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민주연대와 <오마이뉴스>는 세계 거대 여행 사업체들에 돌아갈 돈을 현지인들에게 주자는 취지의 '공정여행'을 널리 알리고자 '지금은 공정여행 시대를 기획했습니다. 공정여행족과 함께 여행을 하고 온 김현자 기자의 '차마고도' 여행기와 이정희 기자의 '내몽골' 여행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
휴가 이야기가 나와 '중국 여행을 했노라'고 하면, 십중팔구 "중국 음식이 입에 맞았는가 보네?" "음식 괜찮았어요?"라고 묻곤 했다. 여행 떠나기 전에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먹는 문제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하기야 집에 있으나 집 떠나나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으랴. 나 스스로도 먹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 때문에 텀블러를 새로 구입해 차 티백과 함께 단단히 챙겼다. 여행 중 언제나 가지고 다니리라는 생각과 함께.
'보온병에 따뜻한 차나 물을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마셔주면 여행 중 혹시라도 올 수 있는 배탈이나 설사를 90% 이상은 막을 수 있다'고 공정여행 지침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 여행 중 텀블러를 그다지 애용하진 않았다. 매일 일어나서, 아침 혹은 점심을 먹으며 텀블러에 차를 채우곤 했지만,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아 숙소에 돌아와 몽땅 버린 적도 있다. 배낭에 넣어 다니며 필요할 때 먹는 나와 달리 손에 늘 쥐고 다니며 마시는 사람들도 보였지만. 그만큼 적응 못할 음식들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함께 밥(?)을 먹으며 '입에 맞지 않아 못 먹겠다'는 사람이 없었던 걸 보면 아마도 다들 나처럼 맛있게 먹지 않았을까?
우리가 중국에 도착해 처음 먹은 것은 '궈차오미셴(過橋米線)'이란 쌀국수다. 맑게 끓인 닭 국물에 삶아 찢은 닭고기, 얇게 저민 쇠고기와 생선을 넣고 휘 저은 후 부추나 시금치, 버섯, 쌀국수, 간장과 고추기름 등을 넣어 먹는 국수인데, 전혀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면서 개운했다. 닭 국물을 담은 커다란 대접을 비롯하여 고기며 여러 가지 야채와 양념을 담은 조그만 접시들이 나왔는데, 음식을 담은 접시가 겹쳐져 있을 정도로 가짓수가 많았다.
자주 먹는 현지인들은 취향대로 선택해서 넣어 먹겠지만, 난 모두 넣어 먹었다. "우리 취향에 맞지 않아 먹기 거북한 향채나 향신료가 있을 수 있으니, 냄새를 맡아보거나 조금 맛본 후 넣는 것이 좋다"는 미성씨(국제민주연대) 말이 생각나 내 옆에 앉은 황선생님의 "맛있다"는 말만 믿고 모두 넣어버린 것을 젓는 동안 짧게 후회했다. 하지만, 다행히 맛이 좋았다. '집에 가 우리식으로 응용해 해먹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 쌀국수의 역사는 자그마치 100여 년. 윈난 남쪽 멍쯔현에 아름다운 호수가 있고 호수 중간에 작은 섬이 있는데, 섬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여 들어 불철주야 공부 하는 것으로 유명했단다. 100여 년 전, 한 선비가 그 섬을 찾아 공부에 전념했다. 남편의 건강을 염려한 부인은, 영양이 풍부한 닭을 삶아 쌀국수와 함께 들고 섬으로 갈 수 있는 다리를 건너 남편에게 가져다준다.
한참 후 부인은 그릇을 가지러 간다. 그런데 공부에 열중한 남편은 하나도 손을 대지 않았고, 그제야 먹으려고 뚜껑을 열었는데 신기하게도 국물이 거의 식지 않아 먹기 딱 좋았던 것. 닭기름이 막을 만들어 국물이 식는 것을 막아줬던 것이다. 이후 음식은 남편의 보양식이 됐고 그는 합격해 관리가 됐다. 부인의 이야기와 음식이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다리를 건너는 음식'이란 뜻을 담고. 특히 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즐겨 먹었단다.
이후 많은 사람들의 보양식이 됐고, 윈난을 대표하는 유명한 음식이 되었다. 우리가 궈차오미셴을 먹은, 쿤밍에서 궈차오미셴 전문점으로 유명한 차오샹위안이란 식당은 제법 컸는데, 1층과 우리가 앉은 2층 홀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사진을 찍는데 한 종업원이 다가와 뭐라고 말했다. 자기 식당만의 노하우가 담겼으니 찍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모든 종업원이 그처럼 찍지 말라고 말하지 않아 사진 두 장을 더 찍은 후 마저 먹었다.
