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해군기지 건설 추진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 강정마을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다양한 이들이 함께 폭염의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서울에서 왔고, 어떤 이는 프랑스에서 왔고, 또 어떤 이는 날 때부터 강정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평화를 지키겠다며 스스로 강정마을 찾은 이들을 '자발적 평화유배자'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강정마을로 자발적 평화유배를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열세 번째로 권술룡 '생명평화결사 100일 순례단장'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
오래 경작하지 않아 띠가 자란 밭을 제주말로 '새든밧'이라 한다. 강정마을 중덕해안으로 내려가는 길엔 해군이 강제 수용해버린, 그래서 이젠 밭농사는 물론 하우스농사도 짓지 못해
새든밧이 돼버린 땅들이 널려 있다.
지금은 해군이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강정마을 주민들로선 억장 무너지는 '사유재산권 침탈 사건'일 뿐이다. 사연인즉 이렇다.
내 땅 떼 농로 만들었는데... 도유지로 바뀐 뒤 해군에 매각돼 중덕해안으로 가는 길에 농토가 많았던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을 조금씩 떼어내 농로를 만들었다. 경운기도 다니게 하고, 트럭도 다니게 할 요량으로 금쪽같은 자기 땅을 내놓은 것이다.
그런데 제주도는 이 농로를 포장해 주는 조건으로 기부 체납 형태로 도유지로 만들어버렸다. 주민들의 동의는 구하지 않았다. 이것도 모자라 제주도는 또 주민들의 사전 동의 없이 그 농로를 해군에 매각해버렸다. 매각대금은 버젓이 제주도 예산으로 편성해 넣었다.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기지건설 사업에 걸음마조차 떼지 못하고 있던 해군으로선 졸지에 손 안 되고 코 푸는 격이었다. 너무 쉽게 사업예정지 내 토지를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해군은 기세를 몰아 나머지 주민들의 토지를 '국책사업'이라며 전량 강제 수용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하지만 주민들은 두 달 넘게 해군 측이 공탁금 형태로 지급한 토지보상금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러자 해군은 돈을 찾아가지 않으면 매달 양도소득세에 10%의 가산금이 붙는다고 협박했다. 주민들은 눈물을 머금고 공탁금을 찾아갔다.
또 해군은 자신들이 강제 수용한 땅에 있는 비닐하우스 등 시설물을 철거하지 않으면 약속 불이행에 따른 과징금 20%를 추가로 부과하겠다며 주민들을 협박했다. 법이 뭔지도 잘 모르는 주민들은 어금니를 물고 분함을 참으며 비닐하우스를 철거했다.
남들이 보기에 그 농로는 그저 바닷가로 내려가는 작고 좁은 도로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강정마을 주민들에겐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통한의 길이다. 주민들이 지금까지 중덕해안으로 내려가는 그 좁은 농로를 자기 목숨처럼 지키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까닭은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군에 강제 수용당한 농로 주변 토지들은 새든밧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든밧에 고구마 줄기가 번지고 해바라기꽃이 피었다. 대체 누가 여기에 고구마 줄기를 놓았을까. 대체 누가 무슨 사연으로 이 새든밧에 해바라기 씨를 뿌렸을까.
주인공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는 한낮 땡볕이 주춤거리는 매일 오후 서너 시 무렵이면 어김없이 새든밧에 나와 밭고랑을 다듬고, 김을 맸다. '늙은 전사 권술룡', 바로 그였다.
"고구마 줄기는 대전 고구마 영농사업반에서 십만 원에 두 자루를 구했지. 그걸 사서 마티즈에 싣고 장흥 노력항에서 제주도 오는 배를 타려고 하는데 장흥은 왜 그렇게 먼지… 하하하. 천신만고 끝에 배에 싣고 와 줄기를 심으려는데 이젠 또 계속 비가 와. 강정마을로 농활 온 대학생들이 나랑 같이 고구마 줄기를 심었는데 비에 녹아서 삼분의 일이 사라져버렸지 뭐야.해바라기도 심었는데 해바라기는 원래 사월, 오월, 유월에 심으면 두 달 계속 해바라기꽃을 볼 수 있지. 가을에 거둘게 있어야 돼. 들판이 비어버리면 '풍요로운 가을'이라고 할 수 없지. 저 밭에 무와 배추 심어서 절임배추로 만들어 신세진 사람들에게 무조건 보내는 것이지. 허면 그 사람들도 가만있지 않게 되는 거지. 배추 한 포기 보내는 것도 쉬운 마음이 아니야."
