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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도 지나고 민족의 명절 추석(秋夕) 대목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이때부터는 참외와 수박 등 여름 과일은 물론 길가의 풀들도 더는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텃밭의 가지도, 풋고추도 싱싱하기가 예전만 못하다.

‘먹시’라 불리는 재래종 감. 2년 전 추석 대목 때 촬영한 사진입니다.
 ‘먹시’라 불리는 재래종 감. 2년 전 추석 대목 때 촬영한 사진입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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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배 등 가을 과일이 선을 보이기 시작하는 계절. 그중 고향의 맛 감(柿)을 빼놓을 수 없다. 붉게 익은 감은 예나 지금이나 조상의 제사나 명절 차례상에 빠지지 않는다. 특히 '먹시'로 불리는 재래종 감은 가을운동회와 가을소풍을 상징하는 과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올 추석(9월 12일)에는 안타깝게도 고향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재래종 감을 맛보기 어려울 거라고 한다. 추석이 너무 이른데다 긴 장마로 대부분 낙과하는 바람에 산지에서 출하가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것.

"올 추석에 우린 감 먹기는 틀렸어유..."

2년 전 추석을 앞두고 집에서 우려낸 감을 펼쳐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윤 할아버지 부부.
 2년 전 추석을 앞두고 집에서 우려낸 감을 펼쳐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윤 할아버지 부부.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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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종자와 순수 토종 감에 대해 설명하는 윤 할아버지.
 일본 종자와 순수 토종 감에 대해 설명하는 윤 할아버지.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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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5일)는 군산시 대명동 감독(감도가)의 윤귀섭(71) 할아버지를 찾았다. 집안에 기계를 설치해놓고 요즘도 감을 직접 우려서 파는 윤 할아버지. 그는 감 장수들도 모두 떠나고 손님의 발길마저 끊겨 썰렁해진 감독을 고집스럽게 혼자 지키고 있었다.

-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추석이 보름쯤 남았는데 감이 왜 없지요?
"어떻게 생긴 하나님인지 긴 장마에 바람까지 몰고 와서 감이 다 쏟아졌다(낙과)고 헙니다. 그러니 추석에 무슨 감이 나오겠어유. 올 추석에 우린 감 먹기는 틀렸어유. 아마 9월 30일쯤 가야 쬐끔씩 얼굴을 비칠 거유. 그러니 올 대목장사는 물 건너 간 거쥬."

2년 전에는 추석 대목에 집에서 우린 감을 문 앞에 펼쳐놓고 몇 접씩 팔았다고 한다. 그러나 작년에는 출하량이 적어 장사를 못했고, 올해는 장마까지 겹쳐 더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윤 할아버지는 그래도 내년(2012년)에 희망을 걸었다.

- 내년에 감 수확량이 많다는 보장도 없는데 어떻게 기대하시나요?
"재작년(2009년)에는 추석이 10월 초에 들었고, 작년에는 9월 20일쯤 들었는디 올해는 12일이 추석이어서 감이 익을 시간이 없지유. 윤달이 드는 내년(2012년) 추석은 10월쯤 드니께 과일이 영그는 시간이 길지 않겄어유. 그래서 내년을 기대허는 겁니다."

윤 할아버지는 추석을 앞두고 카바이드로 우려낸 단감은 조금 나오겠지만, 시세가 만만치 않을 거라고 했다. 작년에는 상품 한 접에 도매로 10만 원 나갔는데 올해는 20만 원도 넘을 거라는 것. 그래도 소비자들은 차례용으로 서너 개는 사야 할 텐데 3개 1만 원(소매) 정도로 내다봤다.

재래종 감 좋아했던 농어민들이 진정한 애국자

윤 할아버지가 옛일을 회고하며 술집으로 바뀐 감독의 감 가게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윤 할아버지가 옛일을 회고하며 술집으로 바뀐 감독의 감 가게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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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는 도시보다 시골 사람들이 감을 더 좋아했던 것으로 아는데 요즘은 어떤가요?
"감은 벼 벨 때가 젤 맛있쥬. 타작이 시작되는 10월쯤 되믄 한 사람이 서너 접씩 사가고 혔응게유. 낫질 허다가 허리 아플 때 논바닥에 앉아 쉬면서 먹는 감이 최고로 달고 맛있다고 헙디다. 근디 요새는 촌 양반들 얼굴 보기도 어렵더라고유."

윤 할아버지는 시골 사람들 발길이 끊긴 이유를 인스턴트식품에 길들여진 입맛의 변화에 따라 줄어든 감농장과 출하량을 꼽았다. 옛날에는 감 농사를 짓는 농가가 많았는데 사람들 입맛이 변하면서 감 농가는 물론 출하량이 1/10 정도로 줄었기 때문이라는 것.

- 뱃사람들도 감을 좋아했던 것으로 아는데요?
"그럼유. 촌에서 농사짓는 사람들보다 더 좋아혔쥬. 배가 나가는 조곰(조금)때쯤 되믄 옆에 있는 '양키시장'으로 옷 사러 왔다가 적게는 다섯 접, 많게는 열 접씩 사갔응게유. 열 접이믄 낱개로 1000개니께. 징그랍게 먹은 거쥬."

윤 할아버지는 뱃사람들과 농민들은 단감(홍시)보다 재래종인 '먹시'를 좋아했다며 그들이 진정한 애국자이고 감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단감은 카바이드로 우려낸 일본 종자이고, 먹시는 물로 우려내며 순수 토종이라고 부연했다.  

맛좋은 재래종 감을 외면하고 겉보기에 좋은 단감을 선호하는 세태를 꼬집기도 했다. 일본어로 '아끼다마'라 불리는 단감이 맛있어서 먹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조상을 모시는 차례상에 일본 감을 올릴 수는 없다는 것.    

윤 할아버지는 말을 마치며, 아이들 군것질거리가 귀하던 옛날에는 추석이 가까워지면 감을 사러오는 사람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렸고, 하루에 한 트럭씩 팔았는데 몇 년 전부터는 하루에 몇 접 팔기도 어렵다며 씁쓸해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추석, #재래종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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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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