궈차오미센의 국물 온도는 대략 80도. 표면에 뜬 기름이 국물과 외부를 차단하면서 김이 나지 않아 그다지 뜨거워 보이지 않을 뿐, 실은 무척 뜨겁단다. 성질 급하게 들이키면 데일 정도로 말이다. 값도 그리 비싸지 않다. 무엇을 몇 가지 곁들이는가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데, 대략 15~20위안(16일 출국 당시 10위안=1800원)이면 맛있게 즐길 수 있단다. 여하간 중국 윈난에 가면 이 궈차오미셴과 그에 담긴 한 여인의 지혜로움을 꼭 맛보시기를!
루구후의 감자볶음도 인상 깊다. 우리처럼 감자를 채 썰어 소금으로 간을 해 볶은 것인데, 아삭아삭 훨씬 맛있었다. 그들의 감자볶음 과정을 보지 않아 100% 같다고 할 수 없지만 ①소면(국수) 굵기 정도로 곱게 채 썰어②바구니에 담아 물을 흐르게 해 녹말을 뺀 후③기름을 둘러 살짝 달궈진 프라이팬에 10초가량 짧고 빠르게 볶다가 ④고운 소금을 골고루 뿌리며 소금을 섞듯 5초가량 볶았더니 루구후에서 먹던 맛과 거의 같아 9번 정도 해 먹었다.
부추 몇 가닥이나 채 썬 양파를 감자 분량 1/3쯤 넣어 함께 볶은 적도 있는데 위에서 소개한 방법으로 감자만 볶는 것이 제일 맛있었다. 연거푸 두 끼를 한 접시 가득 해줘도 맛있다며 접시 바닥을 긁었고, 손님이 와 반찬이 마땅치 않아 해주기도 했는데 맛있다며 어떻게 하는지 물을 정도로. 워낙 가늘게 채 썰었기 때문에 잠깐 볶으면 된다. 감자껍질 벗기는 것부터 볶음까지 넉넉잡고 3~5분이면 끝낼 수 있을 정도로.
공정여행, 100%현지음식 제공8월 23일 'MBC-PD수첩'의 주제 하나는 '패키지 해외여행의 문제점과 그 대안인 공정여행'에 관한 것이었다. 방송제작팀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는 캄보디아로 패키지여행을 따라갔는데, 그곳의 유적지에 잠깐 들른 후 가이드가 여행객들을 데리고 간 곳은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기념품점. 현지인들의 가게에 비해 턱없이 비싼 가격에 상황버섯을 사도록 이끌었다. 건강에 과연 도움이 될까 의심스러울 정도의 물건을 250만 원을 지불하게끔.
음식도 마찬가지. 현재 우리나라 패키지 해외여행의 경우 대부분의 끼니를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한국 음식으로 해결하기 예사라, 며칠간의 여행 중 현지의 음식 하나 구경하지 못하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현지음식에 쉽게 적응 못할지도 모르는 여행자들을 위해서라고 변명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들끼리 나눠 먹을 수 있는 여행자들의 눈 먼 돈 때문이라고 한다.
내 식구가 운영한다면 여행객들의 돈을 뜯는데 가족이 뭉치는 것이고, 아니라면 관광객들을 끌고 가(?) 벌게 해준 그 돈 일부를 가이드가 대가로 챙기는 것이다. 피해를 보는 것은 관광객들과 현지인들. 현지인들에게 이런 한국인들이 곱게 보일 리 없다. 때문에 공정여행은 100% 현지음식을 이용한다. 그것도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객잔에서, 현지에서 나는 재료로 현지인들이 만들어 먹는 음식 그대로를 현지인들이 만든 100% 현지음식을.
다른 공정여행의 프로그램은 참여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는데 올여름 내가 참여한 국제민주연대의 윈난(차마고도) 공정여행의 경우 매일 만나는 소수민족이 달랐다. 우리가 만난 중국의 여러 소수민족들이 지금은 비록 중국에 흡수되어 있지만, 그들만의 문화와 풍습 등이 오래 지속되고 번창했으면 좋겠단 바람까지 할 정도로 소수민족 저마다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매일 이처럼 저마다 다른 독특한 소수민족들을 만나니 먹고 잠자는 것부터 그날 알아가는 문화와 풍습 등이 모두 달라짐은 당연했다. 잠을 청하는 객잔과 객잔의 분위기도, 식탁과 그에 담겨지는 음식도 언뜻 비슷해 보였지만 같은 곳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는 이번 여행의 큰 즐거움이었다. 우리들 사이에 '오늘은 어떤 곳에서 잘까?, 어떤 음식들이 나올까?' 퍼즐 맞추는 것과 같은 재미가 있다는 말까지 오갈 정도로.
