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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추방앗간에서 고추를 빻았다.
 고추방앗간에서 고추를 빻았다.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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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에 가면 고추가 지천이라던데 장사꾼들이 내놓지 않는다네."
"장사꾼이 왜 안 내놔요. 밭주인들이 안 내놓겠지요."

고추를 내놓지 않는다는 말에 고추를 빻던 방앗간 주인이 성을 낸다.

"장사꾼들은 이렇게 내놓고 팔고 있잖아요."
"맞다, 맞아. 밭주인들이 중간 도매상들에게 팔면 싸게 파니깐 일반인들에게 팔려고 안 내놓는다고 합디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왜 안 내놓는데요. 요즘 고추 가격이 아주 비싼데"라고 말했다. 그러자 "추석 지나면 더 비싸지니깐 기다리고 있나 보지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고추만 보면 저절로 쏠리는 눈길

요즘 햇볕이 좋아 그동안 집에서 말린 태양초와 산 건 고추를 빻으려고 최근 방앗간을 찾았다. 내가 간 순간에는 사람이 없었는데 한 사람 두 사람 말린 고추를 들고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주부들의 화젯거리는 두말할 것도 없이 고추였다. 

"고춧값 비싸지요? 요즘 고추 잘 팔려요?"
"잘 팔리기는요. 가격만 물어보고 그냥 가기가 일쑤고 어쩌다 싼 게 나오면 10분도 안 돼서 다 팔리는데 손님들끼리 싸우고 난리도 아니에요. 얼마 전에 600g 한 근에 1만3000원 짜리가 아주 좋기에 내놓았더니 순식간에 없어졌어요. 이렇게 오를 줄 알았으면 팔지 말고 놔둘걸…."

주부와 방앗간 주인의 대화다. 그리고 어쩌다 사는 사람도 작년과 비교했을 때 절반도 안 사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또 한 주부가 20근 남짓 되는 말린 고추를 들고 들어왔다. 그는 며칠 전 전라도 지방에 가서 600g 한 근에 1만2000원씩 20근을 사왔다고 한다.

그런데 방앗간 주인은 한 근에 1만5700원을 주고 산 내 고추보다 그 고추가 훨씬 좋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방앗간 주인은 "이것도(내 고추) 요즘엔 그 가격에 못 사요"한다. 비싼 내 것보다 싸게 주고 산 것이 더 좋아도 어쩔 수 없다. 고추를 샀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잠시 후 머리가 희끗희끗한, 80세는 훌쩍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작은 고추봉지를 들고 들어오신다.

난 다 빻은 고춧가루를 담고 있는데 할머니는 "20근 쯤 되나? 몇근이나 나왔나? 얼마씩 샀수?" 하고 물으신다. 고춧값이 하도 비싸니깐 고추를 들고 가는 사람만 봐도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은 할머니나 나나 마찬가지다.

"네 14근 정도 나왔고요. 1만5700원 줬어요. 할머니는 집에서 말린 거예요?"하고 물으니 "말리긴? 이게 5근, 한 근에 이만 원씩 십만 원어치야. 내 생전에 고추를 이렇게 비싸게 주고 사보기는 처음이야" 하신다.

나도 할머니 고추봉지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아니 요게 진짜 십만 원어치예요?" 말로만 듣던 가격이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이렇게 비싸니 어떻게 해. 올 김장도 허옇게 먹어야지"하신다.

하루새 2000원 오른 고춧값... 김장 포기하는 사람 늘겠네

 9월3일 경기도 양평에서 만난 고추밭. 모두 죽은 상태다.
 9월3일 경기도 양평에서 만난 고추밭. 모두 죽은 상태다.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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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장에서 만난 56세 주부 염씨는 "해마다 갖다 먹는 집에 돈을 미리 주어서 한 근에 1만3500원씩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림도 없을 일이라면서. 또 54세 주부 김씨는 한근에 1만8000원씩 주고 20근을 샀다고 한다. 그래도 작년보다 적게 산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야말로 고추 시세가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그 가격 역시 천태만상이다. 그런가 하며 30대 중반의 젊은 주부 양씨는 "친정 어머니가 해마다 김장을 담가주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김장비용을 좀 더 넉넉히 내놓아야 할 것 같다"면서 작은 한숨을 내쉰다. 주변에는 올해는 아예 조금씩 사먹겠다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고추를 빻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추 빻기 2~3일 전에 한 근에 2만 원이란 고추 가격이 어느새 2만2000원으로 표기돼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산 인터넷 쇼핑몰을 들어가보니 그곳에도 1만9800원으로 올라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고춧값. 정말 이러다 김장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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