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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 아이텔 'GfZK 슈바르츠(GfZK Schwarz)' 캔버스에 오일 180.3×240cm 2001. 인터뷰하는 작가 팀 아이텔(가운데). 격자로 된 배경은 일상에 갇혀 사유하지 못하는 사는 인간을 상징하는 것 같다
팀 아이텔 'GfZK 슈바르츠(GfZK Schwarz)' 캔버스에 오일 180.3×240cm 2001. 인터뷰하는 작가 팀 아이텔(가운데). 격자로 된 배경은 일상에 갇혀 사유하지 못하는 사는 인간을 상징하는 것 같다 ⓒ 김형순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독일현대미술을 이끄는 대표적 뉴 라이프치히 스쿨인 팀 아이텔(Tim EITEL 1971~)의 개인전이 열린다. 10년간 작업한 16여 점을 선보인다. 그는 독일은행 컬렉션을 비롯하여 함부르크 반호프 현대미술관, 미국 세인트루이스와 페이스 갤러리 등에서 전시를 가진 구미에서 크게 주목 받는 작가다.

팀 아이텔은 1971년 독일 남부 레오베르크에 출생, 1933년부터 슈투트가르트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1997년부터는 라이프치히 미술대학에서 고전적 방식을 고수하는 아르노 링크 교수의 지도로 석사학위를 마쳤다. 작품주제가 인간존재에 대한 성찰을 다룬 건 그가 철학전공자였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회화는 사물을 다르게 보게 하는 통로

 팀 아이텔 I '베지츠(Bestitz 재산)' 린넨에 오일 280×221.6cm 2006 ⓒ Tim Eitel
팀 아이텔 I '베지츠(Bestitz 재산)' 린넨에 오일 280×221.6cm 2006 ⓒ Tim Eitel ⓒ 학고재

고야의 블랙페인팅도 좋지만 팀 아이텔의 주조를 이루는 검회색은 참으로 장엄하고 황홀하고 몽상적이기까지 하다. 그 어둔 색채가 관객을 블랙홀처럼 빨려 들인다. 작가의 말로 검회색을 많이 쓰는 건 관객 나름대로 그림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위해서란다.

팀 아이텔은 "회화는 보이지 않던 것도 보게 하고 사물을 다르게 보도록 안내하는 초대장 같은 것"이라고 말했는데 관객은 위 작품을 보면 이게 도대체 웬 그림인지 묻게 된다. 혹시 내가 저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다가, 아니야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지 하다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가를 묻게 한다.

사진으로 스케치하고 포즈를 넣어 재구성

 팀 아이텔 I '테이블을 둘러싼 다섯 남자(Five Men Around a Table)' 캔버스에 오일 175×210cm 2011 ⓒ Tim Eitel
팀 아이텔 I '테이블을 둘러싼 다섯 남자(Five Men Around a Table)' 캔버스에 오일 175×210cm 2011 ⓒ Tim Eitel ⓒ 학고재

팀 아이텔은 젊은 작가답게 스케치 대신 스냅사진을 찍고 그걸 작품의 밑그림으로 활용한다. '테이블을 둘러싼 다섯 남자'도 원래는 4명의 남자를 찍은 것인데 여기에 1명의 인물을 추가한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는 기존의 맥락에서 작가가 필요한 것을 선별하고 편집하면서 매혹적이고 환상적인 포즈로 살려 작품을 재구성한다.

위 작품은 나이층이 다른 5명의 남자가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무슨 고민에 빠져 있다. 관객은 왜일까 질문을 던지게 되고 그러다보면 그림 감상시간이 점점 더 길어진다. 결론은 없고 물음만 던지는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처럼 작가는 작품에서 어떤 질문만 던지고 그 결론은 관객이 나름대로 내리라는 식이다.

보통 작품을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물으니 3개월에서 1년, 위 작품은 거의 1년이 걸렸다니 구성의 엄격함과 장인적 완벽성을 추구하는 라이프치히 화풍의 기질을 엿볼 수 있다. 작가는 그리는 시간보다 구상하는데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린다고 말한다.

