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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군 축제
▲ 표제 장수군 축제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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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군 '한우랑 사과랑 축제'. 올해가 5회째다. 우리 지역의 축제인데 가 보지 않는다면 군민으로서 도리가 아닌 듯해서라기보다도 우리 어머니 적당히 행차 하실 곳이 없던 차에 잘 됐다 싶어 필요 용품들을 챙겨 나서게 되었다.

일단, 적당한 먹을거리를 찾는데 어머니가 드실만 한 것은 묵이었다. 옛 기억을 되살리기 딱 좋은 도토리 묵. 나이 드시면 누구나 머나 먼 옛날, 산과 들을 누비며 한 마리 들짐승처럼 자유롭던 그 시절의 음식이 끌리게 마련. 면 단위로 식당을 운영하는데 우리가 간 곳은 장수군 산서면 식당이었다.

도토리 묵을 먹다
▲ 묵 도토리 묵을 먹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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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에도 식당 일은 처음인 듯 싶은 시골 아주머니가 우리 모자를 빤히 쳐다 보시더니 "웬 아는 사람인가 했더마는 텔레비 나온 분이구먼?" 하신다. 가는데 마다 텔레비에서 봤다는 사람이다. 지난주에는 서울 영등포롯데백화점 문화센터에 강의를 갔었는데 앞자리에 앉은 한 분도 그러셨다. "텔레비 나온 분 아니냐?"고.

그 덕인지는 몰라도 묵을 한 쟁반 가져오셨는데 산더미 같았다. 도토리 특유의 약각 떫은 맛이 배어 있는 시골 묵 그대로였다. 어머니가 손으로 마구 드시려는 것을 옆에서 속도조절 해 드리면서 2/3는 내가 다 먹었다. 그리고도 배가 고파서 보리밥 생채 비빔밥을 한 그릇 시켜 나눠 먹었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다가 재미있는 곳을 발견했다. 거리의 화가들이었다. 네 분이서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아 즉석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면 빈소에 멋진 초상화 하나 걸어드려야지 싶어서 일단 가격을 물어봤다. 3만 원. 화가의 인상도 마음에 들었다. 색안경을 쓰고 덥수룩한 수염이 같이 술 한잔 하면 딱일성 싶었다.

어머니가 자리를 잡았다.
▲ 인물화 어머니가 자리를 잡았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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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이야 됐고, 어머니가 얼마나 한 자세로 계셔 주느냐가 관건이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저 사람이 누고?"라고 하지 않고 "저 사람 복골사는 인중이제?" 하셨다. 아, 얼마나 다행인가. 멋쟁이 모자까지 쓰셨겠다. 동네 아는 사람 만났겠다. 20-30분은 인내심을 발휘하실 게 분명했다.

어머니 시선을 집중시키다.
▲ 어머니 어머니 시선을 집중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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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부채질도 해 드리고 그림으로 된 행사 안내장도 보여드리면서 어머니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기분이 좋은 상태인 어머니가 "알빰 파는 데 없나? 멀리 있제?" 하셨다. 나는 쉽게 "네"라고 했다. 이번에는 "그라믄 집에 가는 길에 사 먹자"고 하셨다. 나는 역시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네"라고.

30여분을 가만히 계시는 어머니
▲ 어머니 30여분을 가만히 계시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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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집중력을 보여주셨다. 평소 같으면 뭐하냐고 소리소리 지르며 가든지 말든지 하지 여기 괜히 앉아서 뭐하냐고 하실 텐데 "아직 가면 안 돼나?"하셨을 뿐이다. 나는 역시 대답이 쉬웠다. "조금만 더 있다 가요."

화가가 나더러 그림을 보라고 하는데 그림 속 어머니는 적게 잡아도 20년은 젊어 보였다. 얼굴 주름도 없고 쪼그라들고 처진 턱 살도 매끈했다. 눈까풀도 살짝 들려 있어서 어머니의 가장 매력적인 또렷한 눈매가 20년 전으로 가 있었다.

완성된 그림
▲ 어머니 완성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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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까지 6만 원에 샀다. 오래 끌 화제를 골라 내 가며 어머니 곁에서 계속 말을 걸고 말을 받고 한 지 꼬박 30분 만이었다. 화가님의 연필 끝에서 환하게 거듭난 젊은 여인을 받아들고 집으로 왔다.

고추따기
▲ 고추 고추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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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가서 고추를 따 왔다. 벽에는 20년 젊은 어머니가 액자로 걸렸다. 어머니는 고추 꼭지를 따고 나는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고추 한 꼭다리 따고 옛날 이야기 한 토막 하고, 또 한 꼭다리 따다가는 옛날로 돌아가 이야기 한 토막을 풀어내셨다. 한번에 20년 단위로 과거를 오르내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울연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인물화,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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