그는 생명평화결사 100일 순례단장으로 지난 3월에 순례단과 함께 강정마을에 들어왔다. 약속했던 100일 순례는 끝났지만 도저히 마을을 떠날 수가 없었다.
"도법 스님이 '100년을 가는 화두가 있어야 한다'며 100일 순례를 제안해서 적극 찬성했어. 첫 100일 순례지로 제주 강정마을을 정했지. 와서 보니 마을 사람들 기운이 다 빠져 있는데 우리더러 힘이 좀 돼달라는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가라앉은 기운들 스물 스물 피어올라. 100일 만에 떠날 수도 없고, 개인으로라도 머물러 있기로 했지.풍요로운 지역인데 거대한 국가권력에 맞서 4년 투쟁하는 동안 마음이 갈갈이 찢어졌어. 해군기지가 처음부터 들어와서도 안 되지만 절차를 그렇게 하면 안 돼. 강정마을에 풍림콘도 하나 들어오는 것도 정식안건으로, 기타 안건으로 여덟 번 총회를 거쳤다고 하잖아. 그런데 이게 뭐야. 국가라고 하는 거대한 권력이 화순항으로 들어가려다 실패하니까 위미로 가서 또 실패하고, 그 실패한 것을 공작을 해서 주민들 속이고 군사작전 하듯 하면 되냐는 말이지. 강정은 후보지에도 없던 곳이잖아. 그러니 마을사람들이 얼마나 가슴에 분노가 일고 억울하고 상처 입었겠느냐고. 찢어진 마음, 달래고 달래는 일이 과제야."그는 단식과 영성 치유를 함께 하는 순례자로 유명하다. 강정마을에 머무는 기간에도 그와 단식을 함께 하며 영적 순례를 떠나고자 하는 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찾아왔다. 젊어 한 20여 년은 달동네의 복지관, 지역자활센터, 노숙자센터 등에서 사회복지운동을 한 그다.
하지만 지금 그는 스스로를 "나이 칠십이 넘은 '늙은 전사'"라고 소개한다. 칠순의 전사, 황혼의 전사...
"<늙은 군인의 노래>의 알아? 평생을 직업군인으로 떠돈 어느 하사관 이야기라는데 그 노래에서 '늙은 전사'를 차용했지. 나이 70에 노인정 가봐야 애 취급 받고, 사회적으로 존경받아야할 나이라는 강박에 골방에 들어앉아 있으면 얼마나 치사해져?내 행실이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노인정으로 가지 않고 황야로 나오면 힘들지만 자유인이 될 수 있지. 요즘 '초 고령화 사회'라고 난리법석인데 '노인네' 신세 초월하는 좋은 전범을 만들고 싶었어. 생산 활동을 한다는 것이 반드시 노동해서 돈 버는 일만은 아니잖아. 영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엄청난 생산 활동이라고. 생각해봐, 한국의 성장 동력이라고 하는 것 중에 정신적인 것이 하나도 없어. 역설적이게도 단식은 굶음으로 미래를 살리지. 영적 순례, 평화 순례를 잘 가꾸면 지금 거론되고 있는 성장 동력이 10개보다 나아. 다른 나라에서 한국을 얼마나 품위 있는 나라로 보겠어? 이게 참으로 '국격'을 높이는 일이야, 4대강 삽질하고 평화의 섬에 해군기지 만든다고 억지 부리는 것보다 말이지."해안에 세워진 비닐하우스 세 동...'세상에서 가장 장엄한 집' 순례(pilgrim)는 라틴어 '들판을 가로질러 per agrum'에서 온 말이다. 들판 가로질러 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들판 가로질러 그 너머엔 무엇을 기약하고 살 수 있을까. 어설픈 영성, 어설픈 순례는 무망한 세월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존재의 맥을 빼는 '저 홀로 고상한 무엇'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영성은, 그의 순례는 '저 홀로 고상한 무엇'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그는 분명히 얘기한다. "때로 영적으로 사는 것이 무리수를 안 두면 어느 세월에 되겠냐"고. 또 얘기한다. "거친 광야를 가로질러 가는 영적 도전을 순례라 하는데 위험하다고 불평하면 순례의 과정에서 덤으로 얻는 의외성의 은총을 놓치게 된다"고.
