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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2011 ESG 통합 및 부문별 등급 기업 현황'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2011 ESG 통합 및 부문별 등급 기업 현황'
ⓒ cg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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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는 중국이나 말레이시아보다도 못하다.

작년 10월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와 국제적 증권사인 CLSA(크레디리요네 증권)가 아시아 11개국 580개 기업들을 분석한 결과보고서가 그러했다. 당시 아시아기업 지배구조 평가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11개국 중 9위를 기록했으며,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단 2개국만이 '우리 다음'이었다.

이 보고서는 한국 기업 지배구조가 후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했다. 2007년 같은 조사 순위보다 무려 4위나 추락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 보고서를 국내에 소개한 경제개혁연구소는 "이명박 정부가 친재벌을 표방하면서 국가 여러 정책 가운데 지배구조 관련 사안이 우선순위에서 밀렸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ESG A+ 기업 포스코, SKT, KB금융, 하이닉스 등 단 4곳 뿐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악화되고 있다는 정황은 최근에도 잇따라 나타났다. 지난달 28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개한 2011년 대기업집단 주식소유현황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38개 대기업 집단 소속회사 1364개 중 69.6%에 해당하는 949개사가 총수일가의 지분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내 대기업의 계열회사 지분율 등 내부 지분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총수가 있는 상위 10대 대기업집단의 내부지분율은 1992년 이후 외환 위기 시기를 제외하고는 줄곧 50% 미만이었으나 올해 들어 53.5%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순환출자 등 방법으로 총수 일가 경영권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3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발표한 ESG(Environment, Social, Govermanvece) 통합등급 평가 결과에서도 재확인됐다. 상장기업 668곳을 대상으로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종합 평가한 조사에서, 지배구조 부문 '양호+(A+)' 이상 등급을 받은 회사가 전년(25개)에 비해 절반 수준(14개)이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또한 조사 대상 기업 중 575개 기업이 종합 평가 결과 'B(취약)' 또는 'C(매우 취약' 등급에 포함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장 기업의 86%가 사회적 책임에서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였다. 반면 가장 우수한 'A+'등급을 받은 기업은 포스코, SK텔레콤, KB금융, 하이닉스 등 단 4곳뿐이었다.

ISO 26000, UN PRI ...대세는 '착한 기업'

이와 같은 기업 지배구조의 '역주행'은 갈수록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국제 추세와는 사뭇 동떨어진 모습이다.

우선 2006년에는 금융기관이 투자를 할 때 환경, 사회, 기업지배구조(ESG)를 각각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이 출범했다. 이 협약에는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퍼스와 유럽 최대 연기금인 PGGM 등 900여 기관 투자자가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작년 11월에는 기업 윤리경영·환경 보호·노동·지역 사회 기여 등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표준이 ISO 26000이 발효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이 곧 글로벌 경쟁력으로 '치환'되는 공식 기준이 마련된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 '투자'와 '기준'이 국제적으로 구축된 셈이다.

지난 7월 세계연기금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데이비드 데니슨 캐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최고경영자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회의의 가장 중요한 의제를 'ESG'로 소개하면서 "단기투자자는 ESG에 관심을 두지 않지만, 연기금은 길게는 40년까지 장기투자하므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국제적 투자 환경의 변화를 시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게임의 법칙'은 진화중

이와 같은 국제 상황을 반영하여 국내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지난 3월 국민연금이 주주총회를 통해 계열사 부당지원, 분식 회계 등으로 주주 가치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내 이사 재선임을 반대하는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009년 국민연금이 가입한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에 따른 결과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국내 최초로 환경, 사회적책임, 지배구조를 포함한 ESG 평가를 올해부터 도입한 것 역시 긍정적인 변화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과거 ESG 평가를 외국기관에 맡겼던 '관행'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평가 모델을 개발했다는 평가다. 공정성 확보와 유지가 핵심임은 물론이다.

기관 투자가들과 투자 기업들의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장기적으로 주주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신종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사회책임투자분야 국내기업인 서스틴베스트가 영국 최대 연금 자회사인 '헤르메스'와 손잡고 국내에 '상륙'시킨 서비스다. 역시 핵심은 ESG다.

'게임의 법칙'이 진화하고 있다. 착해야 살아 남는 시대가 오고 있다. '나쁜 지배구조' 기업이 도태될 것 또한 자명하다.


태그:#ESG, #CSR, #기업의 사회적 책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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