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행보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러시아 브리야트 공화국 수도 울란우데에서 열린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세계 언론이 귀를 쫑긋하고 있다. 과거에 그랬듯이 러시아와 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성상 뉴스거리가 될 만한 정보가 풍성하게 흘러나오지 않아 애태울 언론들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지난 7월 2일부터 6일까지 러시아 연방 브리야트 자치공화국에 머물렀던 나는 김 국방위원장의 울란우데 도착 소식부터 관심 있게 행보를 주시했다. 브리야트와 울란우데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얼마 전에 갔던 바이칼의 코스와 비슷해 놀라기도 하고 바이칼의 소식이 반갑기도 했다. 물론 회담이 잘 돼 러시아 천연가스가 가스관 건설로 북한을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온다면 천정부지로 솟고 있는 기름 값과 난방비 부담이 덜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김 국방위원장이 울란우데 기차역에 도착에 이어 바이칼 관광 중심 경제특구로 개발되고 있는 투르가 마을 방문하고 바이칼 호숫물을 채운 수영장에서 물놀이했다는 기사도 차례로 올랐다. 또 바이칼 전통 음식 '오물'구이도 맛보았다고 한다.
7월 5일 그곳을 지날 때 그런 말을 들은 기억도 떠올랐다. 브리야트는 프리바이칼 지구에 대규모 관광특별경제구역을 계획이며 저곳에 항구를 건설하는 중이라는 세르게이 국립보훈병원장의 설명이었다.
커다란 배가 들어올 수 있게 건설한다는 바이칼 항구는 중장비가 들어서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프리바이칼은 외부에 그리 알려지지 않아 천연의 숨은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을 관광지구로 개발하면 경제효과야 많겠지만 조용하고 여유로움 속에서 그림처럼 펼쳐지던 자연경관은 마지막일 수 있다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3200㏊ 넓은 부지에 5구역으로 나눠 '바이칼 항구'부터 리조트 단지, 휘트니스센터, 스키장, 요트클럽, 빌라 단지, 호텔 등을 세울 예정이며 대부분 일본과 중국에서 투자하고 있으나 한국은 한 명도 투자자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 투자도 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브리야트는 아직 한국에 자세히 알려진 게 없어 정보를 얻으려면 여행기 정도에서 그칠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도 하다. 브리야트는 러시아에서도 지하자원이 풍부한 편이며 타이가 삼림지대의 목재, 바이칼의 남동에서 남서까지 걸쳐있는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통역을 맡았던 사예나는 "전 세계에서 나오는 광물은 브리야트에서 다 나온다"고 설명했다.
내가 갔던 프리바이칼 지역의 듁신벨스트(Techinvest) 캠프는 우리나라 관광객이 거의 가 본 적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에 조용한 휴식을 즐기기에 알맞은 휴양지였다. 바이칼 호수 옆 숲에는 가족과 소풍을 나온 몇 명의 러시아인을 보았을 정도로 한적한 곳이었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관광객이나 방문객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나 비행기로 이르쿠츠크에서 내려 알혼섬으로 들어가는 코스를 택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또 아르쿠츠크가 바이칼을 감상하기에 더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기에 여행객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귀한 손님을 맞아 대접하는 러시아 빵과 소금김 국방위원장이 아무르주 브리야트 역에 도착하자 러시아 전통 복장을 입은 미녀가 커다란 빵을 쟁반에 받쳐 들고 서서 환영했다. 귀한 손님이 오면 대접한다는 러시아 전통 호밀빵이다. 김 국방위원장이 러시아 미녀가 들고 있는 쟁반에서 빵을 떼어먹는 사진이 흥미있는 뉴스거리로 관심을 끌었다.
낯익은 커다란 빵과 작은 소금그릇을 보자, "우리도 저 빵 두 번이나 먹었는데!" 소리가 절로 나왔다.
처음 만나면 행복과 건강을 기원한다는 뜻으로 남자에게는 파란 천으로 만든 목도리를 목에 둘러주고 여자에게는 희거나 또는 파란 목도리를 둘러 주는 것도 러시아의 환영식 중 하나다. 그리고 빵을 먹은 후 우유 대접을 들고 한 모금씩 먹게 한다.
울란우데 아동병원을 방문했을 때와 프리바이칼 지역으로 들어갈 때, 이렇게 두 번 러시아 전통 빵 쟁반을 들고 손님을 맞는 러시아 전통환영을 받았다. 우리 일행은 돌아가며 빵을 조금 떼어 소금에 찍어 먹었다. 고소하고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똑순이는 "너무 맛있다!"를 연발하며 한 번 더 떼어먹기도 했다.
러시아 음식이 기름기가 많은 거라고 지레짐작 했지만 의외로 담백하고 우리 입에 맞는 음식도 많다. 빵과 과자가 다양하고 말, 소, 양, 돼지, 염소 등 목축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아 햄과 소시지, 치즈 종류도 식탁에 올랐다.
특히 오물(omul)이라는 바이칼에서만 나오는 물고기는 바이칼의 명물로 유명한데 러시아인들은 "어무이"라고 'ㄹ'을 묵음으로 발음한다. 소금을 뿌려 꼬치에 꿰어 자작나무 모닥불에 훈제처럼 은근히 오래 구워내는 어무이 구이는 정말 담백하고 맛있었다.
어무이 살을 얇게 포 떠내 달걀을 풀어 씌워 부친 어무이 전은 맛과 모양이 동태 전과 영락없이 똑같았다. 오히려 더 담백하다는 게 먹어본 사람들의 평이었다. 바다에서 떨어져 있는 시베리아는 생선은 연어를 주로 먹으며 바이칼 어부가 잡아 올린 물고기 요리를 즐긴다.
일명 '어무이 회'라는 요리도 소금에 절여 발효한 듯 어두운 붉은 색이었지만 맛은 의외로 담백하고 깨끗했던 기억이 난다.
여행 내내 구역질에 시달려 거의 식사를 못하던 내가 바이칼에 도착한 다음날 식욕을 되찾은 것은 다음 날 아침 식탁에 올라온 국수 수프였다. 닭개장이나 닭곰탕에 기름만 떠있어도 입에 대지 않는 까탈스런 입맛을 가진 내가 고개를 젓자, 똑순이는 "너무 맛있다"고 계속 권한다. 못이겨 한 술 떠서 입에 넣는 순간, 훌륭한 맛에 감탄했다.
닭 국물에 넓적한 국수를 넣은 수프는 국수가 힘이 없어 쫄깃하지도 않았지만 러시아 닭고기는 정말 고소하고 부드러우며 맛있었다. 부드러운 토종닭고기 맛이라고나 할까. 한 그릇 뚝딱 마시고 나서 단 맛이 도는 죽 접시를 널름 다 비웠다.
바이칼에서 먹은 러시아 음식 덕분에 기운을 차린 나는 비로소 러시아 여행의 진수를 느끼며 즐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