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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주민투표 참여를 호소하기 위해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를 돌며 일인시위에 나선 오세훈 서울시장이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을 향해 주민투표일을 알리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여를 호소하기 위해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를 돌며 일인시위에 나선 오세훈 서울시장이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을 향해 주민투표일을 알리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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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승부수'를 던졌다. 주민투표 유효 투표율(33.3%)을 넘지 못하거나, 넘더라도 원하는 결과(소득 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단계적 무상급식 실시)가 나오지 않으면 시장직을 걸겠단다. 

진정성은 차치해 두자. 정치인이 표를 얻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거나 "직을 걸겠다"고 공언하는 걸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자신을 한 단계 넘어서기 위해 때로는 모험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빛이 난다.

이번 주민투표에서 오 시장은 주연이 되고 싶어 무리수를 던지고 있다. 법으로 따져보더라도 시장은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걸 그는 모르고 있는 걸까. 

주민투표, 본래 취지는 사라지고...

주민투표는 자치단체의 주요 정책 결정에 주민의 직접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 2004년 도입됐다. 법에 따르면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결정사항으로써 그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사항은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주민투표법 7조 1항)

주민투표를 시행하는 길은 크게 세 가지다. ①주민 청구 ②지방의회 청구 ③시장이 직권으로 실시하는 경우다. 이 중 주민은 5% 이상의 서명이, 지방의회는 재적 과반수 출석과 출석 3분2 찬성이 있어야 청구할 수 있다. 시장이 직권으로 시행하려면 의회 과반수 출석과 출석 과반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번 주민투표는 ①번에 해당한다.

주민투표에서 시장의 역할은 무엇일까. 주민투표법 제4조(정보의 제공 등) 1항에 나와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주민투표와 관련하여 주민이 정확하고 객관적인 판단과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의 공보, 일간신문, 인터넷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하여 주민투표에 관한 각종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여야 한다."

결국 단체장인 오 시장은 주민 청구에 따라 실시되는 주민투표가 진행되도록 중립적인 입장에 서 있어야 한다. 게다가 오 시장은 법적으로도 투표 운동을 할 수 없는 자리에 있다. (참고로 투표 운동이란 주민투표에 부쳐진 사항에 관하여 찬성, 반대하게 하거나 두 가지 사항 중 하나를 지지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투표참여 운동이나 불참 운동도 유권자라면 가능하다. 다만 현행법상 단순한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는 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  

오 시장은 '투표운동'을 할 수 없는 공무원이다

주민투표법은 공무원(시의원, 구의원은 제외), 언론인, 선거관리위원 등의 주민투표운동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국회의원은 물론, 오 시장도 투표운동을 할 수 없다. 이와 구별할 게 주민소환투표가 있다. 주민소환제는 독단적인 행정운영과 비리 등을 저지르는 자치단체장 등을 제재하기 위한 제도로, 여기서는 투표대상자(소환된 자치단체장)도 자유로운 투표 운동이 가능하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12일 밤 SBS <시사토론>에 출연해 무상급식 주민투표 논란에 대해 맞짱토론을 벌이고 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12일 밤 SBS <시사토론>에 출연해 무상급식 주민투표 논란에 대해 맞짱토론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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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오 시장의 시장직 결부를 반대했던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도 22일 "남은 이틀 동안 투표참여 운동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했는데, 역설적이게도 법적으로는 홍 대표 자신도 투표 운동을 할 수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한 듯, 같은 당 나경원 의원은 관련법을 개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어쨌거나 현행법상 시장은 주민투표를 발의하는 일만 할 수 있을 뿐 투표운동에 적극 나설 수 없다. 그런데도 오 시장은 지난 15일 서울광장에서, 17일은 을지로에서 주민투표 안내판을 들고 직접 투표 홍보에 나섰다가 한 단체에게 주민투표법 위반으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무상급식 반대를 자신의 운명과 결부시키며 대선 불출마 선언에 이어 시장 자리까지 걸겠다고 했다. 주민투표는 오 시장의 인기투표가 아니고, 재신임 투표는 더더욱 아니다. 무상급식 실시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의 본래 취지는 오간 데 없고 오 시장의 모험에 여야 정치권까지 대거 동원되는 형국이 돼버렸다.

