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국경 통과에 짜증이 난다
네움에서 몬테네그로의 코토르까지는 150㎞쯤 떨어져 있다. 중간에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를 지나가야 한다. 네움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는 거의 완벽하게 해안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자톤을 지나면서 두브로브니크 해안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유명하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두브로브니크를 지나가지, 관광을 하지는 않는다. 두브로브니크 관광은 내일 잡혀 있다.
두브로브니크에 들어서려면 프란요 투즈만 다리를 건너야 한다. 이 다리는 길이가 518m, 높이가 50m에 이르는 콘크리트 사장교로 2002년 완성되었다.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크루즈 항이 자리 잡고 있다. 여름이어서 항구에는 대형 크루즈선이 3-4척 정박하고 있다. 두브로브니크를 지나는 길은 E65 도로로,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를 오른쪽으로 끼고 지나간다. 차장을 통해 바닷가에 성곽 형태로 만들어진구시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두브로브니크를 지나 15㎞쯤 달리니 칠리피 근방의 공항이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모스크바, 이스탄불, 런던, 로마, 프랑크푸르트 등으로의 정기편이 운항한다. 그리고 여름에는 마드리드, 파리, 아테네 등 유럽 전 지역으로의 특별기편이 운행된다. 매년 항공편으로 두브로브니크를 찾는 사람이 120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공항을 지나 다시 10㎞쯤 달리자 크로아티아와 몬테네그로 국경이 나온다.
벌써 두 번째 국경통과다. 한 번은 크로아티아로 들어오면서 했고, 또 한 번은 지금 몬테네그로로 들어가면서 하는 것이다. 이곳 국경은 두 가지 이유에서 항상 밀린다. 첫째는 국경 양쪽에 아드리아해 최고의 관광지들이 있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에는 두브로브니크가 있고, 몬테네그로에는 코토르와 부드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고가는 관광객이 많다. 두 번째는 크로아티아와 몬테네그로가 유고내전 때 서로 전쟁을 했기 때문에 상대방 국가로부터 오는 사람들에 대한 검문이 까다롭다.
이런 이유로 국경 통과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젠 짜증이 난다. 아침에 관광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람 진을 빼니 말이다. 관광객에게는 차라리 옛날처럼 유고로 통일되는 게 낫겠다. 여섯 개 나라로 찢어져 가는 곳마다 검문을 하고 야단이니 나 원 참. 그나마 코토르라는 세계 문화유산을 보고, 부드바라는 해변 휴양도시를 본다는 기대에 꾹꾹 참는다.
해변 드라이브 코스의 핵심은 헤르체크 노비에서 코토르까지다
국경을 넘자 사이프러스 나무가 죽죽 뻗은 몬테네그로의 산악지대로 들어선다. 몬테네그로는 검은 산이라는 뜻으로, 이 나라의 산악이 검은 색을 띠어 그런 국가명이 생겨났다. 이 나라 사람들은 몬테네그로라고 하지 않고 크르나 고라(Crna Gora)라고 한다. 몬테네그로는 13,812㎢의 면적에 68만 명이 살고 있다. 수도는 내륙에 위치하고 있는 포드고리차다.
우리가 탄 버스는 산악을 벗어나 이갈로에 이른다. 이곳에서부터 코토르까지는 내륙으로 깊게 들어간 만이다. 그래서 만에 연한 헤르체크 노비, 리산, 리우타 같은 작은 마을들을 지나게 된다. 이처럼 코토르 만을 따라 이어지는 드라이브 코스는 절경일 뿐만 아니라, 몬테네그로의 역사를 담고 있다. 왼쪽으로는 짙은 회색의 바위산, 오른쪽으로는 맑고 푸른 코토르 만이 펼쳐진다. 하늘에 구름이 많아 물빛이 검푸른 게 좀 유감이다.
