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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6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한반도선진화재단 주최로 열린 한선국가전략포럼 창립기념식에 참석한 김영삼 전 대통령(자료사진)
 2010년 10월 6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한반도선진화재단 주최로 열린 한선국가전략포럼 창립기념식에 참석한 김영삼 전 대통령(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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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두 정치인에게는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큰 공통점이 있다. 먼저 '감성·직선적인 화법'이 그것이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일본인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못 빌린다" 등이 김영삼이 남긴 유명 어록이라면, "노무현은 참 나쁜 대통령"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 "(이재오는) 오만의 극치, (이상득은) 정치의 수치" 등은 박근혜가 남긴 유명 어록이다.

김영삼은 취임인사 차 방문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앞에서 박정희에 대해 "쿠데타 한 놈들"이라고 노골적으로 표현했고, 박근혜는 동생 박지만의 삼화저축은행 관련설에 대해 "본인이 아니라고 밝혔으니 그것으로 끝난 것"이라고 단순하게 말했다.

그들이 이렇게 노골적이고 단순한 화법을 구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이런 화법은 대중의 마음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효과를 낸다. 아울러 화자가 대단한 순발력과 신념의 소유자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인이 이런 화법만을 주로 사용할 때, 또는 이런 화법밖에는 구사하지 못할 때,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본다.

박근혜의 복지 정책, 독창성과 구체성도 결여

최근 우리 사회에는 복지 문제가 가장 첨예한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다른 정치인에 앞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표시했다. 작년 12월 20일 그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주최했다.

약 80명의 현역 의원이 참석한 이 모임은 공청회라기보다는 대선 출정식 같은 분위기였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축사를 하면서 "유력한 미래 권력이신 박근혜 전 대표가 한국형 복지의 기수로 취임하는 날이다"라고 말했고, 사회자 한선교 의원은 "1년 넘게 준비했다"라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런데 이날 이후 박 전 대표는, 최근 몇 년 동안 그래왔듯이 말을 극도로 아꼈다. 그리고 벌써 8개월이 지나갔다. 그의 복지정책을 놓고 의미 있는 토론이나 논쟁이 벌어진 일도 없었다. 이것은 우선 그가 내세운 복지정책의 노선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독창성은 물론 구체성도 결여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그 분야에서 일하는 필자의 친구는 "박근혜의 복지는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과 별 차이가 없다"고 평가한다. 하물며 국민이 '박근혜식 복지'가 무엇인지 감조차 잡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행히 최근 들어 박 전 대표는 복지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는 8월 15일 "국가가 개개인의 상황에 맞춰 세심하게 지원하는 것이 이 시대 우리가 해야 할 복지"라고 말했다.

서울 동작동 서울국립현충원에서 치러진 육영수씨 제37주기 추도식에서 그는 추도사를 통해 "어머니는 어렵고 힘든 분들 도와주시면서 자립과 자활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어려운 분들을 단순히 돈으로만 도와주는 것을 넘어서 그 분들이 꿈을 이루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국가가 개개인의 상황에 맞춰 세심하게 지원하는 것이 이 시대 우리가 해야 할 복지"라고 말했다.

이어서 박 전 대표는 "자아실현의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도록 해야 하고 열심히 일하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면서 "복지의 근본적인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그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마음에 굳게 새기면서 진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모은다면 반드시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1일 국회에서 열리는 9월 정기국회 개회식에 참석하기 앞서 귀빈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1일 국회에서 열리는 9월 정기국회 개회식에 참석하기 앞서 귀빈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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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그가 곧잘 말하는 '맞춤형 복지'의 개념도 아주 모호하다. 국가 지도자가 제시하는 정책은 우선 거시성을 전제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맞춤형 복지'란 전제부터 너무 미시적이어서 도무지 일반화하여 규정할 수가 없다.

또한 박 전 대표는 지난 8월 31일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 여부에 대해서도 "우리나라 복지에 대한 당의 방향이나 정책이 재정립 돼 당론이 정리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며 선거 지원 여부는 당의 복지당론 정립이 전제 조건인 것처럼 말했다. 사실 그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주민투표에서 내세운 '복지포퓰리즘 공격'을 당에서 취소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한나라당은 박 전 대표의 한마디에 표면상으로나마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지난 1일 충남 천안에서 복지당론을 정하기 위한 의원연찬회를 열었다. 하지만 모임을 촉발시킨 박 전 대표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나머지 참석자들은 '서민복지 확대'라는 하나마나한 결론을 내고는 모임을 끝내고 말았다. 물론 이 연찬회에 참석한 그들과 작년 12월 복지공청회에 참석한 80명의 현역 의원은 겹치는 사람들이다.

복지정책보다 더 퇴행적인 박근혜 식 대북정책

최근 박근혜 전 대표는 세계적인 국제정치·외교 저널인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대북정책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대한민국 차기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의 지위를 지키고 있는 박 전 대표의 글은 당연히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냉혹할 정도이다.

먼저 <중앙일보> 국제정치 대기자 김영희는 "북한 내부사정이 복잡하고, 6자회담에서 핵 문제가 해결될 전망이 안갯속이고,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꽉 막힌 상황에서 2013년에는 한국의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정치인의 북한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의 비전은 지금부터 내년 대선기간 내내 가장 중요한 화두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제한 후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막상 문제의 글을 읽고는 맥이 탁 풀렸다. 쓰고 싶어도 아무나 쓸 수 없는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할 기회를 잡은 한국의 '미래 권력'이 어떻게 이런 함량 미달의, 속이 빈,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한 걸음도 나아간 것이 없는 글을 쓴 것인지 모르겠다.

박 전 대표는 한국과 국제사회는 핵을 포기하는 것이 북한이 더 안전하고 풍요롭게 사는 길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말은 우리가 귀가 따갑도록 듣는 말이지 박 전 대표의 새로운 통찰이 아니다. 대세론을 믿는 한국의 '미래의 권력'은 남북관계의 타결을 위한 새로운 방안도, 깊은 통찰도 없는 글을 위한 글로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 <중앙일보> 9월 2일 김영희 칼럼 '실망스러운 박근혜의 F·A 기고문'에서

또한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역시 <경향신문>에서 "대북 포용정책과 강경책을 포용하면서 제3의 길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 같지만 철학이 안 보인다. 북한의 변화를 이끈다면서 어떻게 선제적인 행동을 해야 할지 전략이 없다"고 혹평했다.

'콘텐츠'란 '속에 든 것' 즉 내용물이다. '함유된 것' 즉 함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지도자가 함량 미달일 때 그 나라는 위기를 맞이하거나 퇴행한다. 김영삼은 우리에게 이 뼈저린 교훈을 안긴 인물이며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도 크게 보아 이 유형에 든다.

유력한 차기 주자 박 전 대표가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제 그의 '콘텐츠'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동안 국민은 오래 참으며 기다려 주었다.


태그:#김영삼, #박근혜, #콘텐츠, #복지정책,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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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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