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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만든 투표함 뚜껑이 왜 이리 무거워

 

오세훈 서울시장이 그렇게 열고 싶었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투표율 25.7%에 머물러 개함 기준인 33.3%에 미치지 못해 '투표함'을 열지 못했습니다. 총 838만7278명 유권자 중 215만7744명이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투표함 뚜껑이 얼마나 무겁길래 열지 못했을까요.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둔 한 시민이 3월 15일 충남선관위에 투표함 크기가 어떻게 되는지 문의한 것에 대해 답변을 보니 선거인수에 따라 크기가 달랐습니다.

 

선거인수 2천 명 미만 투표구는 '가로 42㎝, 세로 33㎝, 높이 71㎝'이고, 2천 명 이상은 '가로 72㎝, 세로 40㎝, 높이 71㎝'였습니다. 그럼 재질은 무엇일까요? 옛날 독재정권시절 투표함을 바꿔치기 한 것을 기억하면 튼튼한 철재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답은 '종이'였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투표함 사진을 자세히 보니 종이로 보였습니다.

 

종이로 만든 투표함이니 뚜껑 역시 굉장히 가벼울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열지 못했습니다. 오세훈 시장이 아침 일찍 투표하고 현충원을 참배하는 비장함까지 보여주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24일자 사설을 통해 투표율 33.3%를 넘겨 투표함을 열자고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자칭 애국세력은 인터넷을 통해 한나라당과 극우세력들도 '투표독려'를 그토록 목놓아 외쳤고, 오세훈 일병 구하기 첨병인 '강남3구'의 피눈물나는 투표율에도 종이로 된 투표함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땅의 권력들이 온 힘을 다 합했는 그깟 종이로 만든 투표함 뚜껑을 열지 못하다니. 이들은 이제 자기들 마음대로 대한민국을 운영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애타고 간절하게 투표함을 열기 위해 힘을 썼는지 보겠습니다.

 

<조선>과 <동아>의 절규에도 서울시민 마음은...

 

<조선일보>는 24일자 사설 <839만명이 5000만의 '복지 틀' 정하는 주민투표>에서 투표율이 33.3%가 안 돼 투표함을 열지 못하면 "전체 예산 309조원 중 28%인 복지예산 비중이 44%로 급격하게 늘어나려면 교육이나 국방예산에서 그만큼 삭감하거나 국민들 세금 부담을 50조 원 늘려야 한다"면서 무상급식때문에 '교육'과 '국방'예산이 줄어들 수 있다고 은근히 겁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전국 유권자 중 21%인 서울 유권자의 투표 결과에 따라 나머지 5000만 국민의 복지정책 방향도 함께 결정된다"며 "한 번 복지정책의 틀이 확대되면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서는 것은 힘들다. 그리스·영국에서는 복지 축소로 청년들이 폭등을 일으켰다. 19세 미만의 다음 세대 인구 1100만명 어깨 위에 얹어질 부담도 서울 유권자 839만명의 선택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투표독려를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서울시민이 주민투표장에 가야 할 이유> 사설에서 "이번 주민투표는 서울시의 급식문제를 넘어 국가 차원의 복지정책 방향에 대한 국민의 생각을 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며 "투표율이 33.3%를 넘겨 주민투표가 성립돼야만 그것이 가능하고 예산을 들여 투표를 시행한 의미를 갖는다"고해 33.3%를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민의 생각을 알아야 바른 정책을 펼 수 있다. 서울시민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기회를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투표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절규에도 25.7%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오세훈 시장에게 안겨주는 데 그쳤습니다.

 

조전혁 "목사님을 고발하라, 나를 고발하라"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에게 몰표를 몰아줘 오세훈 시장을 구했던 강남3구(서초·강남·송파)는 이번에도 다른 구보다 휠씬 높은 투표율(서초 36.2%, 강남 35.4%, 송파 30.6%)로 '오세훈 일병 구하기'에 온 힘을 쏟았지만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강남시장'이라는 별명만 더 고착화시켜주었습니다. 앞으로 오 시장은 강북과 강남으로 서울을 갈라놓은 책임도 반드시 져야 합니다.

