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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사창초등학교 6학년 담임 이상훈 선생님과 그의 제자들, 그리고 '훈샘'의 아내인 나(화성시 동탄초 교사)까지 9인이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2박 3일 여정으로 지리산엘 다녀왔습니다. 우리의 졸리고 아프고 즐겁고 배불렀던 지난 이야기. <기자 말> 

그의 근육을 보고 '제법 콜라병'이란 수식어를 붙여준 누군가가 있었다. 맞다. 운동을 좋아했고 결혼 후에도 신체능력향상을 위해 한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은 결과  필봉산 날다람쥐처럼 날랜, 체육 전공자 같지만 실상 초등담임교사인 그. 두 아이 출산 후 불규칙한 운동으로 허리에 냄비 손잡이를 양쪽에 추가하며 더욱 둔한 몸을 자랑하는 그의 아내 나, 그리고 음악줄넘기로 근방에서는 나름 '동춘서커스단' 대접을 받는, 기초체력 짱 7명의 학생들이 지리산으로 간다.

그가 속한 사창초 아이들과의 지리산 투어에 내가 엄하게 끼게 된, 어느 날 저녁 직원회식에서의 대화 한 토막.

훈샘 : (술 먹어 게슴츠레한 눈에 목적이 있었기에 정신은 말짱한 그) "교장선생님, 이번 여름방학에 우리 반 아이들 데리고 지리산에 다녀와도 될까요?"
교장선생님 : (먹은 술이 확 깨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가야 하기에) "음…. 이성애 선생님(나)이 가면 허락해주지."

여름 내내 비. 어제도 비. 출발 당일도 비. 본격적인 산행을 하는 내일과 모레 지리산은 흐림이지만 지리산을 기점으로 동북부와 남쪽엔 비가 온단다. 현재 10명 중 1명은 장염으로 1명은 기관지염이 심해져서 산행을 할 수 없다고 보고됐다. 나머지 한 명은 오락가락 비 때문에 갈지 안 갈지도 오락가락한다.

초등학생 일곱, 선생님 둘, 지리산으로 떠나다

아침잠도 제대로 못 잔 남편은 늦은 아침밥 먹고 베란다 의자에 앉아(일명 '독거노인각'이라 불리는 쓸쓸한 포즈) 밖에 내리는 비와 스마트폰을 번갈아 본다. 쑝쑝 아이들의 문자 오는 소리를 시작으로 학부모와의 통화가 시작된다. 진즉에 질병으로 출발이 어려운 아이의 부모님과 통화를 먼저 한다.

상대편의 말을 많이 듣는 듯 말은 별로 없고 간간히 "네, 그렇지요", "그렇죠. 힘들지요"로 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비 맞아 쳐진 개의 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세 번째 통화를 하면서 말수가 느는가 싶더니 한층 발랄하다. 아름이 어머니께서는 일단 아이들도 방학 내내 기대하는 바가 컸고 비가 오긴 하지만 일단 출발해서 비의 양에 따라 산행의 코스를 변경하는 것도 방법이다. 선생님과 함께 기차 타고 지리산 갔다 오는 것 자체가 추억이지 않겠냐 하신다.

'어, 그건 내 생각인데.'

모든 학부모와 통화를 한 후 학교 나갈 채비를 한다. 일단 학교에 나가보고 갈지, 안 갈지, 가면 어떻게 갈 건지를 논의하고 결정한 후 얼른 알려주어야 한다. 당장 오늘 밤 11시 출발이기에 시간이 엄청 촉박하다. 나도 나름 산행 팀의 일원인데 나에겐 말 한마디 확실히 하지 않고 집을 나가 버린다. 송현(6살)과 송주(4살)를 언니네 집에 맡기려고 꾸려 놓은 짐 가방이 아침나절부터 혼자 신발장 옆에 누워 있다.

'간다는 거야? 안 간다는 거야? 나도 나름 바쁜 사람이거든!'

늦은 점심을 먹고 전화를 걸어보니 드디어 지리산 산행팀이 꾸려졌단다. 3명은 불참, 나머지 7명은 간다. 훈샘과 나 그리고 성구, 승훈, 영석, 현희, 도희, 주화, 아름이다.