혼자인 사람이 많은 건 자신을 돌아보기

 팀 아이텔 I '무제_부분(Untitled_Part)' 캔버스에 오일 25×22cm 2011
팀 아이텔 I '무제_부분(Untitled_Part)' 캔버스에 오일 25×22cm 2011 ⓒ 학고재

 팀 아이텔 I '무제_관찰자(Untitled_Observer)' 캔버스에 오일 35×30cm 2011
팀 아이텔 I '무제_관찰자(Untitled_Observer)' 캔버스에 오일 35×30cm 2011 ⓒ 학고재

작가에게 또 왜 주로 등을 돌리고 있는 혼자인 사람을 많이 그리느냐고 물었더니 사람은 고립이 아니라 혼자 외롭게 있을 때 자신을 돌아보게 성찰하게 되기 때문이란다. 이는 방에서 혼자 따분하게 있게 되면 심심해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게 되고 거기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것과 원리가 같다.

독일현대미술의 아버지 격인 요셉 보이스도 "사고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지구를 떠나가"라고 했지만 '관찰자' 등의 작품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사람들이 뭘 고민하고 생각하고 사유하고 있는지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현대인들은 스위치만 커면 잘 편집된 TV 화면을 보게 되고 이런 저런 미디어매체에 중독되어 독자적이고 자생적 사고를 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사회의 조류에 이끌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삶에서 긍지와 자부심을 찾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작가는 미술을 통해 사람들을 사색하는 자리로 돌아오게 한다.

외면하게 되는 것도 다시 보게 하다

 팀 아이텔 I '무제_간이침대(Untitled_Cot)' 캔버스에 오일 22.9×22.9cm 2009 ⓒ Tim Eitel
팀 아이텔 I '무제_간이침대(Untitled_Cot)' 캔버스에 오일 22.9×22.9cm 2009 ⓒ Tim Eitel ⓒ 학고재

이번엔 노숙자가 머물렀던 흔적이 보이는 '간이침대'라는 작품을 보자. 어두운 회색 톤에 그 분위기도 침울하다. 지저분하고 궁색이 넘쳐 관객들이 외면하고 싶은 장면이다. "쇼핑하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처럼 소비와 소유가 존재와 행복의 근간이 되는 시대에 이런 뜬금없는 장면을 관객을 당황하게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작가가 여기서 노리는 것은 뭔가. 일상에서는 거들떠보기도 싫은 것도 회화를 통해서는 다시 바라보게 한다. 그게 아마도 작가가 생각하는 회화의 힘일 것이다. 우리가 가난은 싫어해도 박수근의 가난한 서민의 애틋한 삶이 담긴 그림은 너무 좋아하지 않는가.

작가는 이렇게 생각하기 싫어하는 것을 그림을 통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고 보기 싫은 것을 다시 바라보도록 전환시킨다. 그게 바로 작가의 역량이 아닐까 싶다. "화가는 강자도 약자도 아니지만 그가 세계를 반추할 때 화가는 아무도 당해낼 수 없는 제왕이 된다"고 한 메를로 퐁티(Merleau-Ponti)의 말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는다.

동시대 사람과 사회를 관찰하는 그림

 팀 아이텔 I '무제_시위(Untitled_Protest)' 종이에 오일 27.9×30.5cm 2009 ⓒ Tim Eitel
팀 아이텔 I '무제_시위(Untitled_Protest)' 종이에 오일 27.9×30.5cm 2009 ⓒ Tim Eitel ⓒ 학고재

이런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또 다른 작품 중에 '시위'가 있다. 이진숙 미술평론가는 이 작품에 대해 "그는 자신의 현존을 내던져서 세상에 시위를 하고 있다. 1인 시위가 국가행정력과 자본의 힘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가를 보여준다. […] 팝아트에서 보여주는 것 같은 소비사회의 밝은 면이 회화적으로 모두 소진된 자리에 등장한 그림이다"라고 평했다.

