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는 수천만 년전 인도대륙과 아시아대륙이 서로 부딪히면서 융기해 오른 산맥이다. 에베레스트는 티베트어로 '초모룽마, 우주의 어머니 혹은 세계의 여신'이라는 뜻이다. 네팔어로는 '사가르마타, 하늘의 어머니'로 불린다. 산의 기세와는 달리 모든 세상을 품는 듯한 여성성을 나타내는 원주민의 시각이 담겨있다.
에베레스트는 지난 1953년 영국원정대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첫 등정에 성공한 이후 많은 원정대가 이 지구의 지붕에 오르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점차 등정 장비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오랫동안 미답의 땅으로 남아있던 이곳은 이젠 전문산악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정상 등정에 도전하는 곳이 되었다.
에베레스트 등정 경험이 있는 일부 전문산악인들이 원정대를 결성하고 가이드를 맡아 일반인들을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안내하는 상품이 등장한 것이다. 이른 바 '상업등반'이라는 형태의 원정대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상업등반대는 일부 전문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 등정 가이드를 직업으로 삼으면서 기업 형태로 탄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산악인들도 기상상태나 신체적 조건에 따라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길 수밖에 없는 에베레스트에서 고산등정에 미처 준비되지 못한 수많은 일반인이 등정에 나서다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리고 이 죽음의 고비에는 비정한 산악인들의 행태도 뒤따른다. 자신의 가이드 경력을 속이는 산악인도 등장하고 원정대에 참가한 고객보다는 자신의 안위나 경력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가이드가 활보하기도 한다.
에베레스트 고산지대에선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탈진하거나 동상에 걸려 쓰러진 사람들을 돕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 채 하산하는 산악대의 비정한 모습이 종종 드러난다. 이곳은 강추위와 더불어 해수면에 비해 산소가 1/3에 불과하다. 따라서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곳이다. 이런 곳은 남을 돕는 행위가 오히려 자신의 생명마저 위험에 노출시킬 수도 있는 환경이다. 그래도 산악인들의 비정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대목이다.
산악인이라면 한 번쯤 꿈꿔보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하는 대표적인 루트는 네팔 방면에서 올라가는 남쪽 사면 루트와 중국쪽 티베트에서 올라가는 북쪽 사면 루트가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남쪽 사면보다는 북쪽 사면을 통한 등반이 더욱 활성화됐다. 중국정부가 세계에서 몰려드는 산악인들을 티베트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각종 규제를 풀고 다양한 인프라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이 북쪽 사면은 베이스캠프까지 도로가 뚫려있고 등반 허가비도 3천~5천 달러 정도라고 한다. 또한 남쪽 사면을 선택한 최상급 상업등반대가 고객에게 요구하는 금액인 6만5000달러의 10% 정도만 지불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남쪽 사면은 대규모 크레바스와 쿰부 빙폭의 얼음절벽이 무너질 위험성도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북쪽 사면으로 원정대가 몰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상업등반대가 활성화된 이 에베레스트 등정대에 '고객'으로 참가했던 언론사 현역 기자들이 직접 등정 과정을 체험하고 쓴 두 권의 책은 에베레스트에 대한 환상이나 동경을 지니고 있는 독자들에겐 매우 현실적이며 비정한 죽음의 지대를 보여준다. 이 두 권의 책은 <희박한 공기 속으로(Into Thin Air)>와 <에베레스트의 진실(High Crimes)>이다.
이 책들은 에베레스트 등정에 관한 동일한 소재를 담고 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의 풍경은 물론 상업등반대에서 파생할 수 있는 비극적인 상황과 에베레스트 등정에 참가한 산악인들의 다양한 군상을 마치 추리소설을 써내려가듯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굳이 서로 다른 점을 든다면 <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에베레스트 남쪽 사면 등정 루트를, <에베레스트의 진실>은 그 반대쪽인 북쪽 사면 등정 루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Into Thin Air)>, 그날 에베레스트에선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책의 저자인 존 크라카우어는 <아웃사이드>잡지사에 근무하던 1996년 5월 10일, 로브 홀이라는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가이드가 인솔하는 상업등반대의 일원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이 등정과정에서 가이드 로브 홀을 비롯한 다른 4명의 대원은 불의의 악천후를 만나 정상을 밟고 하산하는 길에 사망했다. 그리고 당시 다른 팀의 대원 8명도 함께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는 에베레스트 정상부근에서 발생한 악천후와 더불어 상업등반대 특성상 체력적인 조건이 충분치 않은 일반인들이 등정에 나섬으로써 전체적으로 등정시간이 상당히 지체된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흔히 '죽음의 지대'라고 불리는 에베레스트 정상을 앞둔 최후 900m 구간을 사전에 계획한 예정된 시각에 맞춰 하산하지 못한 것이다.
상업등반대를 이끄는 가이드만 믿고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사람들 때문에 시즌에는 주요 등정 길목마다 병목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산소가 희박한 고산지대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체력적인 한계는 물론 제대로 훈련도 되지 않은 등정기술로 모험에 나서는 사람들로 인해 에베레스트는 언제든 대형사고를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우의 주인공인 뉴질랜드 산악인 로브 홀은 상업등반 초기인 1990~1995년 사이에 모두 39명을 에베레스트에 등정시킨 이 분야 베테랑이었다. 그는 상업등반대에 참가하는 조건으로 고객들에게 1996년 당시 1인당 6만5000달러씩을 받았다. 이 경비에는 네팔까지의 항공료와 개인장비 경비는 포함되지 않았다.