 

전교조와 법정싸움에서 7전 7패라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조전혁 한나라당은 의원 "나를 고발하라"고 외쳤습니다. 조 의원은 서울시 선관위가 주민투표 참여 독려 설교를 목사를 고발하자 자기를 불사르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서울선관위가 설교 중 투표를 독려했다고 목사님을 고발했다.. '서울시민 여러분, 오늘 투표가 나라의 앞날을 좌우합니다. 특히 젊은이들 많이 투표하세요. 무상시리즈는 여러분에게 외상긋고 부도내는 사기극입니다.' 서울 선관위는 나도 고발하라." - 24일 조전혁 의원 트위터

 

하지만 스스로 몸을 던졌지만 또 다시 패배하는 쓰라린 경험을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8전 8패가 되는 것입니까. 몸을 던져도 민주주의를 위해 던져야 하는데 정반대에 던지지 조롱만 받는 것입니다.  

 

 

김동길 "투표해 악귀들에서 조국을 살리자"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는 24일 <김동길프리덤>에 올린 '친구여, 투표하러 갑시다' 제목 글에서 "폭풍이 불어도 폭우가 쏟아져도 선관위가 마련한 주민투표소로 찾아갑시다"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입니다. 서울시민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투표소를 찾아가 투표를 해야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살아난다"고 호소했습니다. 사람에 따라 민주주의 개념이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는 또 "대통령인 이명박과 권력의 실세들이 차제에 '오세훈 죽이기'에 똘똘 뭉친 것입니까. 하늘이 무섭지 않습니까. 서울시민 여러분, 오늘 우리가 모두 기를 쓰고 투표소를 찾아 가기만하면 오세훈도 살고 서울도 살고 대한민국도 삽니다. 악귀들의 작간이 아무리 심해도 대한민국을 살리는 일에 앞장섭시다. '어화 벗님네여' 투표하러 갑시다. 서울을 살리고, 그리고 우리들의 조국을 살리기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무상급식 주장이 악귀가 하는 '작간'(作奸, 간악한 꾀를 부림. 또는 그런 짓)이라는 정말 섬뜩합니다. 그는 지난 23일에도 "고군분투하는 오 시장을 팔짱 끼고 수수방관합니까. 될 대로 되라는 겁니까. 자기들이 내세운 인물 한 사람이 도살당할 위기에 직면했는데 그저 보고만 있다니, 말이 안 됩니다. 그렇다면 내년 선거는 치룰 가치도 없습니다. 제 구실도 못하는 한나라당의 승리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악귀라고 비난까지 하면서 투표를 독려했지만 헛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동복 "'이순신 장군'마음으로"

 

1992년 남북고위급회담의 대변인을 지냈던 이동복 전 국회의원(자민련 전국구)은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직후 명량해전을 앞두고 배 12척만 있는 것을 두고 한 말까지 인용하면서 투표를 독려했습니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이순신 장군에게까지 도움을 청했을까요.

 

그는 투표함 개함이 불가능하게 보였던 24일 오후 4시경 <조갑제닷컴>에 올린 <향후 4시간 한나라당에 "상유 12척, 사즉생 생즉사(尙有 12隻, 死則生 生則死)"를 요구한다>는 제목 글에서 "이번 주민투표에서 실패한다면 그 같은 한나라당이 과연 내년 양대 선거에 무슨 염치로 후보를 내세울 수 있을 것인가?"라며 이번 주민투표 과정에서 자중지란을 보였던 한나라당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쩌면, 오늘 앞으로 남은 4시간이 특히 박근혜 의원에게는 그가 한국판 잔다르크 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를 보여 줄 수 있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기회라고 생각된다"며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에게 마지막 호소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소리로 들리지 않았고, 투표함을 열리지 못했습니다.

 

금란교회 목사 새벽기도 시간 "주민투표합시다"

 

"이제 오늘 서울 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이 참석하게 하시고 저들이 바른 선택을 통해서 아버지 이 나라가 흔들리지 않게 해주시고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하나님 지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 24일 <오마이뉴스> '금란교회 목사 "하나님, 서울시민 다 투표하게 하소서"'

 

대형교회는 결국 하나님까지 끌어들였습니다. 무상급식 반대가 하나님 뜻이라고 했는데 앞으로 무슨 얼굴로 성도들 앞에 서게 될지 궁금합니다.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색깔론과 사탄 세력 운운하면서 그들이 주민투표를 무산시켰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자기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한 것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선·동아·강남3구·대형교회·극우 합쳤지만 투표함 못 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권력이었고, 기득권이었습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그 기득권이 자기들 마음대로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번 주민투표가 남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뷰에 실립니다


태그:#오세훈, #주민투표, #극우세력, #한국교회,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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