알게 되고, 여름 정취를 채워 줄 메밀 소바 어쩌고 하면서 먹고 싶은 국수의 범위가 점점 넓어져 갑니다.
하여간 아기들도 좋아하는 국수! 세대불문은 물론이거니와 나라와 인종불문하고 사랑받는 음식이기도 하지요. 베트남쌀국수가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 이탈리아 파스타가 세계 어느 레스토랑에서나 대중 메뉴가 된 것, 한국 전쟁 당시 피난지 부산에서 냉면을 먹기 힘들던 그 시절에 냉면 맛을 그대로 살리되 밀가루로 면을 만들어 사용한 밀면 같은 것만 봐도 사람들이 국수에 대해 가지는 대단한 사랑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중국 화염산에서 2500년 전 미라의 머리맡에 놓여있던 국수 그릇이 발견되었을 때의 놀라움에 이르기까지, 국수는 인류가 사랑한 음식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넘어 하나의 역사이자 인류 문화라는 것도 깨닫게 해줍니다.
쌀과 함께 인류의 주식이었던 밀은 여섯겹의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인 탓에 가루를 내어야만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특징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밀가루에 물을 넣어 치대고 점성을 만든 후에야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이 방식을 사용해서 만들어진 국수는 인류의 식문화에 지대한 변화를 가져오기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오늘날의 패스트푸드 문화를 이룩한 국수는 간편한 조리법과 짧은 조리시간 그리고 저렴한 가격 등을 장점으로 해서 대도시 직장인들에게 사랑받는 메뉴가 되기에도 이르렀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파스타', 에도 시대의 '소바', 베트남 쌀국수 '포'가 바로 그런 과정을 겪어서 세계화를 거머쥔 음식들이라 할 만 하군요.
멀리 언급 할 것도 없이 '아기국수'를 먹던 시절부터 우리는 국수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나 봅니다. 사람도 아무 가식 없이 편안한 사람이 최고이듯이 '아기국수'는 감추거나 덧붙임없이도 충분히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뭔가 마땅히 준비 된 게 없는 출출한 시간, '아기국수' 한 그릇 어떠신가요? 이왕이면 턱받이도 하고 아기처럼 포크로 말아 먹으면 더 맛있겠네요. 흘린 건 손으로 주워서 입에 넣고, 턱받이에다 손 한번 쓰윽 닦으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