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김태환 제주도정은 제주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국방부, 국토해양부와 기본협약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이 협약서는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은 '이중 협약서'였고, 당시 제주도정은 이중 협약서 작성을 국방부·국토해양부와 '공모'했다.
얼핏 보면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매매 계약서를 이중으로 작성하는 이치와도 같다. 사인(私人)간 거래에서 찾아보기 힘든 행태가 국가기관 사이에서 빚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도는 이러한 사실을 왜 굳이 숨겼을까.
따지고 보면 이중 계약서가 나오게 된 데는 국방부의 '버티기'가 한몫 했다.
제주해군기지 사업과 관련해 성격 규정을 최초로 시도한 건 국회 예결특위다. 2008년도 해군기지 예산을 처리하면서 내건 부대조건에 '민군복합형 기항지' 개념을 처음 사용했다.
당시 원혜영 위원장은 '민군복합형 기항지' 개념과 관련해 "찬·반 양측의 팽팽한 의견을 조정하기 위해 제안한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크루즈 선박이 이용할 수 있는 민항을 기본으로 해군이 필요한 경우 일시 정박해 주유나 물자 등을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엔 해양경찰의 이용까지 포함 된다"는 매우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였다.
하지만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이듬해인 2009년 9월 정부는 한승수 총리가 주재한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으로 리모델링한다. 지역명(名)도 없이 군사기지라는 부정적 이미지의 색깔을 빼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이렇게 정부까지 나서 정리를 했으면 이후부턴 '항구 명칭'을 놓고 혼선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만 문제가 된 '이중 기본협약서'는 정부의 정책조정 이후에 작성됐다. 국가정책조정회의가 있고 난 7개월 정도가 지난 2009년 4월 27일에 체결된 것.
액면만 놓고 보면 국방부(해군)는 국회(예결위)의 권고는 물론 총리가 주재한 국가정책조정회의 결정을 시쳇말로 '씹은' 것이다. 말을 뒤집으면 국회 권위에 정면 도전한 것은 물론 행정부의 수장이 주재하고 조정한 정부의 결정에 반기를 든 것이다.
제주도의 입장에서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을 관철시키지 못한 책임론이, 국방부는 국회 권고와 국가정책조정회의의 결정을 뒤집었다는 비판여론이 두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서로의 이해득실이 맞아떨어지면서 결국 이중 협약 사실을 묻기로 짬짜미한 성격이 짙다.
이와 관련 당시 실무협의에 참여했던 제주도 A서기관은 '어쨌든 간에 협약서가 두 개라는 건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에 "그 부분은 인정한다"면서도 "의도를 가지고 (제목이 다른 두 개의 협약서) 존재를 숨긴 것은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사실 당시에는 협약서 제목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을 했고, 실제 내용에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문구로 정리됐다"면서, 도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데 지금에 와서 문제가 불거져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방부와 제주도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국민과 제주도민을 속인 '사기극'이었다는 점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좌용철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