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는 자유주의를 넘어 신자유주의 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정리해고, 대량실업, 극심한 빈부격차, 세계적인 전자정부의 통제, 세계인구의 대량 청소 등이 그것이다. 가히 신자유주의 시대의 폭력이 우리사회 곳곳에서 옥죄고 있다.
그것은 자본과 시장질서 속에서 자유롭게 일어나는 경제학적 구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다. 세계 모든 이들이 주지하듯이, 정치적인 실리관계가 더 확실한 지배체제로 서 있다. 그런 점들을 도외시한 채 단순한 시장접근 방식으로 신자유주의 체제를 이해한다는 것은 뜬구름 잡는 일이다.
미셸푸코의 <안전, 영토, 인구>는 홀로 자립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사다리를 부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 담론이다. 그것이 통치성의 개념으로 대두되는 바, 규율권력과 생명관리권력을 종합한 담론서이기도 하다. 감시와 처벌, 그리고 성의 역사를 하나로 통합한 게 그것이다.
푸코는 그런 통치성이 전체화하는 동시에 개별화 전략으로 나타난다고 꼬집는다. 이른바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빌미로 전체적인 감시체계를 발동하고, 그와 동시에 한 개인의 사소한 내용까지도 수시로 침투한다는 게 그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친 이후에는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전면화된 복종의 장'에 다다르게 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2세기경에 등장한 그리스도교의 사목제도 속에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중심한 16세기의 통치술에도, 중상주의로 대표되는 17세기에도 대두되었다고 평가한다. 물론 시대를 달리하여 색다른 옷을 껴입긴 했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규율과 생명관리라는 통치성이 그 근간이었음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사목적 통치의 특성은 이렇습니다. 요컨대 전반적으로 사목적이라 할 수 있는 권력이 그리스도교 시대 내내 정치권력과 분리된 채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종교 권력이 개인의 영혼만을 돌보는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사목권력은 영혼의 인도가 어떤 개입, 곧 일상의 품행과 생활의 관리에 대한 지속적인 개입, 재산·부·사물에 대한 지속적인 개입을 포함하는 한에서만 개인의 영혼을 돌봅니다."(223쪽)
이는 이 책의 제 5강부터 9강 전반에 기술하고 있는 사목제도의 권력 기술에 관한 내용이다. 특별히 사목 권력을 '좋은품행'으로 진단한 그의 지적은, 하버마스가 이야기했듯이, 지극히 '소장 보수주의자'의 견해로 비칠 수 있다. 반면에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반종교개혁 진영 안에서조차 '대항품행'이 등장했다고 진단한 것은 그의 진보주의적인 시각도 반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책의 제 10강부터 13강까지는 국가 이성에 관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 역시 경제적 통치성과 깊은 연관이 있는 강론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비용과 수익에 의해 통치당하고 있는 '호모에코노미쿠스'에 대한 견해이기도 하다. 오늘날 국가 운영 전반에 감시와 통제를 적용하는 것도 그 일환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그에 대한 해체를 위해 기술하려고 했던 '혁명적 주체성의 역사'는 그의 때 이른 죽음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시 문제, 그것은 단순한 안전 공간과 환경 문제 차원으로만 해결하는 게 아니다. 그 밑바탕에는 안전과 환경을 빌미로 한 통제성이 놓여 있음을 갈파해야 한다. 아울러 17-18세기에 대두되었던 식량문제와 천연두 문제가 신자유주의 시대 말미에는 신종 질병과 감염이라는 문제 속에서 쓸모없는 인구의 대량청소라는 명분도 얻게 될 것이다. 생명에 관한 경외와 주체성의 윤리는 뒷전으로 밀려난 채 말이다.
그렇기에 이 시대의 위기 속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자세는 푸코가 바라봤던 대항품행의 또 다른 형식을 취하는 것, 곧 전면화된 복종의 장을 해체하여 스스로의 주체성을 세워가는 일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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