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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앞두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가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아름다운가게 1호점을 방문해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앞두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가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아름다운가게 1호점을 방문해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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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앞두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가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아름다운가게 1호점을 방문해 함께 일했던 간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앞두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가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아름다운가게 1호점을 방문해 함께 일했던 간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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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님, 이제 가시면 지금 같은 관계가 힘들겠네요. 서울시장 되시면 저희도 변호사님 모르는 체 해야겠고…."

박병혁 '아름다운 가게' 되살림팀 팀장이 아쉬움을 짙게 드러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앞두고 시민사회 운동가의 옷을 곧 벗어야 할 박원순 변호사를 향한 것이었다. 정작 당사자인 박 변호사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쎄. 오히려 (선거운동 시작하려는)지금은 모르는 체 하고 만약에 내가 된다면... 같이 서울시를 '재활용의 도시'로 만들어봐야죠. 사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당시 '아름다운 가게'의 명예고문이었어요. 그때 제안했던 게 광화문부터 서울역까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싹 비워내고 벼룩시장을 여는 거였어요. 런던의 '브릭레인 마켓'처럼 서울에서도 벼룩시장이 열려서 시민들이 사고파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일 계속 해야죠?"

시민사회에서 현실정치로 발을 내딛는 순간에도 박 변호사의 '사회 창안'은 멈추지 않았다. '시민사회 운동가 박원순'과 '현실 정치인 박원순'이 면면히 이어질 것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앞서 그는 아름다운 재단을 들러 이사직 사임서를 제출하고 오는 길이었다. 박 변호사는 9일 오전 가회동 아름다운 재단, 안국동 아름다운 가게 1호점, 평창동 희망제작소를 차례로 방문하며, 오랫동안 인연을 맺었던 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이날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선거 모드에 돌입할 예정이다.

박 변호사와 함께 일했던 이들은 그의 새로운 도전을 따뜻하게 격려했다. 아름다운 재단 관계자들은 케이크와 장미꽃을 박 변호사에게 건네며 그를 껴안았고 아름다운 가게 관계자들은 그와 담소를 나누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은 그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나름의 작별 의식을 치렀다.

"늘 낯설고 때론 위험한 길 나서지만 마음만은 함께하겠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앞두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희망제작소에서 직원들의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윗옷을 벗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앞두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희망제작소에서 직원들의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윗옷을 벗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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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변호사는 이날 오전 아름다운 재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있듯이 가지 않은 길은 늘 낯설고 때론 위험하고 나중에는 후회도 하는 길인 것 같다"며 새로운 도전에 임하는 소감을 밝혔다.

또 "제가 이제 가는 길이 (지금까지의 길과) 다르지만 이 역시 세상을 좀 더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길이다"며 "후회도 많이 될 것 같지만 마음만은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덧붙였다.

"아름다운 가게와 같은 사회적 기업을 운영한 경험이 서울시정 운영에 도움이 되겠냐"는 질문에는 "그것을 하려고 (출마) 하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 시민단체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우리 사회에 나눔·기부 문화를 확산하는데 큰 기여를 한 아름다운 재단·가게 등과 같이 새로운 서울시정을 창안해보겠다는 의지였다. 

박 변호사는 "관료적 발상을 경계해야 한다, 기업적 발상이나 시민사회적 발상도 있어야 한다"며 "공공기관은 개인의 탐욕을 추구하지 않아야 하고, 기업도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닌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오히려 장수하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선배'로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아름다운 가게의 신입 간사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일을 해보니 누구나 3~5년이 지나면 유능해져서 옆에서 간섭할 필요가 없더라"며 "항상 저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사람 간의 팀워크, 사업의 패러다임,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고 해왔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가게의 공정무역 커피 '아름다운 커피'를 맡고 있는 한수정 무역사업부 국장을 향해서는 "이제 아름다운 커피도 독립해야죠"라며 새로운 도전을 독려했다.

