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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순례 이야기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자전거 국토순례를 진행하면서 실무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었습니다.

전남 강진을 출발하여 임진각까지 620km를 달리는 동안 아무 사고없이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지요. 실무자들이 열심히 준비하고 진행하였지만 몇 건의 작은 사고들이 있었습니다.

내장산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타고 내려가다 넘어져서 다친 아이도 있었고요. 자전거끼리 부딪쳐 넘어져서 타고 있던 사람이 다친 일도 있었습니다. 다행이 모두 타박상과 찰과상으로 큰 부상을 입지는 않았습니다.

상처가 나지 않았지만 자전거를 타는 도중에 일어난 작은 사고는 몇 건이 더 있었습니다. 도로를 주행하다 느닷없이 넘어지는 사고가 두세 번 있었는데, 모두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면서 졸다가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헬멧을 쓰고 있었고 논두렁 같은 곳으로 넘어졌기 때문에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번은 넘어지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였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졸다가 넘어진 아이는 깜짝 놀라 자전거를 일으켜세우고 다시 대열을 뒤쫓아 달리더군요.

사흘, 나흘 날짜가 지날수록 진행자들의 고민 중 하나가 아이들이 졸지 않도록 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체력에도 문제가 없고, 자전거 타기에도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바짝 정신을 차리고 집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틀, 사흘 지나면서 자전거 타기에 익숙해지고 피로가 누적되자 점심을 먹고 오후 시간에 자전거를 타면서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조는 아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행을 하면서 조는 아이들이 없는지 신경써서 볼 수 밖에 없겠더군요.

 한국YMCA 자전거 국토순례
 한국YMCA 자전거 국토순례
ⓒ 이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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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을 늦추고 방심하면 사고로 이어진다?

가끔 오르막 내리막도 없는 평지가 오랫동안 계속되는 국도 같은 곳에서 더 자주 꾸벅꾸벅 졸면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이 눈에 띄더군요. 그때 마다 등짝을 후려치기도 하고, 물을 뿌리기도 하면서 잠을 깨워주었답니다.

그런데 정말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은 도심구간을 통과할 때입니다. 자동차가 좌우로 달리는 도심 구간에서 사고가 나서 넘어지면 자동차와 추돌하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심 구간에 진입하기 전에는 아이들이 정신 차릴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도심 구간을 달리기 전에 아이들에게 위험한 상황에 대하여 알려주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앞뒤 간격을 유지하라"고 당부를 합니다.

그런데 150여 명이나 되는 많은 아이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이렇게 주의를 줄 때도 듣는둥 마는둥 하는 아이들이 꼭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진행실무자들은 마음이 불안해 집니다.

"이 녀석들이 내 말을 잘 알아들었을까?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할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 끝에 가장 손쉽게 선택하는 방법은 바로 아이들에게 이른바 '기합'을 주는 것입니다.

YMCA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이기 때문에 대부분 청소년 인권문제 등에 관심이 높은 실무자들이 대부분이지만 아이들에게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의미로 "앉아! 일어서!"하는 단순 동작을 여러번 반복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겨우 두 세번 이었지만 아이들에게 기합을 주면서 우리가 지금 뭘하고 있나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을 체벌한다거나 하는 어리석은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눈 앞에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면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혼을 내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전을 위한 주의사항'을 전달하는데도 딴짓을 하고 진행자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때마다 아이들에게 이른바 기합(?)을 줘서 주의를 환기 시킬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 반복되었다는 겁니다.

 한국YMCA 자전거 국토순례
 한국YMCA 자전거 국토순례
ⓒ 이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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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합 안 줬으면 더 위험했을까?

실제로 아이들은 "앉아, 일어서"하는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하고 나면 당장 눈앞에서는 태도가 훨씬 달라지기는 합니다. 문제는 정말 아이들이 자전거를 탈 때 '주의사항'을 기억하면서 위험을 스스로 예방하면서 달릴 수 있는가하는 것인데 솔직히 이 부분은 별로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물론 소리를 지르고 기합을 주면 단기 효과는 분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합을 받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더 잘하게 되었다던지, 혹은 기합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더 위험한 상황에 많이 노출되었다던지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이들이 스스로 위험에 대비하고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만, 짧은 단기 프로그램에서 그런 변화를 끌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대집단인 경우에 더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실 7-8명 혹은 10명 이하의 모둠 아이들과 만날 때는 소리지르고, 기합을 주고 하는 것 보다 말로 설명하고 아이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좀 더 수월합니다. 그러나 150여 명의 아이들을 한꺼번에 모아놓고 '주의'를 촉구하고 안전을 당부할 때는 집중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앉아, 일어서"하는 동작을 10여차례 이상 반복하는 기합을 주고 나서도 과연 이 방법 밖에 없을까하는 고민이 생겼지만 당장 뾰족한 대안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말로만 청소년 인권을 떠들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고, 현실적으로 당장 이것 말고 다른 대안이 없다는 변명이 떠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청소년 시절에, 군대를 거치면서 이런 기합을 받은 경험이 많기 때문에 쉽게 자신의 경험을 반복하는 것이라는 고민은 안고 있습니다. 문제는 인식하고 있지만 마땅한 대안은 찾기 어려운 난감한 상황인겁니다.

분명한 것은 기합을 안 주고도 안전하게 자전거 국토순례를 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사실 정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청소년들을 어른처럼 대하면 됩니다. 참가자 중에는 어른들도 있었는데, 그들을 대하듯이 하면 되는 것이지요.

아직 어른처럼 존중 받는데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지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늘여주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나이라는 높은 숫자로 그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하는 것이지요.

앞으로 자전거 국토순례를 매년 진행해야 하고, 여러 장면에서 청소년들과 프로그램을 함께 하려면 이런 고민의 끈을 쉽게 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자전거#국토순례#인권#YM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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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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