작가의 의도를 더 확실히 알고 싶어 이런 그림이 세계화나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뜻하느냐고 물었더니 작가는 그런 이유보다는 다만 동시대 작가로서 그런 현상을 작품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관객 스스로 판단하도록 유도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역시 통일세대답게 역사적 책임보다는 사회적 현상을 담담하게 관찰하는 걸 선호한다.

소외와 불안의 소심한 감정을 작은 소품에 담다

 팀 아이텔 I '경기장(Stadien)' 캔버스에 오일 일부 각각 20×20cm 2001
팀 아이텔 I '경기장(Stadien)' 캔버스에 오일 일부 각각 20×20cm 2001 ⓒ 김형순

끝으로 이번 전시에는 대작 말고 '경기장'에서 보는 것처럼 20×20cm 크기의 소품도 많다. 작가에게 왜 이렇게 작은 그림을 많이 그리느냐고 물었더니 작가는 관객에게 그림에 친근감을 가지고 더 가까이 와서 보도록 유도하려 했단다. 하지만 소외감이나 불안 등 현대인이 품고 있는 소심한 감정을 담기에는 이런 소품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하여간 결론적으로 말해 이번 전시에서 가장 재미있는 점은 회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생각하기 싫어하는 것을 생각하게 하고, 외면하고 싶어하는 것을 다시 보게 하고, 감추고 싶은 감정도 들춰내게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팀 아이텔이 갖춘 역량이자 미덕이자 매력이 아닌가 싶다. 또한 그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일 것이다.

 라이프치히 미대[아트 아카데미] 전경(Hochschule fur Grafik und Buchkunst Leipzig in der Wachterstraße)
라이프치히 미대[아트 아카데미] 전경(Hochschule fur Grafik und Buchkunst Leipzig in der Wachterstraße) ⓒ Wikipedia

뉴 라이프치히 스쿨(New Leipzig School/Neue Leipziger Schule)의 작가들은 모두 라이프치히 미술대학(Leipzig's Hochschule fur Grafik und Buchkunst) 출신으로 이 학파는 1990년대 중반부터 라우흐(N. Rauch) 바이셔(M. Weischer) 슈네(D. Schne) 등을 필두로 독일미술의 메카가 되었다. 이들은 리히터의 신표현주의자나 요셉 보이스의 플럭서스 운동과 무관하다 이 화파는 '영국청년작가(yBa)'와 중국의 '정치 팝(Political Pop)', 인도의 '현대미술' 등을 세계 4대 미술운동으로 불리기도 한다.

동독은 서독에 의해 흡수 통합되었다는 점에서 약자의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들은 통일 이후의 미술이라는 과제를 묵묵히 수행해 간다. 평론가 크리스티안 쉴레는 이 화파에 대해 '테크닉적인 풍부함, 조절된 톤의 색채, 사회적 개입의 포기를 특징으로 하는 일종의 체념의 미술로 사회주의의 유토피아가 무너지면서 영혼 느낌 목적성을 잃어버린 희극화된 사회의 비애와 거대한 잔치가 끝난 뒤의 공허함과 실망감을 작품의 지배적인 감정으로 읽어 낸다"고 평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초현실주의의 교묘한 결합 속에서 설화적 요소가 강하고 네오 라우흐가 독일의 역사를 하나의 신화와 해독하기 어려운 암호로 만들고 있다. 세상에서는 추상적 요소와 구상적 요소가 병치되고 균등한 세력관계를 유지하며 다양한 미학적인 효과를 낳고 있다. 그 분위기가 애매모호함과 불투명한 것도 또한 특징이다. 라이프치히는 바흐나 멘델스존과 같은 위대한 음악가가 태어난 구동독의 예술도시로도 유명하다. - 이진숙 미술평론가 글과 위키페디아 등 참고

덧붙이는 글 | 학고재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70번지 02)720-1524 www.hakgojae.com



#팀 아이텔#뉴 라이프치히 스쿨#독일현대미술#TIM EI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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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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