그는 한시도 손을 놓고 쉬질 않는다. 머무는 거처 뒤뜰에 자란 잡풀을 베는가 싶더니 앞마당을 쓸고, 비에 젖은 깃발을 볕에 말린다. 오후에는 자신이 일군 밭에 나가 김을 매고, 해군과 경찰이 오면 마을사람들과 함께 몸을 던져 막는다. 밤에는 촛불을 집회에 나가 기도를 하고 다시 아침이면 구럼비에서 생명평화 108배로 하루를 연다.
강정마을 중덕해안엔 세 동의 비닐하우스가 있다. 외지에서 찾아온 이들이 늘어나자 숙소로 쓸 요량으로 지은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장엄한 광경은 불리한 여건과 싸우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레이의 말까지 인용하며 그는 이 비닐하우스를 "세상에서 가장 장엄한 집"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비닐하우스를 우습게 보는 경우가 있는데 절대 그렇지가 않아. 대전의 한 아동복지시설에서 일할 때 옥상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가족들과 함께 7년을 살았던 경험이 있어. 시설 내에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였지만 비닐하우스 집은 근사했어. 마음을 어떻게 품고 짓는가에 따라 다르거든.여기 강정의 비닐하우스가 세상에서 가장 장엄한 집인 까닭은 바로 이곳이 세계 평화의 순례지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야. 동북아의 나아가서는 세계의 화약고가 될 뻔한 제주해군기지의 불장난을 넘어 세계평화공원으로 강정마을을 만들겠다는 뜻과 마음들이 모이는 집이라고.언제 다시 태풍과 같은 재해가 올지 모르고, 언제 또 작전에 짓밟힐지 모르지만 여기 비닐하우스는 가장 불리한 여건에서 가장 장엄한 꿈을 키운 집이 될 거야." 그는 세상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세상을 감당 못하는 사람과 세상이 감당 못하는 사람.
그는 "세상을 감당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 다친 이들"이라 했다. 세상은 넘기 벅찬 절벽과 같아서 번번이 좌절하고, 자격미달로 분류되고, 소외계층으로 규정된 이들. 그는 "이들은 하도 상처를 입어서 지레짐작으로 예단하고 꽃잎처럼 스러져 가려고 하기 때문에 늘 아끼고 함께 보살펴줘야 하는 이웃"이라고 했다.
반면 세상이 감당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이들은 세상의 틀로는 담아지지 않는 사람들, 세상의 틀에 매일 수 없어 판을 새로 짜거나 하여 미래를 새롭게 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한발 앞서 길 없는 길을 헤쳐 나가며, 이를 마땅히 여기는 이들.
"여기는 문이 있어야 할 자리라며 벽을 문이라고 여겨 박차고 나가는 사람, 새벽길을 미리 떠나며 해가 중천에 떠도 꿈길 헤매는 이들을 가슴 치며 안타까워하는 사람, 밤새 하얗게 눈이 쌓인 것도 모르고 눈물로 밤새워 기도하는 사람. '평화의 섬 제주', '해군기지 없는 강정'을 만들겠다며 지금 여기 와있는 모든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이 감당 못하는 이들'이지, 하하하."세상을 감당 못하는 이들과 함께 누릴 평화를 꿈꾸며 다시 세상이 감당 못하는 이들과 순례를 떠나는 '늙은 전사' 권술룡. 저기 저 들판 너머 해바라기꽃이 노랗게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