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서는 항상 비누 냄새가 난다.'강신재의 소설 <젊은 느티나무>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 소설을 읽으며 무척이나 놀랐던 기억도 나는군요. 우선 1960년도 작품이란 사실이 믿기지가 않을 만치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에 놀랐고, 그 다음으론 학교에서 배운 전후 한국 사회의 모습과 소설 속 숙희네 집이 너무나 달랐단 사실은 충격이었습니다.
그게 그러니까 숙희네 집 1층에는 김이 뽀얗게 서린 코카콜라와 치즈, 크래커가 든 냉장고가 있었단 말이죠. 60년대에 발표된 소설, 더 쉽게 말하자면 작가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걸 대충 감안하더라도 최소 1950년대 말이었을 테고, 단순히 그 시기를 배경으로 소설을 쓴 것이라 본다면, 참으로 놀라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테니스를 즐기는 대학생 이복 오빠, 지프차를 몰고 다니는 오빠의 친구, 게다가 숙희는 새아버지를 '므슈 리'라고 부릅니다. '아저씨'라는 프랑스어 '므슈'에다 이씨 성을 붙인 건데, 그냥 '이씨 아저씨' 하지 않고 '므슈 리'라고 하는 순간 뭔가 굉장히 이국적이고 색다른 느낌이 팍 쏟아져 나온단 거죠.
므슈, 므슈. 하여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불어치곤 꽤 익숙한 단어인데다, 꽤나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는 단어인 건 분명합니다. 최근에 제가 간식으로 자주 먹는 음식에도 그런 이름을 가진 게 있습니다. '크로크 므슈' 라고 해서 프랑스인들이 즐겨먹는 따뜻한 토스트가 바로 그것이죠. '바삭하다'는 뜻의 '크로크'란 단어에 '아저씨'라는 뜻의 '므슈'가 결합해서 '크로크 므슈'라는 요리명이 만들어졌답니다.
크로크 므슈의 핵심은 부드러운 베사멜 소스에 있습니다. 우선 버터를 팬에 녹여서 밀가루를 볶다가 어느 정도 노란 빛이 나면 거기에 우유를 부어서 잼 정도 농도로 걸쭉하게 만듭니다. 이 베사멜 소스를 식빵에다 바른 후, 그 위에다 치즈와 햄을 얹고, 그 위에 피자 치즈를 한 줌 뿌린 후 다시 식빵을 덮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자 치즈를 그 위에 뿌려서 오븐에 구워낸 것이 크로크 므슈 입니다. 굉장히 고열량 음식 같지만 간단하면서도 정성 가득한 호사를 누리고 싶을 때 해 먹으면 딱 좋은 음식이죠.
잘 구운 크로크 므슈는 따끈하고 부드러운 치즈와 햄이 어우러져서 굉장히 고소합니다. 게다가 피자 치즈가 쭉쭉 늘어나는 것이 식감을 자극하기도 하고요. 재료 각각의 담백한 맛을 잘 살릴 수 있는 토스트인데다가, 요즘 카페 등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런치 메뉴기도 하죠. 보통은 과일 몇 조각이나 샐러드와 곁들여서 8천 원정도 하더군요. 하지만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그보다 몇 배의 정성이 들어가면서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답니다.
집에 오븐이 없는 분들은 전자렌지에 넣어서 치즈가 녹을 정도로만 열을 가한 후, 다시 프라이팬에 올려 밑면이 살짝 익을 정도만 더 익히세요. 빵은 바삭하고 속 재료는 촉촉해서 정말 맛있는 크로크 므슈, 간단하지만 그 가치는 몇 배나 된답니다.
크로크 므슈에다가 반숙 계란 프라이를 얹으면 '크로크 마담'이 됩니다. '마담'은 '귀부인'이란 뜻을 가진 불어인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나 하면, 달걀 반숙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귀부인의 모자처럼 보여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우아한 모자를 쓴 귀부인의 모습을 그 음식으로 연상한 것이죠. 하여간 음식명마저도 이렇게 낭만적으로 짓는걸 보면 프랑스 문화가 그저 만들어진 게 아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맛있는 크로크 므슈. 오늘 문득 '므슈'라는 단어 때문에 이 음식을 만들어 보았네요. 지금 생존한다면 90세가 가까울 여류 작가 강신재님, 이복 남매간의 사랑 혹은 이혼녀의 사랑을 다룬 작품을 쓰신 분. 그리고 요즘 소설 주제로서도 손색없는 이른바'문제작'인 동시에 지금 것이라해도 믿을 만큼 세련된 이야기를 쓰신 그 분이죠.
오래전에 'TV문학관'에서 김혜수, 이효정, 정보석 주연으로 이 작품이 드라마화 되었던 기억도 나네요. 파리지엔느의 감수성을 담은 것 같은 그 소설과 드라마를 다시 떠올리며 크로크 므슈의 고소함에 빠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