'9명이네. 어! 뭐야? 우리 소녀시대야? 그런 거야?'

무박 산행. 기차에서 잠을 자고 있는 아이들.
 무박 산행. 기차에서 잠을 자고 있는 아이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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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한테 바지 하나 사주면 좀 좋아?

남편은 아이들 챙겨서 오후 8시 30분까지 수원역으로 온단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맡기고 혼자 오후 10시에 가기로 했다. 뭘 입지? 아~쒸. 요즘 쌈박한 등산복도 많던데. 언젠가 내가 특정 바지를 가리키며 "나 저 바지 사고 싶다. 나중에 저거 살 거야"라고 언지를 준 것도 같은데. 자기 때문에 코 꿰서 지리산까지 가는 마누라에게 그것 비스무리한 거라도 사주면 좀 좋아.

내 등산바지는 신혼여행으로 설악산 가다가 축의금다발 현금인출기에 넣고 즉흥적으로 산 거라 그때도 마음에 안 들었고 지금은 더욱더 싫고. 그렇잖아도 막 구겨넣어 옷의 형태도 가늠하기 힘든 옷들을 또 한번 들쑤셔댔더니 서랍 폭발 직전. 간신히 청소년단체 야영 반바지를 찾아냈다. 에휴~ 5년 만에 발견한 이게 그나마도 시원하고 가볍겠다. 이거라도 입어야지. 머리 높이까지 올라오는 등산 가방에 해체와 재구성의 심란한 복장을 한 후 오산역에서 지하철 탑승.

'사람들이 나만 봐~.'

나만 보는 시선이 수원역에 내려서도 계속되는 착각을 느끼며 2층 탑승장으로 속히 장소 이동. 어랏! 서울역에서 노숙자들 못 자게 쫒아냈다더니 수원역이 노숙자들의 메카로 떠오르려나보다.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 꽤 여러 명의 노숙자가 내 집같이 편안한 차림(얼룩무늬 실내화와 츄리닝 등 편한 차림)으로 무리를 이루고 있다. 단체로 텔레비전을 느긋이 보는 폼이 졸음을 불러들이고 있는 중. 그들을 배경으로 늦은 퇴근길을 서두르는 사람들이 빠른 발걸음을 보며 어울리지도 않는 사색을 하다 씨익 웃는 나.

'사람들이 저 사람들만 봐~.'

역시 그들보단 그나마 내 복장이 쌈박하고 무난하다는 자위를 하며 저분들 편히 주무시도록 수원시가 안락한 취침용 의자를 속히 마련해줬으면 좋겠다란 타위(?)도 함께.

"어엇! 여봉~."

오후 10시가 다 되어 수원역에 들어서는 내 반쪽, 콜라병. 역시 애들보단 우리 남편이 무지하게 반갑다. 그런데 남편보다는 아이들이 나를 향해 더 환히 웃어준다. 이이이이이야~ 도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복장 구입, 주화는 발목부터 머리까지 구입. 나머지는 기능성 고려하지 않은 시원한 평상시 복장.

"오늘 안 갔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 

떡볶이는 먹을 줄 모르고 가방은 지킬 줄 아는 나를 남겨두고 모두들 역 앞에서 분식을 먹고 돌아왔다. 드디어 오후 11시 15분 여수행 기차를 타고 출발. 우린 구례역까지 간다. 예상 도착시간은 새벽 3시라는데.

"얘들아~ 푹 자둬~".

푹 자는 거 같진 않은데 기척은 없다. 무박 후 산행. 얼마나 최악의 컨디션일까?

재첩국을 먹는 아이들
 재첩국을 먹는 아이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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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먹어 둬. 이게 마지막 제대로 된 밥이니까"

새벽 3시. 구례역 도착.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기차에서 쏟아져나오더니 순간 정면을 응시한 채 뛴다. 으악! 그들의 정면, 즉 내 정면에 들어오는 버스 한 대.

"야! 뛰어."

촐랑 맞은 내가 먼저 냅다 뛰기 시작. 여유롭게 탑승하여 아슬아슬하게 자리에 안착. 구례버스터미널로 갔다가 아침을 먹은 후 이 버스에 다시 타고 노고단까지 간단다.

