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르나 성당에서 만난 행운
사르보나 성당은 세르비아 정교회를 대표하는 성당이다. 그래서 들어갈 때 복장을 챙겨야 한다. 반바지와 민소매는 안 되고, 남자는 모자를 벗고, 여자는 스카프를 써야 한다. 물론 내부촬영도 원칙적으로는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종교시설물에 들어갈 때는 조금 엄숙해지고 또 긴장이 된다. 사실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는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까다롭게 구는 측면도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샹들리에가 환하게 켜져 있고, 중앙 홀에서 무언가 행사가 열리고 있다. 빨간 카펫 위에 사람이 다섯 명 보이는데, 그중에 신부님도 한 분 계신다. 주변에도 가족과 친척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서 이 행사를 참관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아이가 세례를 받고 있다. 처음에는 성경을 읽고 기도문을 암송하는 등 아이를 축성한다. 그리고는 머리에 물을 흘려보내며 세례를 준다. 그러자 아이가 소리내며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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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비아 정교 세례식 사르보나 성당에서 세르비아 정교식 세례가 열렸다. 가족들이 아이를 안고, 정교회 신부가 성수와 성유로 아이를 씻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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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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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이어 향로가 신부에게 전달되고, 신부의 인도로 성당 내부 홀을 몇 바퀴 돈다. 아이의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할아버지가 그 뒤를 따른다. 세례가 끝나니 마음이 편한지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 마지막으로 신부와 가족이 홀의 가운데 빨간 원형 카펫에 모여 무언가 대화를 나눈다. 세례가 끝났으니 아이에게 복이 내릴 거라는 등 덕담을 나누는 것 같다. 가족 중 두 명이 행사 전 과정을 카메라와 비디오에 담는다.
그 덕에 나도 세례 과정을 카메라와 비디오에 담을 수 있었다. 성당에 오면 이렇게 세례식 장면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다. 또 설사 온다고 해도 그 행사장면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사르보나 방문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만약 세르비아 말을 알아들어 세례식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면, 좀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성당은 밀로쉬 오브레노비치(1780-1860) 왕에 의해 1837년에서 1840년 사이에 지어졌다. 설계자. 시공자, 조각가, 화가 등 모두 당대 최고의 명인들이었다. 특히 이콘화 등 그림을 그린 사람은 드미트리에 아브라모비치로 19세기 전반 최고의 화가였다. 건물은 후기 바로크 양식이 가미된 고전주의 양식이다. 그리고 이 성당은 대천사 미카엘에게 봉헌되었다.
사보르나 성당에는 세르비아 왕가와 교회 수장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이 성당은 세르비아 정교회의 수위권 성당이며, 동시에 왕가의 교회였기 때문이다. 성당의 정면 문 위로는 금칠이 화려한 이콘화가 세 개 그려져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그림이 있다. 그 아래 대천사 미카엘과 가브리엘의 모습이 보이고, 가장 아래에는 아기 예수를 품고 있는 마리아가 두 손을 들어 사람들을 맞이한다.
세르비아는 동방정교의 한 분파인 세르비아 정교를 믿는 나라다. 전체 국민의 90.68%가 세르비아 정교를 믿고 있다. 그 다음 1.29%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고, 1.03%가 로마 가톨릭을 믿고 있다. 0.24%가 개신교를 믿고, 0.03%가 유대교를 믿는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도 2.02%나 되며, 3%는 자신이 어떤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 라는 이름의 카페
사르보나 성당 옆에는 '?'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다. 카페 이름이 물음표다.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니 나름대로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이 건물은 1823년 밀로쉬 오브레노비치에 의해 지어졌다. 성당보다 17년이나 빠르다. 그런데 오브레노비치는 이 건물을 자신의 무역 담당 영사인 나움 이치코에게 주었다. 1826년에는 이 건물 1층에 이치코의 사위인 에킴-토마 코스티치가 '에킴-토미나'라는 이름의 카페를 열었다.
이후 소유자가 바뀌었고, 1878년에는 '목자에게'라는 카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1892년에는 '성당으로(Kod Saborne crkve)'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그 이름이 문제가 되었다. 카페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이름이라고, 성당에서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건물의 주인은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소?"라고 물으면서, 과도기적인 조치로 의문부호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적당한 답변이나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고, 현재까지 '?'를 상호로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은 세르비아의 문화사와도 관련이 깊다. 1834년 이 카페에서는 베오그라드 최초로 당구시합이 열렸다고 한다. 그리고 세르비아 신문의 독자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여론형성의 장이 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카페는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장소로 출발했지만, 사람들이 모이고 여론을 형성하는 대중적인 공간으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음식도 조금은 지치기 시작한다이제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점심은 사르보나 성당에서 멀지 않은 중국음식점에 예약이 되어 있다. 음식점 이름은 영어로 웨스턴 한(Western Han)이고 중국어로 만사호(萬事豪)다. 4층의 현대식 건물로 1층에 식당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6~8인용 식탁이 여러 개 마련되어 있다. 우리는 인원에 맞게 자리를 잡는다. 한 네 개의 테이블을 차지한 것 같다.