문제는 선관위의 모호한 태도다. 선관위는, 이해관계인이지만 투표운동을 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는 오 시장과 곽노현 교육감에게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먼저 오 시장이 주민투표와 시장직을 결부하겠다는 21일 기자회견에 대해 선관위는 법 위반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렸다. 중앙선관위 이종우 사무총장은 국회 행안위에 출석해 "거취 표명이 기자를 상대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투표운동을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서울시 선관위도 "기자회견은 취재보호차원에서 허용되는 사안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오 시장 기자회견문의 몇 구절을 보자.     

"8월 24일 치러질 이번 주민투표 결과에 제 '시장직'을 걸어 그 책임을 다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매년 몇천 억을 필요하지도 않는 넉넉한 분들에게까지 항구적으로 나눠주어 어려운 분들의 희망을 꺾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33.3% 투표율을 넘겨 시민 여러분의 엄중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쯤 되면 투표 적극 독려에 특정안을 지지해달라는 읍소로 들린다. 선관위는 언제부터 '현행법'보다 '취재보호'를 중시했을까. 선관위는 불과 며칠 전 ´8월 24일은 주민투표일´이라는 피켓을 든 오 시장에게 "투표안내 행위라도 반복적, 계속적이 되면 법을 위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노골적이고 파급효과가 큰 '투표운동'에 대해서는 기자회견이라는 이유로 눈을 감고 있다. 

오세훈과 곽노현을 대하는 선관위의 이중 태도

반면, 서울시 선관위는 19일 서울시 교육청 공보담당관을 고발하고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을 수사 의뢰했다. 선관위는 그 배경에 대해 "투표불참을 유도하고 편향된 정보를 게재한 메일을 교사와 학부모에게 보내 주민투표법을 위반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곽 교육감에 대해서는 관여 여부를 따지겠다는 것이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닷새 앞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앞 횡단보도 앞에 서울시의 무상급식 지원 대상과 범위에 관한 주민투표를 찬성하는 현수막(위)과 반대하는 현수막(아래)이 걸려 있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닷새 앞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앞 횡단보도 앞에 서울시의 무상급식 지원 대상과 범위에 관한 주민투표를 찬성하는 현수막(위)과 반대하는 현수막(아래)이 걸려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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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선관위는, 사내 통신망에 2회에 걸쳐 주민투표 참여를 유도하고 무상급식을 '거지근성'으로 매도한 글을 올린 귀뚜라미그룹 최아무개 회장도 검찰에 고발해 균형을 갖춘 듯 보였다. 하지만 오 시장과 곽 교육감을 비교할 때는 형평성에서 문제가 있다.

오 시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D-9, 8월 24일은 '주민투표의 날'입니다)을 통해서도 "저와 서울시는 단 한 번도 무상급식을 반대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저소득층'을 우선 챙겨가면서 점진적,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의 혜택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라거나 "민주당과 진보진영을 중심으로는 벌써 주민투표 불참운동까지 이뤄지고 있는데 말입니다"라는 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 왔다.

주민투표법은 선거금지 공무원의 투표운동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투표 막판에 허위 사실을 담은 문자메시지나 현수막이 내걸리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도 선관위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선관위는 "정보제공을 빙자하여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정보를 제공하거나 두 가지 사항 중 어느 하나에 편향된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실은 '비겁한 투표방해 세금폭탄 불러옵니다' '투표하면 매년 3조 원이 절약됩니다'와 같은 문자나 현수막도 방치되고 있다. 주민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는 법 조항이 무색하다. 

그러는 사이 주민투표일은 다가오고 있다. 주민투표는 주요 정책 결정에 주민이 자유의사로 직접 참여하는 행사다. 그런데 지금 중립적으로 주민투표를 잘 관리해야 할 시장이 사활을 걸고 전면에 나서고 있다. 법 위반 여부를 떠나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번 투표는 주민이 아닌 시장이 주인공이 된 '이상한' 주민투표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오 시장뿐 아니라 선관위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태그:#주민투표, #무상급식, #오세훈, #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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