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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일자리가 없다. 날 도와줄 부모도 없다. 여성은 몇 번이고 임신을 하는데, (지금 이곳에는) 여성을 보살펴줄 사람이 없다. 그러니 0.6달러(약 640원) 내지 1.25달러(약 1330원)만 주면 성매매를 하는 것이다."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이재민 캠프에 사는 한 여성이 국제 인권 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 관계자에게 한 말이다. 아이티는 2010년 1월 발생한 대지진으로 폐허가 됐다. 아이티 대지진으로 약 22만 명이 목숨을 잃고, 30만 명이 다쳤으며, 130만~160만 명이 이재민이 됐다. 또한 거의 30만 호가 파손됐고, 병원의 60%를 비롯한 아이티의 사회 기반 시설 중 많은 수가 손상됐다.

 

휴먼라이트워치는 참사 후 1년여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열악한 처지에 놓인 아이티 여성들에 관한 현지 조사 보고서를 8월 말에 발표했다. 휴먼라이트워치는 15개 이재민 캠프에 거주하고 있는 14~42세 성인 여성 및 소녀들 중 대지진 후 임신·출산 경험이 있는 100여 명을 인터뷰했다. 78쪽에 이르는 휴먼라이트워치 보고서의 제목은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않는다"이다.

 

"성매매는 좋지 않은 일, 그러나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이재민 캠프에 있는 많은 여성들이 생존을 위해 성매매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입에 풀칠할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성매매를 해야 하는 처지라는 것이다. 높은 실업률, 만연한 빈곤에 더해 대지진의 후유증이 겹치면서 생긴 현상이다. 한 여성은 "성매매는 좋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먹고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원치 않는 임신과 성병 감염 위험에 노출되는 여성이 늘었다. 이재민 캠프 거주 여성의 임신율은 대지진 이전 도시 지역 여성 임신율의 3배에 달한다. 이 때문에 불법인데다 안전하지도 않은 낙태를 경험하는 성인 여성 및 소녀들이 늘고 있다.

 

이는 여성의 목숨까지 위협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안전하지 않은 낙태 과정에서 감염과 출혈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합병증이 아이티 전체 임산부 사망의 13%와 연관돼 있다. 휴먼라이트워치는 임산부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아이티 정부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이재민 캠프의 여성들이 가족계획 체계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병원까지 갈 교통비가 없었다"

 

아이티 여성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이것만이 아니다. 의료 서비스를 제때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도 여성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23세 여성 베니타는 이재민 캠프 안에서 출산을 했다. 베니타는 출산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병원까지 갈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면 공짜로 돌봐주지만, 내겐 병원까지 갈 교통비가 없었다. 많이 고통스러웠다."

 

베니타는 오후 4시에 진통을 시작해 오후 7시에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아이는 그 다음날 오후 2시에 숨을 거뒀다. "우리는 구급차를 부르거나 병원에 가는 대신 장례식장으로 가야 했다."

 

휴먼라이트워치는 출산 시기에 맞춰 병원에 갈 돈이 없어 고통을 겪은 베니타 같은 사례가 이곳에서는 특이한 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또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재민 캠프에 있는 여성들 중엔 진흙 바닥이나 골목에서 의료진의 도움 없이 출산해야 했던 이들도 있었다. "어떤 여성들은 (이재민 캠프 안의) 텐트에서 아이를 낳았고, 어떤 이들은 의료진의 도움을 얻기 위해 진통이 오고 있는데도 걸어야 했다. 한 여성은 병원에서 쫓겨나 길거리에서 아이를 낳아야 했다."

 

이처럼 이재민 캠프의 여성들이 고통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휴먼라이트워치는 "(출산을 앞둔 여성들이) 의료 시설까지 가는 데 필요한 교통비 등이 무상 의료 서비스 항목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아이티 국내외의 여러 비정부기구(NGO)들이 무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 사실을 아는 여성도 별로 없고 어디로 가면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도 잘 모르는 여성이 많은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이러한 접근권 문제가 임산부와 유아를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다는 것이다.

 

14세 소녀도 성폭력 피해자

 

성폭력도 여성을 위협하는 요소다. 대지진 이전에도 사회 문제였던 성폭력은 대지진 이후 더 늘어났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인권운동가들은 수용할 수 있는 인원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이재민 캠프에서 생활하면서 사생활을 안전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진 것이 성폭력이 늘어난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포르토프랭스를 가로질러 무질서하게 뻗어나간 이재민 캠프에는 30만 명이 넘는 성인 여성 및 소녀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불결한 캠프 안에 있는 텐트와 방수포(防水布)로 만든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성폭력을 당해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이 여럿 있다. 이 중에는 14세 소녀도 포함돼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사회적 낙인과 수치심 때문에 의료진을 찾지 않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휴먼라이트워치는 이재민 캠프의 여성이 의료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을 국제 구호 기구들과 아이티 정부에 권고했다.


태그:#아이티, #대지진, #성폭력, #출산, #성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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