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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한 기본협약서가 '이중'으로 작성된 것이 드러나면서 단숨에 정치권은 물론 제주사회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협약서는 3부를 작성해 당사자가 날인하고 각 1부씩 보관하는 것으로 했다.

일부에서는 제목과 전문이 다른 2개의 협약서를 3자가 2부씩 나눠가진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지만 서명은 하되 한부씩만 보관한 것으로 취재결과 확인됐다.

문제는 사업의 성격 자체를 규정하는 협약서의 제목이 다르다는 점. 국방부가 보관하고 있는 협약서는 '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과 관련한 기본협약서'로 되어 있다. 반면 국토부·제주도가 갖고 있는 협약서의 제목은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과 관련한 기본협약서'다.

두 가지 협약서는 제목만 다를 뿐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둘 다 제1조(목적)에서 '제주해군기지를 최대 15만톤 규모의 크루즈 선박 2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으로 건설한다'고 명시했다.

다만 제목 외에 전문(前文) 중에서도 내용이 일부 다른데, 국토부와 제주도의 협약서에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과 지역발전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라고 표현한 대신 국방부 전문에는 '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고 되어 있다.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군항이냐, 아니면 민항 중심의 민·군복합항이냐, 사업의 정체성이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제목이 다른 협약서가 존재하는 것일까.

제주해군기지 사업과 관련해 최초로 성격 규정에 나선 것은 국회(예결특위)다. 2008년도 해군기지 예산을 처리하면서 내건 부대조건에 '민군복합형 기항지' 개념을 처음 사용했다.

이듬해 9월에는 한승수 총리가 주재한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으로 포장이 된다. 지역명(名)도 없이 군사기지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탈색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문제가 된 '이중 기본협약서'는 국가정책조정회의가 있고 7개월 정도가 지난 2009년 4월27일에 체결된 것이다.

강창일 의원 주장대로 협약 당사자들이 이중으로 협약서를 작성했다면 이는 그야말로 '대국민 사기극'이 된다. 상황의 유, 불리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 위해 서로 '짬짜미'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매매 계약서를 이중으로 작성하는 이치와도 같다. 사인(私人)간 거래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행태가 국가기관 사이에서 빚어진 것이다.

 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과 관련한 2개의 다른 기본협약서
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과 관련한 2개의 다른 기본협약서 ⓒ 제주의소리

당시 기본협약서 체결에 관여했던 제주도 관계자는 <제주의 소리>와 전화통화에서 "서로의 입장을 상호 존중하는 차원에서 (제목이 다른 협약서에) 사인을 한 것으로 안다"며 이중 협약서의 존재를 시인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당시 명칭 문제로 높은 분들이 수차례 만났는데도 정리가 안됐다. 도로서는 MOU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내용에 충실하려 했다"고 당시 기억을 더듬었다.

당시 담당국장 K씨는 "항구 명칭에 대해 합의가 안된 상황에서 MOU를 체결하면서도 우리는 특별법에 넣자고 정부를 설득했다. 결국 4단계 제도개선에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명칭이 삽입됐고, 입법화가 돼 이제는 공식화되지 않았느냐"고 설명했다.

제주도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국방부(해군)는 국회(예결위) 권고와 총리가 주재한 국가정책조정회의 결정에 반기를 든 셈이 된다.

육군 대장 출신인 한나라당 한기호 의원이 "해군기지가 아니라면 해군이 공사를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어쨌거나 당시 김태환 도지사는 MOU 체결 직후 '도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오늘 협약 체결은 정부와 제주도가 상호 입장에서 서로 이행할 의무와 책임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강정마을과 시민사회 진영은 곧바로 "굴욕적인 MOU 체결"이라며 십자포화를 날렸고, 이를 계기로 '김태환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를 결성하게 된다. 결국 김 지사는 이 문제로 전국 최초로 주민소환 대상에 오른 광역자치단체장이란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다.

<좌용철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제주해군기지#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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