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부터 27일까지 <오마이뉴스> 강원지역 시민기자 1박2일 투어가 열렸다.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27일 늦은 아침에 도착했다.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참 머쓱할 것 같다'는 기분으로 차를 세우고 내렸는데,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람들처럼 반긴다.
20여 명의 강원지역 시민기자들, 강원대학교 대학생들로 구성된 예비기자 그리고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함께 모인 자리. 시민기자들이 쓴 기사의 합평회 후에 주최측 오마이뉴스에서 마련한 선물을 기증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전 <진보집권플랜>을 신청했는데요!" "늦게 오시니까 없죠... 서점에 가서 사서 보세요. 대신 <사랑 때문이다>,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서 고마워> 도서 두권을 같이 드릴게요." 뉴스게릴라본부 김미선 편집부장의 사서 보라는 친절(?)이 밉지 않다.
"<오마이뉴스>는 열린 진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수도 포용하는 진보를 말합니다." 시민기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기사 어떻게 쓸 것인가'의 주제로 진행된 김병기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본부장의 강의 중 오래 기억에 남는 대목이다.
내가 오마이뉴스 기자로 나선 것은"공무원이 어떻게 <오마이뉴스> 기자일 수 있나요?" 몇 달 전 우연히 만난 어느 정부 고위관료라는 사람에게 무심코 건넨 내 <오마이뉴스> 명함을 보며 그가 한 말이다. 정부의 시책을 대변하는 언론을 제외하고는 모두 급진 내지는 좌파라는 사고방식으로 굳어진 그의 생각으로는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다.
그동안 나는 시골 군청 홍보담당직을 4년 넘게 하면서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에 노출 시키기 위해 무진 애를 써왔다. 지휘부에서 눈치를 줘서는 아니지만, 행정의 주요시책이나 축제알림 등 꼭 필요한 내용에 대해 보도자료를 근사하게 만들어서 기자들에게 보냈는데 기사화되지 않을 땐 '이거 정말 내가 밥값이나 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 비참해 할 때도 많았다.
친한 기자에게 내 돈 써가며 밥도 사주고, 때로는 술도 한 잔 사면 그나마 며칠은 간다. '그런데 이 내용은 적어도 A4 용지 기준으로 두 장 정도의 분량이어야 설명이 되는데, 세줄 정도의 단신으로 처리하면 난 어쩌라는 건가!' 이런 경우는 차라리 낫다. 보도자료 내용이 뒤집혀 쓰여질 때는 막말로 환장할 노릇이다. 아무리 훌륭한 시책도 비스듬히 보면 삐딱하게 보인다. 그것을 뒤집혀 쓰여진 기사라고 한다. 피해의식일지는 모르지만 '저거 홍보계장 문제 있는 거 아니야!' 지휘부나 직원들 모두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것도 나를 늘 괴롭혔다.
'어차피 보도자료가 언론(기자)이라는 매체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지는 것이라면 차라리 내가 기사를 쓰자!' 그래서 찾은 곳이 <오마이뉴스>. 수차례 글을 올렸다. 그러나 내 기사는 늘 생나무(기사로 채택이 되지 않은 글). 문제가 뭔지를 찾아야 했다. 다른 시민기자들이 쓴 기사를 쭉 읽고 내린 결론은 '무조건 길게 쓰면 되는구나!'였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 '혹시 내가 공무원이기 때문에 내가 쓴 글이 기사로 채택이 되지 않는 것일까' 등등 괴상한 상상과 함께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도 하며 생나무 클리닉에 의뢰도 했다(<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쓴 글이 기사로 채택되지 않을 경우 그것에 대해 물을 수 있는 생나무 클리닉 제도가 있다).
이것이 열린 진보
"기자님! 오늘 올린 기사는 실제로 구제역 방역 현장에 있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취재하셔서 쓰시면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부로부터 전화를 받고서야 '뭔가 핵심이 있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한 결과, 최초로 내 이름을 단 기사가 포털에 올려졌다.
"정갑철 군수는 ○○당인데, 어떻게 오마이뉴스에서 기사화할 수 있지?" 내가 쓴 정갑철 화천군수의 휴먼스토리 기사(
비서는 오늘 내가 방콕하는 줄 알겁니다)를 보고 <오마이뉴스>를 급진으로만 생각하던 어느 직원이 물었던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김병기 본부장의 '열린진보'라는 말에 누구보다 크게 공감했는지 모른다.
기사쓰기의 고정관념을 깨라"기사의 틀을 깨야 합니다. 서점에 가서 기사 쓰는 법에 대한 서적을 찾아보십시오. 제목과 리드문 그리고 어느 단락에서 글이 끊기더라도 말이 될 수 있는, 즉 피라미드 구조로 글을 써야 한다고 쓰여져 있을 것입니다." 내가 아는 기사쓰기의 상식도 그랬는데, 김병기 본부장은 다른 말을 한다.
"독자를 사로잡는 기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독자들이 제목이나 리드문만 읽고 '이런 내용이구나!'라고 넘어가는 기사가 아닌 궁금증 유발과 결과를 도출하고, 문제가 있다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올바른 기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쓰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객관화 시킬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고, 쌍방에 갈등이 있는 내용이라면 취재원에게 수 차례 확인하고 검증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많은 수식어가 포함된 장문보다 가능한 단문으로 작성하는 것이 좋은 기사입니다. 다양한 독자층을 생각해서 최소 중학생이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글이 훌륭한 글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기사를 써 놓고 중학교 2학년인 우리 아이에게 이해가 되는지 물어 봅니다. 그 아이가 '쫌 어려운데'그러면 다시 쉽게 풀어서 씁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전문용어를 인터넷이나 국어사전을 찾아서 쓰는 게 폼나는 기사라고 생각했던 것이 일순간 무너졌다.
내가 만났던 모 언론사 본부장의 그 대단한 권위"그건 선배님 생각이고,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들어 보세요..." "어쭈~ 기발한데?" 투어 마지막 일정인 감성마을 촌장 이외수 작가를 만나러 화천으로 가는 차량 안에서 <오마이뉴스> 김병기 본부장과 박상규 기자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언젠가 모 언론사 본부장이란 직책을 가진 사람과 만났다. 나를 보자마자 '당신 군수나 부군수는 뭐하고 당신 같은 조무래기가 마중하러 나왔느냐'는 식의 그의 표정이 갑자기 떠오른다. 대표나 본부장 그리고 말단기자가 직책을 떠나 소통하는 것이 열린 언론의 본보기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