중간에 육지가 바다로 가장 뾰족하게 돌출한 지점에서 우리는 잠시 버스를 내린다. 이곳에서 코토르 만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위의 성모 성당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성당은 이 지역을 운행하는 선원들이 항해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1630년 코토르 만에 인공적으로 바위를 쌓아 만들었다. 성당 안에는 눈물의 성모(Suza Bogorodice)로 불리는 10m짜리 이콘이 있다고 하는데 보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성당은 전체적으로 바로크 스타일이다.
여기서는 또한 코토르에서 부드바 또는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여객선과 아드리아해로 나가는 어선, 코토르 만을 운행하는 여객선과 요트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다 위에 줄과 부표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아마 양식장인 것 같다. 코토르 만 중간의 리산에서는 험준한 산을 넘어 닉쉬치로 이어지는 산길을 볼 수 있다. 버스는 이제 코토르 만의 안쪽 페라스트, 리우타, 도브로타를 지나 코토르에 닿는다.
코토르를 보지 않고는 몬테네그로의 역사를 말하지 마라
코토르에 이르니 빗방물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드리아해의 날씨는 전반적으로 맑지만 가끔 지나가는 소나기가 쏟아지곤 한다. 버스는 먼저 천연 해자인 쉬쿠르다(Škurda) 강을 건넌다. 코토르 역사·문화도시는 쉬쿠르다와 코토르 만 사이에 삼각형으로 성을 쌓아 만들었다. 그리고 도시 뒤로 로브첸 산의 산록을 따라 해발 265m의 산 지오반니(San Giovanni) 성까지 사각형의 성채를 이루고 있다. 코토르 성채는 둘레가 5㎞나 된다.
도시를 이룬 성이 삼각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문은 세 개가 있다. 바다를 향한 서쪽에 정문이 있다. 이것은 1555년에 세워졌다. 쉬쿠르다 강에 놓인 다리 건너에 있는 북문은 1540년에 세워졌다. 이에 비해 남쪽에 있는 구르디치 문은 13세기에 처음 세워졌고, 18세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보완되었다. 우리는 바닷가에서 버스를 내린 다음 좌판 형태의 시장을 지나 서쪽 정문으로 들어간다.
아치형의 정문 위에는 코토르의 문장이 있고, 그 아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것을 결코 남에게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시계탑(1602년)이 보이고, 왼쪽으로 오루지야 광장이 펼쳐진다. 광장의 일부에는 의자가 설치돼 야외 카페로 이용되고 있다. 광장의 끝에는 1810년에 세워진 프랑스 극장이 있다. 이 건물은 1904년부터 읍사무소로 쓰이고 있다.
정문에서 시계탑을 지나 동쪽으로 이어진 길을 가면 성 트리푼 광장이 나온다. 이 중심도로의 오른쪽에는 대개 궁전이 있고, 왼쪽에는 공공건물이 있다. 궁전은 브라쉬나 광장을 가운데 두고 네 개 건물이 연결되어 있다. 피마궁, 부차궁, 비잔티궁, 베스쿠차궁. 이 중 부차궁이 가장 오래되어 14세기에 지어졌고, 베스쿠차궁이 가장 최근인 1776년에 지어졌다. 길 왼쪽의 공공건물로는 음악학교, 콘서트 홀, 극장, 도서관 등이 있다.
코토르의 역사는 기원전 168년 로마시대까지 올라간다. 당시 이름은 아크루비움이었다. 그리고 4세기부터 비잔틴 제국의 영토가 되었고, 535년 성채가 만들어졌다. 그러면서 카타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840년에는 사라센 제국의 침입으로 도시가 파괴되었고, 1002년에는 불가리아 왕국에 점령되기도 했다. 이후 코토르라는 슬라브식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13세기 들어 도미니크와 프란시스코 계열의 수도원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현재 코토르 시내에는 교회와 수도원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성당과 교회 그리고 수도원을 찾아가는 여행
코토르를 대표하는 교회는 성 트리푼 광장에 있는 성 트리푼 성당이다. 1166년에 세워졌으니 거의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이 건물은 서쪽으로 정문이 나 있고, 정문 양옆으로 두 개의 탑이 올라가 있다. 16세기에 지진으로 파괴되어 1584-1613년에 걸쳐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1667년에 다시 지진이 나 서쪽 정면 일부가 바로크 양식으로 보완되기도 했다. 1979년에 또 지진이 발생하여, 과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성당 안에는 종교적·예술적으로 가치 있는 성화와 조각품, 가구들이 많다. 그 중 유명한 것이 제단 뒤에 마련된 성소다. 이것은 14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제단도 18세기에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14세기에 만들어진 프레스코화 역시 아주 유명하다. 트리푼 성당 옆에는 주교관이 있고, 정면 오른쪽에는 1732년에 세워진 드라고궁이 있다. 이 건물은 현재 문화·종교 보호재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광장 건너 좌우에는 문서보관소와 코토르 시청이 있다.