먼저 차가 나온다. 물도 나오는데, 작은 병에 두 개 밖에 나오지 않는다. 오전 내내 걸어선지 모두 갈증이 난 모양이다. 물이 부족하다. 가이드에게 물 좀 더 달라고 하니 물은 그 정도 마시고 대신 차를 마시라고 한다. 유럽에 오면 물을 마음대로 실컷 마실 수 없는 게 문제다. 우리의 물 인심이 그리운 이유다. 사실 갈증을 푸는 데는 물보다 차가 훨씬 좋을 수도 있다.
잠시 후 본 음식이 나오기 시작한다. 항상 그렇듯이 5가지 정도의 음식이 접시에 담겨 나온다. 그러면 필요한 만큼 접시에 덜어 먹는 식이다. 그런데 국내처럼 식탁 가운데 돌아가는 테이블이 없다. 그래서 음식 접시를 하나하나 찾아 음식을 덜어야 하는 불편이 있다. 돌아가는 테이블의 효용성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벌써 며칠쯤 지나서 그런지 회원들이 외국음식에 대해 조금은 질리기 시작하는 눈치다. 고추장이 나오고, 깻잎이 나오고 김이 나온다. 외국 음식을 비교적 잘 먹는 나도 깻잎 한 장 김 한 장에 입안이 개운해진다. 의식주 중 가장 늦게까지 자기네 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음식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런 것을 하나도 준비해 오지 않았는데, 함께 하는 동료들 덕분에 점심을 더 잘 먹었다.
다시 사바강을 넘어
점심을 먹고 나자 다들 몸과 마음이 느긋해진다. 또 오후에는 관광이 없고, 보스니아로의 이동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제 베오그라드의 도심을 빠져나가며 소위 차창관광이라는 것을 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 버스는 크랄리야 밀라나 대로를 남북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크네자 밀로샤 대로로 접어든다. 이 도로는 베오그라드 구도심을 동북에서 남서방향으로 가로지른다.
이 도로를 타고 가다 우리는 모스타르스카 페틀리야 교차로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사바강쪽으로 향한다. 사바강은 베오그라드를 동서로 나누는 강으로, 세르비아 사람들 중 1/3이 이 강을 끼고 살고 있다. 세르비아에는 세 개의 큰 강이 흐르고 있다. 세르비아 중북부를 동서로 흐르는 두나브강이 있고, 세르비아 남서부를 흐르는 사바강이 있으며, 세르비아 남동부를 흐르는 모라바강이 있다.
사바강을 건너며 보니 오른쪽 강변으로 베오그라드 기차역이 보인다. 그런데 이 기차역은 종점이어서, 들어온 기차가 기관차를 돌려 다시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기관차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기도 하고, 수많은 객차들이 나란히 빽빽하게 서 있기도 하다. 기차역 전체의 넓이도 대단하다. 아마 세르비아 최대의 기차역일 것 같다. 옆에 함께 여행하는 분이 옛날 목포역에서 이런 풍경을 보았다고 말한다.
버스는 사바강 위에 놓여있는 가젤라 다리를 건넌다. 세르비아도 요즘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많은지 다리와 도로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다리를 건너며 나는 베오그라드 도심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본다. 이제 서서히 베오그라드를 떠나는 것이다. 사바강을 건너면 신도시가 있고, 신도시를 빠져 나오면서 고속도로가 서쪽의 자그레브와 서북쪽의 노비 사드로 이어진다. 우리는 서쪽 자그레브로 이어지는 E70 고속도로를 타다가 루마 근처에서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남서방향으로 이어지는 국도를 탈 것이다.
이 길은 다시 사바강변에 있는 샤바치까지 이어진다. 사바강 건너에 있는 샤바치에서 보스니아와 국경이 있는 즈보르닉까지는 60㎞쯤 된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 가다 즈보르닉에서 국경을 넘을 예정이다. 우리는 로즈니카를 지나 잠시 휴게소에 들른다. 버스에 기름도 넣고, 휴식도 취하고, 남은 세르비아 돈도 다 쓰기 위해서다. 그러고 보니 이곳 세르비아에서는 별로 산 것이 없다. 어디 가나 책 한 권, 지도 한 장은 샀는데 말이다.
버스는 이제 사바강의 지류인 드리나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이 드리나강이 바로 세르비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국경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세르비아의 로즈니카부터는 평지가 사라지고 산악지방으로 들어서게 된다. 구 유고연방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산악이 가장 많은 나라였다. 그래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대륙성 기후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이곳 발칸 지역은 습도가 높지 않아선지 더위를 별로 느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