대개들 중국 음식하면 기름기 많은 음식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가 먹은 음식들 대부분 기름에 볶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느끼해서 먹기 거북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난 매일 매끼 달라지는 특정 소수민족들만의 색다른 음식들이 무척 좋았다. 쌀죽이 맛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루구후의 찐 감자도 잊을 수 없다. 야채나 고기볶음, 탕에 들어가 있던 토마토도 인상 깊다. 꼭 시도해보고 싶다.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잠자리 역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다. 특히 버스로 7~8시간은 가야 오지에 간다고 하니 잠자리와 먹는 것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 역시 첫날에는 쿤밍의 작은 호텔에서 이틀 밤은 객잔에서 크게 불편하지 않게 잤는데도, 오지 중의 오지 루구후에서의 잠자리는 은근히 걱정됐었다. 루구후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자는 것은 둘째 문제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는데 제대로 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컸다.
사진은 이틀 밤을 잔 루구후 모서인의 객잔과 리장 쑤허 마을의 객잔 모습이다. 이처럼 창을 열면, 먹는 것도 잊고 며칠 동안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루구후 호수가 그대로 보이는 객잔이었다. 리장 쑤허마을의 객잔도 다른 객잔들도 운치 있고 멋있었다. 중국 영화 <용문객잔>의 장면들을 떠 올릴 정도로.
3일차 밤 리장 고성에서 오들오들 떨며 잤지만, 객잔의 시설물이 형편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시설물을 꼼꼼하게 살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열대야로 고생할 7월 중순, 오들오들 떨면서 자는 거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행복인가. 여하간 호텔에서 이틀 밤 잔 것보다 객잔에서 잔 것이 훨씬 좋았다. 앞으로 중국 여행을 얼마나 할지 모르겠는데 이번 공정여행에서 만난 객잔을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객잔의 명함 몇 장을 챙겨 왔다.
사실 난 해외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행기가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막연한 공포도 있었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가지만 중국어를 전혀 모른다는 것도, 해발 3000m를 오르내리는 길에 고산병을 겪을지 모른다는 것도 걱정됐다. 집에 남겨질 식구들에 대한 걱정과 낯선 나라에서의 잠자리나 먹는 것들을 신경 쓰고 염려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여행을 하는 동안 가족들과 공정여행을 했으면 좋겠단 생각과, 집 사는 것은 영영 미루더라도 간단한 중국어를 좀 더 배워 가족들과 함께 여행 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번갈아 들곤 했다. 현지의 여건상 이국의 여행자들이 쉽게 가지 못하는, 모계씨족사회 루구후로 가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닥치겠지만 부딪혀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의 생각과 함께 말이다.
여행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좋다는 곳도 다 가보지 못하는데 비싼 돈 들여 해외여행까지 할 필요가?'의 생각도 없잖아 있었다. 그런데 이젠 가족들과의 해외여행을 신중하게 고려할 정도로 달라졌다. 전혀 해보지 않고 지레짐작하고 가졌던 해외여행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대신 부딪쳐 보고 싶다는, 힘들겠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글쎄, 나의 이런 자신감을 해외여행 베테랑들은 어떻게 바라볼지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패키지여행처럼 가이드가 물건 사는 것까지 도와주지 않고 참여자들이 스스로 현지인들과 직접 흥정을 해보게 한다든지,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잠깐 머물며 사진 몇 장 찍고 다른 여행지로 가는 것과 달리 하룻밤을 그곳에서 자면서 현지인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게 하는 국제민주연대의 공정여행이 내게는 참 좋았다는 것이다.
처음엔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간단하게 배운 중국어들이 입속에서만 맴돌았다.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현지인들과 아침인사를 하며 내가 좋아하는 옥수수도 하나 더 얻어먹었고,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은 뒤 사진을 찍거나 아쉽게 돌아서기도 했다. 한꺼번에 물건 여러 개를 퉁 쳐 흥정도 해보고, 모자를 써 봐도 되냐며 써본 후 어울리지 않는다며 나오는 여유도 가졌고, 한 묶음에 10위안에 판다는 리찌 다발을 7위안에 깎아 사기도 했다.
