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입양하거나 직접 낳지 않고 키우게 되면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표현한다.
직접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말의 의미는 알지만, 그 깊이나 느낌은 잘 알지 못한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의 뜻과 느낌이 어떠한지를 몸소 체험하고 있어 풀어 보고자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부모와 함께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모여 살고 있는 사회복지법인에서 생활지도원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양육하는 보육시설에서 근무하고 있다. 각각의 사연이 다양하지만, 예전에는 전쟁 고아로 오갈 데 없는 아이들과 버려진 아이들이었지만 세태가 변화되고 생활환경이 바뀌다 보니 얼마 전부터는 대부분 결손 가정에다 조부모 밑에 살다가 생활형편이 여의치 않아 시설로 오게 된 경우로 바뀌고 있다.
태어난 지 한달 반 된 민호와의 첫 만남민호가 우리 시설로 왔다, 아니 나한테 왔다고 말하고 싶다. 민호는 태어난 지 한 달 반 만에 서울의 모 병원에서 지내다가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우리 시설로 입소 되어 내가 있는 방으로 왔다.
처음 민호를 받아 안으며 얼굴을 보는 순간 자는 모습이 천사처럼 보였고 가슴이 찡하면서 반가웠다. 민호를 위해 무엇을 할까? 설레었다.
다음 날 아침 가정예배 시간이 되어 모든 아이와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민호를 위해 기도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제대로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내 자식을 위해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육아일기를 써서 다음에 민호에게 보여주리라 생각하고 하루하루 써 내려갔다. 민호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하루가 다르게 잘 자랐다.
매일 민호를 보며 기쁨이 넘쳤지만 한쪽으로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더 많았다. 나에게 행복과 기쁨을 안겨 주었지만, 고통도 함께 준 민호가 그저 예뻤다.
"민호야, 엄마야 엄마! 민호 엄마 여기 있어요, 민호 사랑해요"라고 귀에다 대고 이 말을 자주자주 해준다. 민호는 알아듣기라도 하듯이 칭얼대다가도 금세 안정을 되찾는 모습이다.
지금쯤 부모 밑에서 정성껏 온갖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라야 하는데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얼굴도 모른 채 이곳 시설까지 왔다는 것이 너무 속상하고 불쌍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
처음 보는 민호는 너무 귀엽고 예뻤다. 내 아들이 28살이니 아기 키운 지가 오래되어
다 잊었다. 다시 자식을 키우는 마음으로 민호를 돌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민호의 표정에 웃음이 그칠 날이 없었다. 배냇짓을 하는지 혼자 찡그리다, 입을 삐죽이다, 웃다가 하는 표정은 여름날의 기나긴 하루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나갔다.
눈을 못 맞추는 민호...어린 게 백내장이라니민호가 내 품으로 온 지 한 달쯤이 되어 눈을 맞춰야 하는데 눈을 안 맞추고 혼자 위로 옆으로 때론 사시처럼 눈동자가 몰려 있기도 하다가 잠이 들곤 했다. 아무리 "민호야, 까꿍!"을 해도 반응이 없어 아직 백일이 안 되었으니 조금 늦어지나 보다 위안을 삼았고 목을 못 가누고 힘이 없어도 아직 어려서 그러려니 하면서도 속으로 조바심이 나고 걱정이 되었다. 인터넷에 들어가 눈 맞추는 시기와 목 가누기를 찾아보았으나 각각 아기에 따라 늦어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입소 건강검진을 하기 위해 의료원에서 검사 하는데 소아과 선생님께서 아기의 눈동자가 손가락을 따라가는지 물었고 그렇지 않다고 하니 그럼 안과에 들러 보라고 하셨다. 시키는 대로 안과에 들러 검사를 했다.
