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 전 한국전쟁 당시 징집돼 군번을 받은 '17세 이하 소년병'(정부는 '소년·소녀지원병'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소년병'으로 통일한다)이 2만9597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6․25참전소년병전우회'(소년병전우회)가 국방부에게 받은 자료(소년병 명부)에 따르면, 군번을 받아 병적표가 존재하는 '17세 이하 소년'은 총 2만9597명이고, 이 가운데 현재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생존 소년병'은 7054명이었다. 그밖에도 전사자 2519명, 사망 말소자 5164명이며, 사망여부나 소재를 알 수 없는 행불자는 1만4860명으로 확인됐다.
이는 국방부 산하 군사편찬연구소에서 지난 2009년 10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가칭) 소년·소녀 지원병 6․25 참전사> 편찬 과정에서 육·해·공군과 병무청, 행정안전부 등을 통해 확인된 내용이다.
윤한수 소년병전우회 사무총장은 "한국전쟁 당시 1개 사단이 7000~8000명 수준으로 구성돼 있었다"며 "(징집된) 소년병 3만 명 정도면 당시 3개 사단에 해당하는 병력"이라고 말했다.
군사편찬연구소에 <(가칭) 소년·소녀 지원병 6․25 참전사> 편찬을 의뢰한 국방부 예비역정책발전TF의 한 관계자는 "지금도 계속 확인중"이라고 말해 소년병 징집 규모는 더 커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관계자는 "소년병 명단을 지금 공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소녀병도 100여 명 징집... 38년~39년생도 있다"애초 국방부는 한국전쟁 당시 현역으로 복무한 '18세 미만'(17세 이하) 소년병은 1만44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해왔다. 줄곧 소년병의 국가유공자 인정을 요구해왔던 소년병전우회는 2만5000여 명의 소년병이 한국전쟁에 참가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전사 편찬과정에서는 양쪽의 추정치보다 많은 수의 소년병이 확인됐다.
특히 이번 전사 편찬 과정에서는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소녀병'의 징집 규모도 드러나 눈길을 끈다. 윤한수 소년병전우회 사무총장은 "국방부에게 받은 자료에 의하면 소녀병은 100여 명으로 집계됐다"며 "하지만 생존자는 몇 명인지는 모르겠다"고 전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010년 3월 6일 국방부 한 간부의 발언을 인용해 "한국전쟁 당시 정식 군번을 부여받고 동원된 소녀병은 현재까지 23명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2010년 3월 6일자
'한국전쟁 당시 징집된 소녀병은 23명' 기사 참조).
당시 박원호 국방부 예비역정책발전TF장은 "육군이나 공군에는 없고 해군에서만 그런 사례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방부가 전사 편찬 과정에서 확인한 결과 소녀병은 해군뿐만 아니라 공군과 육군에서 간호병 등으로 활약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초의 여자 군인'으로 평가받는 문인순(작고)씨는 자신과 함께 126명의 여성이 함께 징집됐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윤한수 사무총장은 "그동안 우리는 근거가 될 만한 자료를 전혀 받지 못해 소년병의 규모를 2만5000여 명, 생존자를 1만1000-2000명 정도로 추산할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이번에 나온 자료는 병적표를 기준으로 파악한 것이어서 소년병의 규모가 좀더 확실하게 드러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윤 사무총장은 "35년생과 36년생, 37년생이 가장 많고 심지어 38년생과 39년생도 있었다"며 "호적상 오류가 있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35년생부터 39년생 모두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참전유공자로 예우할 수 있지만 국가유공자 인정 어렵다?국방부는 수년에 걸친 소년병들의 민원제기에 따라 약 3만 명에 이르는 소년병의 실체를 인정한 상태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실체 인정을 바탕으로 병적표에 '소년병'임을 명시하고 이들의 참전 사실을 전사에 기록에 기록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지난 2009년 10월부터 <(가칭) 6․25 참전 소년․소녀지원병 참전사>를 편찬하고 있다. 소년병의 참전 과정과 주요활동을 전투시기와 사안별로 정리하고, 살아있는 소년병들의 참전 증언록을 작성해 오는 2013년 12월 단행본으로 발간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국가보훈처는 ▲누락위패 봉안 ▲현충시설 건립 등을 대책으로 내놓은 상태다. 현재 국립현충원에 봉안된 위패는 870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소년병전우회에서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온 '순국 소년병'은 2800위다.
하지만 국방부나 국가보훈처는 '참전유공자' 관련 법률을 개정해 소년병들을 참전유공자로 예우할 수 있지만 '국가유공자 인정'은 어렵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2500여 명에 이르는 소년병 전사자 가운데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경우는 20명에 불과하다.
'국가유공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흐름은 국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소년병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국가유공자법' 개정안이 안경률·장윤석 한나라당 의원에 의해 각각 16대와 17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자동폐기됐다. 18대에서는 김소남 한나라당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 정무위 법률심사 소위에서 세 차례 심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