"저는 처음 만드는 것, 도전하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막상 어디 완성된 기업에서는 뭘 못할 것 같아. (웃음) 창립하고 개척하는 일이 좋아요. 이 길도 잘 모르는 길이긴 한데. 주변에서 겁을 많이 줘요. 이성이 통하지 않는 곳이라고, 특히 선거기간에는 더 그렇다고. (웃음) 하지만 이제 가지 않았던 길에 또 도전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정치의 길을 만들어야죠."

'걱정 반 기대 반' 친정 식구들 "잘 하실 거라 믿는다"

서울 종로구 희망제작소 박원순 변호사의 집무실에 '희망의 문'이 따로 설치되어 있다.
 서울 종로구 희망제작소 박원순 변호사의 집무실에 '희망의 문'이 따로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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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앞두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희망제작소에서 자신의 집무실에 따로 설치된 '희망의 문'을 공개하며 문 뒤에 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희망은 자기 자신이고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날 희망제작소 직원들이 백두대간 종주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박 변호사의 무사귀환을 환영하며 '희망의 문' 뒤에 있는 거울에 응원의 글들을 붙여 놓아 깜짝 선물을 선사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앞두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희망제작소에서 자신의 집무실에 따로 설치된 '희망의 문'을 공개하며 문 뒤에 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희망은 자기 자신이고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날 희망제작소 직원들이 백두대간 종주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박 변호사의 무사귀환을 환영하며 '희망의 문' 뒤에 있는 거울에 응원의 글들을 붙여 놓아 깜짝 선물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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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운동가로서 산 지난 17년은 결코 적지 않은 무게인 듯했다. 그는 희망제작소를 방문해서는 한동안 자신의 사무실을 떠나지 못했다.

1000만 원씩 모아 기부하는 '1004 클럽' 회원들의 사진을 쓸어보기도 하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전달했던 '지하철 혁신 프로젝트' 파일이나 고양시의 로드맵을 컨설팅했던 자료책자 등을 들춰보며 희망제작소의 지난 성과들을 설명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이제 그만하시고 직원들과 인사 나누라"고 만류한 뒤에야 그의 발걸음은 떨어졌다.

평소 익숙하게 하던 일들도 어색해졌다.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은 신입회원들을 위해 매달 한 번씩 '김치찌개 데이'를 열어 식사를 대접하듯, 앞치마를 둘러매고 이날 점심식사 메뉴인 김치찌개의 간을 보는 박 변호사를 향해 "어색해보인다", "쑥스러워 하는 것 같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앞두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희망제작소에서 직원들을 위해 국자를 들고 직접 김치찌게 떠주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앞두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희망제작소에서 직원들을 위해 국자를 들고 직접 김치찌게 떠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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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울시장을) 시켜만 주신다면 시청 직원들이나 시민들과도 이런 자리를 갖고 싶다"며 "매달 한 번씩 김치찌개 데이를 열어 새로 (희망제작소에) 가입하신 분들께 식사를 대접하는데 이처럼 같이 밥 먹는다는 게, 한솥밥 문화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라고 말했다.

한편, 박 변호사의 '친정 식구'들은 그의 새로운 도전에 걱정과 함께 기대를 드러냈다. 정병혁 팀장은 "잘 하실 것이라 생각하지만 정치권이란 워낙 험한 곳에 가셔서 상처를 입을까 걱정도 된다"며 "워낙 강직하시고 (시민사회에서) 난관을 잘 헤쳐오신 것만큼 그곳에서도 잘 하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름다운 가게를 처음 열 때도 우리 활동가들에게 '2004 비전'이란 메모지를 주시며 꿈과 비전을 보여주셨다"며 "그처럼 서울시민들의 꿈과 비전 역시 세워주실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광민 '아름다운 가게' 홍보팀 간사도 "그동안 마음 아픈 일 있을까 걱정도 되고 더 큰 일을 해내실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며 "오늘 직접 뵈니 (서울시장에 대한) 의지도 엿보인다, 잘 헤쳐나가시라 믿는다"고 말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서울시장 출마해야"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앞두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의 낡은 구두가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아름다운가게 1호점에 박 변호사가 방문해 선물 받은 구두를 취재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앞두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의 낡은 구두가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아름다운가게 1호점에 박 변호사가 방문해 선물 받은 구두를 취재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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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변호사의 9일 공식 일정은 희망제작소 연구원과의 점심식사로 끝났다. 그는 추석 연휴 동안 시민사회 각계 원로들을 만나 서울시장 출마에 대한 고민을 나눈 뒤 공식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이다.