안과 선생님은 민호가 선천성 백내장이나 녹내장일 수 있으니 큰 병원으로 가라며 소견서를 써 주셨다. 청천벽력이었다. 노인성 백내장은 들어 봤지만 갓 태어난 아이한테 있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날 병원에서 돌아와 민호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민호는 내 가슴이 이렇게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새근새근 깊은 잠에 빠졌다. 민호를 볼 때마다 '병원에서 엄마에게 버려져 불쌍한데 이젠 앞을 볼 수 없게 된다면 어떡하냐?' 싶은 생각에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건강하게라도 태어나지 이게 뭐람?' 민호를 안고 볼을 비비며 울다가도 민호의 기척에 눕혀놓고 팔과 다리를 주물러 주면 민호는 씨익 웃는 모습이 또다시 내 마음을 아리게 긁어 놓는다.
다행히 일찍 발견하여 전남대 병원에서 지난 8월 2일에 백내장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눈에
는 테이프를 붙이고 마취에서 덜 깨어 자고 있었다.
민호의 수술비가 문제였다. 시설에 입소된 지 얼마 안 되어 이런 일이 일어나 갑자기 진행된 수술비를 마련하느라 이리저리 알아보고 하여 읍사무소 담당자와 함께 노력하여 실명예방재단에서 보조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고마운 기관이 있는지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어리디 어린것이 답답함도 모르고 누워있는 민호를 보자 또 눈물이 나왔다. 가슴이 찢어 지는 것만 같았다. 내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안타깝고 속상하기만 했다. 차라리 민호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민호는 눈 주위에 손이 닿으면 기겁을 하고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대고 안약 넣는 걸 무척 싫어했다. 눈에 안약을 넣는 줄 알고 눈을 아예 꼭 감고 뜨지 않는 행동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표현은 못 하지만 다 아는 듯 해서 똑똑하게만 느껴진다.
지금은 두껍고 무거운 안경이 민호의 눈에 걸쳐졌다. 아직은 불빛만 감지된 상태라지만 시력이 회복되기만을 기도하면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병원에서 그 고사리 같은 손등에서 피를 뽑으려 혈관이 잡히지 않아 여기저기 쑤셔대도 울지 않고 칭얼거리다가 마는 민호가 다른 아이들처럼 차라리 앙앙대고 울기나 했으면 덜 이나 내 마음이 덜 아플 것 같았다.
백내장 수술은 어렵게 마쳤지만...또다른 장애가그도 문제였다. 아픔을 느껴야 하는데 두뇌 발달이 덜 되다 보니 아마 그런 것이었다.
목을 못 가누기에 다시 소아과 정밀 진단을 받게 되었다. 뇌 CT와 초음파 검사한 결과 이젠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났기에 앞으로 장애가 어떻게 올지 모르고 원인도 딱히 알 수 없다고 했다. 산 넘어 산이었다. 앞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기에 백내장 수술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니 이게 또 웬 날벼락인가?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리 민호 불쌍해서 어떡해요?"를 중얼거리며 울음을 참을 수가 없어 그 자리에서 아기를 보듬고 엉엉 울었다.
"차라리 나에게 오지나 말지 왜 나에게 와서 이렇게 내 가슴을 아프게 하니?" 오열을 삼키자 의사 선생님께서 딱해 보였는지 내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란 이런 마음이었다. 내 모든 것을 다 해서 민호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 대신 아파하는 마음, 민호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민호가 어떤 장애때문에 날 힘들게 할지는 모른다.
지금은 목을 못 가누고 손가락과 발목 관절에 장애가 있어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지만
민호가 장애를 갖고 태어난 운명이었다면 그래도 사회생활, 아니 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을 위해 장애 전용 병원이 설립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노인전문 요양병원은 우후죽순으로 생기는데 돈 걱정 안 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 재활치료와 모든 장애아가 걱정 없이 언제든지 이용하여 마음껏 치료도 받고 인권을 누리도록 하는 그런 병원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우리 민호와 같은 아이들이 마음껏 살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이 언제쯤 올까? 우리 민호에게 가을의 높고 파아란 하늘 만큼이나 희망을 갖고 살게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