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주민투표가 결정이 났을 때 서울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투료일이 다가오자 투표에 대해서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 투표였다. 다시 말하자면 부자아이들까지 무상급식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투표는 그것이 아니라 단계별 무상급식이냐 그렇지 않으면 일률적 무상급식이냐에 대한 투표였다. 무지한 주민으로 이 두가지 안건의 차이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난한 아이들에게는 빨리 밥을 주고', 부자 아이들에게는 천천히 밥을 주자'는 투표를 하자는 것이 아닌가? 결국에는 모두 밥먹고 살자는 것이었다.
사람이 밥을 먹자는데 돈주고 먹느냐 공짜로 먹느냐는 것을 두고 주민투표를 하는 것은 무슨 일인가? 그 취지에는 가난한 아이들이 공짜로 밥을 먹으면 가난이 드러나서 창피하니까 부자아이들까지 같이 무상으로 먹으면 표가 나지 않아서 괜찮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로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논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무리 우둔한 백성이어서 이 두가지 복지정책에 대해 깊은 사려가 없다고 하더라도 현재 주민투표에서 나온 투표의 결정은 엄밀히 따져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에 대한 투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보편적 복지를 어떤 시기에 하는 게 좋으냐를 결정하는 투표라는 것이다. 결국 나같은 사람들은 투표장에 가서 도장을 찍으려고 해도 찍을 난이 없다. 그러고는 주민의 권리를 행사하라고 하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투표률이 나오지 않아 투표결과를 개표하지 못하게 될 경우에는 전면무상급식을 실시할 수밖에 없다는 결과가 나온다. 그렇다면 전면무상급식을 원하는 사람들은 투표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그런데 오시장은 투표율이 나오지 않으면 시장식을 사퇴하겠다고 하였다. 이건 또 무슨 심상인가?
아이들 밥 먹는 거 가지고 어른들이 가난한 아이들은 빨리 밥주고, 부자 아이들은 처음은에는 자기 돈(부모 돈)으로 밥을 먹게 하다가 나중에 다 무상으로 먹이자는 의견을 가지고 주민투표를 하며 이것이 관철이 되지 않았을 때는 시장직을 사퇴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는 과연 그 본질이 '복지정책'에 있었는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저변에 깔려 있었는가 하는 회의를 가지게 한다.
한편 이번 투표는 결과를 떠나서 투표를 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마음이 편치 않는 불편한 투표였다. 주민들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싶었지만 정작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자리도 만들어 놓지 않고 권리를 행사하라고 하는 이상한 주장이었다.
그리고 투표결과를 두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또 하나의 권력다툼의 쟁점을 만들고 있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복지나 정책보다는 권력 자체를 위한 정치를 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논리들이 난무하며 이것을 이제는 '꼼수'라고 하면서 저속한 정치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정작 꼼수는 오시장만 하는 게 아니라 모든 정치인들이 다같이 하고 있다면 누가 자신있게 부인할 것인가?
복지는 보편적이든 선별적이든 국가 재정이 확보된 가운데 실시한다면 어느 국민이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재정과 복지의 근원 문제들을 생각하지 않고 다만 이것을 정권의 우위에 서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아무리 우매한 국민이라고 할지라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투표를 실시하면서 언론은 투표를 실시하는 쪽과 그렇지 않는 쪽을 좌우로 나눴는데 이는 마음이 편치 않는 주민들을 더 불편하게 하는 일이다.
투표를 하지 않은 주민들이 유식하여 '보편적 복지'를 지지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복지정책 하나 실시하지 못하고 있는 정치 형태에 대한 외면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결국 25.7%의 투표률로 투표 결과는 보지 못하였지만 이 모든 것이 마무리 된 지금은 투표를 하게 된 현실을 국민들이 바로 알아서, '정치인들이 꼼수로 국민을 우롱한다면 그것이 어느 당이 되었든지 국민들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메시지로 우리 모두가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