등정 경로는 제4캠프(사우스콜, 해발고도 7925m), 발코니(해발고도 8412m), 사우스 서미트, 힐러리 스텝, 정상(해발고도 8838m)순이다. 힐러리 스텝은 산 정상에서 수직으로 70m 아래에 있는 정상 능선의 가파른 절벽으로 에베레스트 표준 루트에서 가장 고난도의 등반 기술을 요하는 곳이다. 하산하다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대부분은 이곳부터 발코니와 사우스 서미트 인근에서 제4캠프까지 하산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희박한 공기속으로>는 이 표준 루트에서 지난 1996년 5월 일어난 등정사고를 전후로 이 등반대에 직접 참가했던 저자의 등정기록과 주변인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세세하게 정리해 나간 책이다. 갑작스러운 기상악화로 인해 자신도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던 저자의 생생한 당시 체험담이 흥미진진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에베레스트의 진실(High Crimes)>, 에베레스트 캠프와 상업등반대에선 무슨 일들이?
저자인 마이클 코더스는 2004년에 <하트펀드 쿠런트> 통신원이자 코네티컷 원정대 일원으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처음 참가했다. 2006년 5월엔 상업등반대의 현실을 취재하기 위해 두번 째로 에베레스트를 찾았다.
이 책은 2004년 5월 16일 에베레스트 네팔 쪽 남사면을 오르던 상업등반대의 고객 중 한 명이었던 직업의사 닐스 안테사나의 비극을 토대로 에베레스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업등반대의 현실과 베이스캠프와 전진캠프, 등정루트에서 일어나는 산악인들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자세하게 담았다.
닐스 안테사나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에베레스트 정상을 등정한 후 하산하는 도중 탈진해 결국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그의 딸에 의해 당시 이 상업등반대에 있었던 일들이 속속히 드러나면서 구스타보 리시라는 악명 높은 가이드를 고발하게 된다. 이 가이드는 탈진에 빠진 닐스 안테나사를 현장에 그대로 버려두고 하산해 죽음에 이르게한 것으로 드러난다.
에베레스트 고산지대에선 탈진해 쓰러진 일부 조난자들을 그대로 방치한 채 하산을 해버리는 산악인들의 행태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 가이드는 자신의 행위가 이런 산악인들의 자위적인 행태에 불과하다고 변명하는 것이다.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선 이렇듯 믿을 것은 오로지 자신의 정신력과 체력일 뿐, 탈진해 쓰러져도 스스로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비정한 살풍경의 현장이다.
저자인 마이클 코더스는 닐스 안테사나가 죽음에 이른 당시 에베레스트 중국(티베트) 쪽인 북사면(노스쿨)에서 등정을 시도하고 있었다. 사고가 발생하면서 등정대간에 서로 오고간 무선통신을 통해 이 사고를 처음 알게 되었고, 이후 닐스 안테사나 딸의 부탁을 받고 진상 규명에 나서 이를 토대로 이 책을 출간했다.
저자는 세계 최고봉을 오르려는 많은 사람들이 에베레스트에 몰려들면서 사실상 '법적인 어떤 관리나 감독도 행해지지 않는 가운데 이곳에 엄청난 액수의 돈을 뿌려대는 바람에 그들에게 기생하면서 돈을 갈취하려드는 탐욕스러운 신종 협작꾼들이 생겨났다'고 지적한다. 에베레스트 산행의 타락상을 빚어낸 대표적인 첫 요인은 결국 상업등반대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업등반대를 이끄는 숙련된 가이드들의 도움을 받아 일반인도 세계 최고봉을 쉽게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려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1996년에 일어난 에베레스트 대참사였다고 분석한다. 존 크라카우어가 쓴 <희박한 공기속으로>에서 자세하게 소개된 바로 그 사건이다.
저자는 1996년 참사 때문에 에베레스트를 찾는 이들의 숫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에드먼드 힐러리의 에베레스트 첫 등정 50주년을 맞은 2003년 한 시즌동안 264명, 2004년에는 330명, 2006년에는 460명, 2007년 시즌에는 근 600여 명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고 한다. 이는 1996년도 당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98명의 무려 6배에 달하는 수치다.
함께 참고하면 좋은 다큐멘터리 DVD <에베레스트>와 <아! 에베레스트><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네팔 방면인 에베레스트 남사면(사우스콜) 등정루트를 다루고 있는 반면에 <에베레스트의 진실>은 주로 티베트 방면인 북사면(노스쿨) 등정루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이 두 권의 책을 함께 읽으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대표적인 등정루트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담은 DVD도 함께 참고해 보면 좋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아이맥스 다큐멘터리 <에베레스트>와 연관되어 있다. 1996년 5월 당시 아이맥스 촬영팀은 정상 등정을 목표로 베이스캠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사고 발생 보름 후에 이루어진 정상등정 과정을 담은 이 필름엔 당시 생존자 중에 한 명인 벡 웨더스를 구조하는 장면과 사고 당시 무선통화 내용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에베레스트의 진실>은 2005년도에 MBC가 제작한 HD다큐멘터리 <아! 에베레스트>를 참고하면 좋다. <에베레스트의 진실>에도 소개가 된 2004년도 당시 에베레스트 북사면 등정루트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계명대학교 산악대 소속인 고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려는 휴먼원정대의 등정과정을 담은 영상이다. 이 영상에는 티베트 방면 북사면을 오르는 상업등반대 때문에 일부 구간에서 지체현상이 발생하는 현장을 담은 장면도 있어 눈길을 모은다. 각 DVD는 지자체 도서관 영상자료실에서 구할 수 있다.
에베레스트의 생생한 현장을 담은 <희박한 공기속으로>와 <에베레스트의 진실>은 본격적인 가을 등산 시즌을 앞두고 '자연과 산에 대한 겸손함'은 물론, 산행을 나설 때는 항상 사전 준비와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계기로 삼을 만한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