10년 전 쯤왔을 때랑 변한 게 하나 없는 구례터미널 안 몇 개의 식당이 불을 밝혔다. 할머니 식당에 들어서니 큼직한 메뉴판이 1m 50cm쯤 되겠다. 그런데 많은 메뉴 중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재첩국밖에 없단다. 솔직히 1m 50cm 폭의 메뉴 중 우리가 재첩국을 골라서 먹는 거랑 그것밖에 먹을 수 없는 건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래도 일단 시간이 바특하니 재첩국 9그릇 주문. 아저씨 한 팀이 벌써 재첩국에 밥 말아 드시고 있다.

"많이 먹어 둬. 이게 마지막 제대로 된 밥이니까."

걷는 게 다소 불편하신 할머니의 참신한 역발상 상차림이 시작된다. 반찬-국-밥-수저-물. 지금도 말하지만 남편은 처음 재첩국 딱 봤는데 '뭥미, 이게 6000원짜리 맞는감?' 의아하고 언짢았단다. 뽀얀 국물에 숑숑 썬 쪽파만 동동 떠 있어서. 그러나 일단 국물 한 입 떠넣자 맛이 좋다.

'섬진강은 맛있구나.'

남편과 나는 재첩국에 밥 한 공기를 다 말은 후 짜지 않고 마치맞게 잘 익은 배추김치 쩍쩍 찢어 국물까지 말끔히 먹었다. 애들 밥그릇을 보니 반 정도의 아이들은 국, 밥 싹싹. 나머지 아이들은 반 정도도 못 비웠다. 특히나 남자애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한 그릇씩을 뚝딱 비웠는데 여자애들은 거의 못 먹었다. 그중 깨끗이 비운 아름이의 밥그릇이 있어 한시름 놓는다.

"도희야, 주화야, 현희야, 이게 바로 섬진강에서 잡아 올린~ 주저리 재첩국 주저리 그러니까 먹어둬 주저리 안 먹으면 올라갈 때 기운 달리고 주저리~."

간식 먹어치우기, 그것이 우리 살 길이다

다시 노고단까지 연장 운행한다는 버스에 승차. 화엄사에서 비장한 각오로 1인이 내렸고 지리산 산행의 경험이 있거나 관련 정보를 아는 사람은 그 1인이 치를 사투에 소리 없는 응원을 잠시 보낸 후 다시 노고단으로 고고씽.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훈샘이 사와서 미리 나눠준 우비를 꺼내어 입고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주화와 현희의 우비 밖으로 비죽이 나와 있는 쇼핑백이 보인다.

"그게 뭐야?"

먹을 거란다. 쇼핑백도 들고 산행을 하는 것은 너무 힘들 게 뻔하여 가방을 비우자고 하니 가방엔 옷가지들이라 비울 수도 없단다. 어쩔 수 없다. 저 손에 들린 걸 어떻게든 다 먹어야 한다. 먹어치우는 것이 우리의 살 길이다.

"노고단 대피소까지 가서 현희랑 주화 간식 다 먹자!"

기껏해야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이라 아주 어둡다. 앞에 선 훈샘이 헤드라이트를 켜자 남자아이들이 똥꼬까지 바짝 따라붙는다. 난 주화의 후레쉬를 달래서 뒤에서 길을 비추며 간다. 등산화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등산복도 거의 갖추지 않았다. 손에 버거운 짐까지 들고서 시커먼 어둠 속을 소녀시대가 걷고 있다. 비는 부슬부슬, 후두둑 후두둑. 우비 속에 맺히는 땀 때문에 해 뜨기 전 우리는 이미 찝찝하다. 찝찝하고 찝찔한 냄새도 솔솔 풍기고.

'지구가 낑낑대고 스스로 돈들, 밝은 빛이 우리에게 비출지는 모르겠다. 이 어둠이 걷히지 않으면 어쩌지?'

겹겹이 시커먼 구름 뒤에 해가 떠올랐나 길, 돌, 풀, 나무의 윤곽이 보인다. 재첩국 마냥 해님이 뽀얗게 떠오르고 있다.


태그:#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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