샤핑시장에서 현지 장사꾼이 내민 40위안짜리 우산이 너무 커서 좀 작은 것을 달라고 해 가지고 다니기 딱 좋은 보라색 우산을 15위안에 산 것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옥룡설산을 마주한 기념을 남기고자 만고루에서 산 풍경과 충의시장에서 산 사발만한 종(鍾)과 꽃차들도, 스카프와 열쇠고리 등이 흥정 당시와 함께 즐겁게 아른거린다. 1차 국제어인 바디랭귀지와 현지에서 배운 중국어로 했던 흥정들, 큰 즐거움이었다.
PD수첩에서 잠깐 소개된 것처럼 알고 보니 가이드에게 속아 바가지를 쓴 것이라면, 대부분의 패키지여행들이 그런 것처럼 가이드가 흥정했다면 이처럼 즐겁게 남으랴. 전혀 염두에 없던 중국 소수민족에 대한 이해와 관심도 이번 여행 중 얻은 값진 것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 틈틈이 국제민주연대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한 최정규 작가(여행기획자)님으로부터 추천받은 중국 소수민족 관련 책들을 읽고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잃은 것은 전혀 없다. 얻은 것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해외 첫 여행을 공정여행으로 할 수 있었던 것, 그것도 재래시장 탐방과 마을 뒷산 트레킹 등처럼 수익 구조 때문에 패키지여행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다양하고 세심한 국제민주연대의 공정여행 프로그램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대단한 행운이란 생각이다.
여행 당시 참 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날이 갈수록 미처 느끼지 못한 것들이 더 많다는 아쉬움이 자꾸 더해지는 것을 어쩌랴. 감자가 참 맛있었다고, 완해 후 애써 만들어 준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하고 남긴 것은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모서인 객잔 주인에게 말하지 못하고 온 것도 미안하고 아쉽기만 하다.
'고산병'엔 '비아그라'를 |
"네팔에서 고산병으로 고생하는 사람 봤는데 장난 아니더라. 조금 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떠들고 웃던 사람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하는 거야. 그런데 웃기게도 아래로 내려오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해지더라고. 어떤 사람이 고산병으로 고생하고 안하고는 아무도 몰라. 닥쳐봐야 알지. 약도 없기 때문에 의사들도 비아그라 박에 처방해주지 않아. 혹시 몰라 가져왔으니 필요하면 말해" (룸메이트 언니)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걱정했던 것은 불시에 나를 기습해 인사불성으로 만들지도 모를 '고산병'이었다. 이런지라 네팔 고산지대까지 다녀왔다는 내 룸메이트 언니에게 짐을 풀자마자 고산병에 대해 물었더니 이처럼 대답했다.
나처럼 다들 고산병에 대한 공포가 있었나 보다. 공정여행을 떠나기 전에 가졌던 사전모임이나 여행 중 고산병에 대한 질문이 여러 차례 있었던 걸 보면. 한편으론 그동안 산행을 자주 했기 때문에 산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유리할 것이라고 내 스스로 위로했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루구후에 도착해 버스가 멈추는 순간까지 걱정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일행 중 한사람이 여행 3일차부터 고산병 증세로 힘들어 했다. 우리가 주로 여행했던 곳은 평균 해발 1500m인 쿤밍을 비롯하여 2000m의 대리, 2400m 리장, 2700m의 루구후 등이다. 또 루구후 갈 때 3000m를 넘기도 한다. 그러니 이들 지역이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당연히 걱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는 전혀 없는 높이, 그 몇 배니까.
평균 해발 2000m인 대리에서는 고산병 증세를 보이지 않았지만, 말을 타고 1시간쯤 오른 창산의 중화사나, 평균 해발 2400m인 리장 고성의 좀 더 높이 올라간 곳인 만고루에서 가벼운 고산병 증세로 고생하는 일행도 있었다.
"어쩌다 한두 명씩 고생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까지 고생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숨이 가쁘면 가급 천천히 걷거나, 의도적으로 숨을 자주 쉬거나, 물을 자주 마셔주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국제민주연대)
나도 아주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숨이 좀 가쁜, 아주 미약한 정도의 고산병 증세를 느꼈다. 그럴 때마다 국제민주연대의 설명대로 했더니 사라졌다. 우리 일행이 겪은 고산병 증세는 대략 이 정도, 혹시 고산병에 대한 공포 때문에 중국 한족들에 비해 대체적으로 중국 변방의 높은 지대에 사는 여러 소수민족들과의 만남이나 네팔 등지로의 여행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단 부딪쳐 보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해발 2700m인 루구후에서 아이새도우가 산산조각나 부서져 버렸다. 일행이 가져간 1회용 커피믹스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모두 산소 부족 때문이다. 이런 고산지대에 살기 때문에 모서인 여성들이 아이를 많이 낳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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