박 변호사는 "두렵거나 외로울 수도 있지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지 않겠나"라며 "공공의 영역과 비영리민간단체의 영역은 하나로 연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추석 연휴 동안 선거 체제 정비를 서두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출마해야 이번 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박 변호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시민사회를 떠나면서 나름의 소회가 있다면.
"사람에게는 누구나 인생의 단계가 있고 전기가 있다. 저는 인권변호사로 살았던 게 인생의 1막이라면 시민운동, 아름다운 가게나 희망제작소와 같은 비영리민간단체 활동이 인생의 2막이었다. 이제 50대 중반에 들어 인생의 3막을 시작하게 됐다. 이 길 역시 1막과 2막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두렵기도 할 것 같고 외롭기도 할 것 같다.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새로운 길은, 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또 저는 늘 새로운 길에서 용기를 얻었다. 이제 (이 길을) 가야 하지 않겠나."

- 시민사회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나.
"시민사회, 비영리민간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참 힘든 상황에서 일하고 있다. 다만, 이들이 좀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견디고 감수한다고 생각한다. 제가 지금 NGO의 세계를 떠나고 있지만 공공의 영역과 비영리단체의 영역이 결코 따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나로 연결될 수 있고 그래야 우리 사회가 또 다른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떠나면서 생길 '작은 빈 자리' 채워주고 우리 시민사회가 늘 건강하게 남아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여전히 발전하고 더 번성하는 시민사회가 됐으면 한다."

- 모든 야권후보를 모아서 한 번에 단일후보를 선출하는 '통합 경선'은 무산됐다. 앞으로 단일화를 위한 룰 미팅도 가져야 할 텐데. 논의해본 바 있나.
"아직 구체적인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야당과 '혁신과 통합'이 관련해 논의를 하고 있는데 아직 우리는 만나보지도 않은 상황이니깐. 앞으로 논의해야죠."

-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출마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어떻게 보나.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나오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야권 단일후보 경선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떨어질 것 같다."

- 추석 연휴 기간 내에 특별한 일정 계획하고 있나. 선거캠프를 꾸릴 수도 있나.
"사실 제가 산에서 내려온 지 4일 정도 지났다. 내려와서 안철수 원장과 만나고…. 지금 정신이 없다. (웃음) 추석 연휴 기간을 통해서 좀 더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시장 선거가 단순한 선거도 아니고. 돕겠다는 분은 많은데 어느 자리로 모실지 고민이 된다."

- 조세현 사진작가가 트위터로 공개한 '헌 구두'가 화제가 되고 있다. 오늘도 그 구두를 신고 나왔나.
"아니다. 오늘은 새 구두를 신고 나왔다. 가죽재단을 하시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이 단골제화점에서 하나 사서 보내주셨다. 사실 이 분만이 아니라, 그 사진을 보고 '신발 하나 사주시겠다'는 분들이 너무 많다. 지금도 구두가 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런 사진이 찍혔는지도 몰랐다. 선거에 나서려 하다 보니 사진도 필요하고 해서 아는 분의 소개로 조 작가를 지난 6일쯤 만났는데 그 때 찍힌 것 같다. 제가 본래 좀 험하게 (신발을) 신고 다닌다."


태그:#박원순, #10.26 재보선,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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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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