트리푼 성당에서 북쪽으로 난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17세기에 만들어진 크람파나 샘을 만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북쪽으로 가면 성 루까 광장에 이르게 된다. 이 광장 이름은 이곳에 있는 성 루까 교회 때문에 생겨났다. 성 루까 교회는 1195년에 세워져 코토르에서 두 번째로 오래되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소박한 교회로, 처음에는 동방정교 신자들을 위한 교회였다. 17세기 중반 가톨릭 교회로 바뀌었지만 정교회 신자들에게도 개방되었다.
19세기에는 가톨릭과 정교회 신자들을 위한 두 개의 제단이 만들어졌다. 성 루까 교회는 가톨릭과 정교의 공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제단 뒤 성소의 성화들은 이콘으로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잔틴적이다. 그것은 비잔틴 시대 이 지역 화가들이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광장 건너편 강쪽으로는 1909년에 세워진 세르비아 정교 계열의 성 니콜라스 교회가 있다. 이 자리에는 원래 17세기 중반부터 지어진 성 니콜라스 교회가 있었으나, 1909년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지어졌다. 그런데 교회의 모습에서 가톨릭적인 요소도 보인다. 성 니콜라스 교회 옆에는 16세기에 지어진 도미니크 수도원과 18세기에 세워진 프란시스코 수도원이 있다.
성 루까 광장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
이들 수도원을 보려고 하는데 성 루까 광장에서 음악공연이 이루어진다. 학생들로 이루어진 현악4중주단이다. 이들은 루까 광장에 연해 있는 음악학교 학생들이다. 이들이 여름축제의 일환으로 관광객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 귀에 익은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크트무직(Eine kleine Nachtmusik)'을 연주한다. 나와 아내는 음악을 들으며 잠시 여행의 피로를 푼다.
곧 이어 역시 많이 듣던 음악을 연주한다. 템포가 조금 느리고 더 편안하다. 그런데 제목이 정확히 생각나질 않는다. 이곳 몬테네그로는 아주 작은 나라지만 클래식과 대중음악 공연이 많이 열리고 연극의 수준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의 공연 때문에 수도원을 보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동시대 코토르의 예술수준을 알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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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토르 현악사중주단의 연주 성 루까 광장에서는 음악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현악사중주단의 연주가 있었다. 그들은 관광객을 위해 모차르트의 음악 등 우리에게 익숙한 클래식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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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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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내와 나는 처음 출발했던 오루지야 광장으로 돌아온다. 점심 때가 되어선지 광장에 사람이 많이 줄었다. 아쉽지만 서쪽 정문을 통해 성채를 나온다. 우리는 이제 발리어 보루를 지나 성곽을 따라 코르너 보루로 간다. 우리 모두가 코르너 보루 옆 가로수 벤치에서 오후 1시 만나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로 가면서 보니 야채와 과일 노점상들이 좌판을 벌이고 있다. 수박, 토마토, 배 등의 과일과 가지, 오이, 파프리카와 같은 채소가 보인다. 소금에 절인 검은색 올리브도 보인다. 올리브만 제외하면 우리의 야채·과일상과 다를 것이 없다. 벤치에는 벌써 우리 팀의 일부 회원이 앉아 쉬고 있다. 버스가 조금 늦어질 것 같다고 가이드가 말해준다. 나는 길 건너 바닷가로 가서 잠시 코토르 만의 풍경을 감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