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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밤, 경기도 안성에 있는 천년 사찰 칠장사 바로 밑 '남이 카페'에서 울려 퍼지는 풍물소리. 현대적 카페와 고전 풍물단.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만남의 소리는 서막에 불과했다. 안성 '해오름 풍물단'의 신명나는 길트기 공연은 말 그대로 길트기였다.

 

"시에 취하고 음악에 취하고"

 

이어지는 임형선 시인의 자작시 낭송. 거기다가 정경량 교수의 클래식 기타 반주까지. 잔잔한 기타소리에 맞춰 낭랑히 울려 퍼지는 낭송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눈을 감게 만든다. 사람들은 모두 시에 취하고 음악에 취한다.

 

이 정도도 감지덕지인데, 이어지는 동주 스님의 자작시 '어떤 사랑'은 시쳇말로 '뿅'가게 만든다. '하필이면 애기똥풀 위에서 사마귀가 사마귀를 잡아먹는다......'로 시작하는 스님의 시는 그 어떤 염불과 설법보다 청중의 가슴을 잔잔히 적신다.

 

이 모든 순서에 '약방 감초' 정경량 교수의 독무대가 선사되니 청중은 기대감에 마음이 잠시 설렌다. 클래식 기타 연주 소리만도 감미로운데, 그의 목소리는 더 감미롭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를 청중들과 함께 부를 땐 모두가 초등학생이 된다. 그는 동요부터 클래식 곡에 이르기까지 몇 개의 보따리를 펼쳐놓고는 청중들을 사로잡는 '종횡무진 마법사'다.

 

순서에도 없는 즉석출연이 오히려 신선해

 

중간에 즉석출연, 그것은 작은 음악회의 특권이다. 평택 산다는 한 남성이 색소폰을 들고 등장한다. MC의 친구라는 이유로 색소폰연주가 시작된다. 평소엔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인데, 이 순간만큼은 그가 주인공이요 '프로'다. 실력도 아주 수준급이다. 사람들은 블루스 춤이라도 한 번 당기고 싶어진다.

 

'중매 잘 못하면 뺨이 석대 잘하면 술이 석잔'이라 했던가. 연주하는 당사자보다 MC가 더 신경 쓰인다. 하지만, 그것도 기우. 끝나자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 폭탄에 모든 시름은 날아가고. 기대이상 잘해준 친구가 고마운 MC 박근미씨. 안 했으면 큰일날 뻔했다는 공감대가 카페를 감싸고돈다.

 

중1 소녀 김하늬 양의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 시)'의 낭송은 청중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중년 교수의 클래식 기타소리와 10대 소녀의 낭송소리는 그러기에 충분했다. 전병호 시인의 자작시 '빗방울의 노래' 낭송은 그 충분함의 마침표를 찍는다.

 

'아무도 모르라고(오현명 곡)'와 '울게 하소서(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중 제2막 제4장)'란 곡이 노래될 땐 오페라 극장을 잠시 옮겨오는 듯했다. 노래의 주인공 류가인 화가의 풍부한 성량만큼이나 감성이 풍부해지는 순간이다.

 

이색적이다 못해 독특한 시간이 왔다. 김종욱 소리꾼의 '행여 소리'가 창으로 들려진다. 소리꾼의 상여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청중들은 지금 서양식 돈가스를 먹고 있다. 장례를 치루는 전통 창이 서양 식사와 만나고 있다. 슬픈 장례의 노래인데도 그 어느 누구도 울지 않는, 오히려 미소 짓고 있는 아이러니가 거기에 가득하다. 오히려 흥겹기까지 하다.

 

클래식 기타와 장구의 앙상블, 그 누가 상상했으랴. 정경량 씨의 클래식 기타와 배수화 씨의 장구 협연. '홀로 아리랑'이 연주되니 서막에 불과하다던 '동서양의 만남'이 정점을 찍는다.

 

 

시민 누구나 의사소통하는 문화예술행사를 만들고자

 

작은 음악회라지만, 참 다양도 하다. 팝송, 7080 가요, 트로트, 칸소네, 가곡, 동요, 전통국악, 사물놀이, 클래식, 시낭송 등. 중1 소녀에서 스님과 목사, 교수, 학교장, 농부, 시인, 예술가, 주부, 직장인 등의 다양한 사람들이 출연했다. 헤르만 헤세의 시부터 우리나라 도종환 시인의 시, 그리고 자작시에 이르기까지 시도 천차만별이다.

 

객석에서 뭐라고 반응하면 무대에서 즉석으로 대답하고. 그걸 그대로 반영해서 진행되는, 대화가 되는 음악회다. '주거니 받거니'의 매력을 충분히 살렸다. 순서에도 없는 돌연 출연이 오히려 '신선함'으로 용서되는 여유가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전문 음악인이 없지만, 그 순간 모두 '프로'가 되는 마법이 작용한다. "앙코르"를 외치는 건 기본이고, 박수소리는 무한 옵션이다. 청중과 바로바로 의사소통하는 즐거움은 필수다. 작은 음악회라더니 알고 보니 참 큰 음악회가 아닌가.

 

사실 안성문화예술위원회는 올해 3월에 창립한 단체다. 그들은 "안성을 비롯한 전국의 문화예술 행사의 문이 턱없이 높아 서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걸 공감한 사람들이다. 특히 바우덕이 축제 등을 비롯한 안성의 문화행사들이 관과 특정단체들이 주도하는 일방적인 문화행사임을 지각한 사람들이다.

 

이런 취지에 공감한 사람들이 생각해낸 '작은 음악회'. 그것은 시민 누구나 와서, 공연자 일방 통행이 아닌 쌍방의사소통이 가능하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뭔가를 고심하던 위원들의 작품이라 하겠다.

 

특히나 이번 음악회에 출연자들이 대부분 전문음악인이 아니어서 누구라도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던져주었다. 그동안에 치러진 대부분의 문화예술행사가 그 방면의 전문인들이 만들어 보여주는 것만 받아들이는 것이었음을 감안할 때, 신선한 시도였다. 이날 입장료는 무료였으며,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문이 열려 있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김한영 대표(안성문화예술위원회 http://cafe.daum.net/charmbiit)는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안성문화예술의 새바람, 새 토양을 만들어 가겠다. 그것은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문화 창출이다. 여러분이 함께 가자"라고 인사말을 갈음했다.

 

이날 게릴라 출연한 한 사나이가 부른 가곡 '선구자', 그것은 바로 이 음악회를 개최한 안성문화예술위원회를 가리킨 듯. 그들은 안성이란 도시를 새로운 문화로 디자인해가는 선구자들이지 않는가. 이런 움직임들이 안성 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번져가기를 바래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작은 음악회에 초대받은  본 기자(송상호)가 후기 소감 형식으로 작성되었으며, 사는이야기 형식으로 기술된 것이다. 


태그:#안성문화예술위원회, #안성문예위, #작은 음악회, #안성, #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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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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