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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나 정부에서 이것저것 해달라는 게 너무 많아요. 기존에 형식적인 행사들이 없어지기는 커녕 더 늘어났으며, 명칭만 변경하여 수업의 파행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툭하면 감사 지적사항이라고 말하며 해야 된다고 하고, 나중에 실적 보고니 학교평가니 하며 해야 한다고 하고.... 뭐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교육과정을 무슨 떡 주무르듯이 하지 말고 충분한 고민과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개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교육현장의 현실을 무시한 개정이며, 전인교육을 원천적으로 무시한 개정이라 생각해요."

2009 개정 교육과정은 창의적 체험활동을 통한 인성교육을 강조하고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권을 확대하여 다양한 교육을 유도하며 학생 스스로 자신의 진로에 따른 교육을 선택하게 하는 등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럼에도 개정된 교육과정은 심각하고 치명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

자주 바뀌는 교육과정... 현장 교사는 참담하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이 장관이 주도해 마련했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이 장관이 주도해 마련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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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학교와 교사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를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교육과정은 5년을 준비하고 5년을 운영해 왔다. 왜냐하면 교육과정의 개정에는 교육철학과 시대정신의 반영, 교원 수급대책, 교과서 제작, 현장교사에 대한 충분한 이해,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한 학교 환경의 개선 등 모든 것들이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4년 사이에 운영되는 교육과정만도 '7차 교육과정' '2007 개정 교육과정' '2009 개정 교육과정'이 뒤섞여 운영되고 있고, 2009 개정 교육과정은 아직도 개정 중이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자주 바뀌다 보니, 이들 교육과정이 혼재된 상태로 운영되어 교사들조차 헷갈리기 일쑤다. 그러니 교사, 학생, 학교가 모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수습은커녕 폭주를 계속하고 있다. 마치 4대강 사업을 연상시킨다.

둘째는, 소통의 문제이다. 교육과정 개정작업에서 그동안 쌓아온 대부분의 학문적 성과나 교육과정을 운영한 학교 현장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집중이수제나 학기당 8개 이수과목의 제한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는 학교 현장이 더 잘 안다. 현장 교사들은 끊임없이 "이로 인해 교육과정의 편성이 입시에 유리한 국영수 과목으로 편중되어 교육과정의 파괴를 초래하고, 또 학생들의 학습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을 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주장을 마치 개혁을 거부하는 집단이기주의로 몰아왔다. 2009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지금 학생들은 지나친 학습부담으로 국영수 과목에 대해 저항감을 보이고 교사들은 이로 인해 모든 배움에 대한 저항으로 확대될까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셋째는, 전인교육을 위해 도입된 창의적 체험활동이 교육의 본질과 가치를 파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전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인성 함양을 위해 도입된 봉사활동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학교 교사들은 잘 알고 있다. 봉사활동이 학년 당 20시간 이상 하도록 하고 이것이 입시에 반영되면서 학생들에게 봉사활동은 부모가 대신 만들어 오는 것으로, 봉사활동은 아주 귀찮고 성가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했다.

학생을 키워 본 학부모들은 다 알 것이다. 잘못된 정책이 학생들에게 어떤 가치관을 갖게 하는지 정책입안자들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교육은 인공구조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인간의 인격과 품성을 가꾸어 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에 대한 배려'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009 개정 교육과정 Ⅰ장, 2절 '교육과정 구성의 방침'을 보면, 첫 번째가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창의적인 인재를 기를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구성한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배려와 나눔이란 당연히 인간에 대한 배려와 나눔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담기지 않은 배려와 나눔은 가진 자의 시혜일 뿐이다. 어쩌면 이것이 이 교육과정을 만든 교육 관료와 이 정부의 진심일지 모르겠다. 도서 지역의 한 교사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부터라도 교육 현장의 목소리 들어라"

"저희 학교는 도덕 선생님과 음악 선생님 두 분이 다른 학교로 겸임을 나가십니다. 그런데 집중이수제로 한 학기는 겸임을 주당 두 번 나가야 할 형편입니다. 저희는 전남의 섬에 있는 분교장이어서 주당 두 번을 가야 하는 것이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 학교가 있는 섬에서 다른 섬으로 겸임을 나가는데, 가는 데 배를 두 번 갈아타야 하고, 그 섬에 도착해서도 택시로 십분 이상을 들어가야 학교가 있습니다. 이렇게 교통이 불편한데 하루에 네 번 배를 타고 이동하는 일을 주에 두 번씩 하고 나면 녹초가 되어 다음날은 수업에 지장이 많다고 합니다.

두 번 가지 않으려면 그 섬에 가서 숙박을 하고 와야 하는데 그것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집중이수제를 하지 않을 때는 주당 한 번이어서 그나마 참고 해왔는데 지금은 너무 힘들어합니다. 집중이수제로 음악 선생님은 1학기엔 두 번, 2학기엔 한 번을 가야 하고, 도덕 선생님은 반대로 1학기에 한 번, 2학기엔 두 번씩 다른 섬으로 겸임을 가야 합니다."

기존의 축적된 연구 자료와 전문 연구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교육에 대한 신념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만으로 교육현장을 수십 년 지켜온 대다수 교사들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짓밟아 버렸다.

뿐만 아니다. 몇 년씩 심사숙고하며 만들어 놓은 교과서를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폐기해야 하는 교과서 집필자들과 제작자들의 마음의 상처 앞에서 배려와 나눔을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그것도 이해한다고 하자. 새로운 교과서를 개발해야 하는 집필자들과 출판사들의 사정을 생각하면 불과 3개월 만에 뚝딱 만들어내야 하는 참담함을 배려와 나눔이라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교육과정을 실행하고 교육과정 속에 담긴 뜻을 학생들에게 올바로 전달해야 할 도구와 사람은 결국 교과서와 교사이다. 이들을 모두 소외시키고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힌 채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고 교육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아주 무책임하거나 아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라도 정부는 타오르는 용광로에 기름을 끼얹지 말고 교육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재까지 교육현장에서 축적된 결과와 연구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고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교육과정에 반영할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하여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드러난 문제점을 해소하는 데 주력하고, 교육과정 개정과 교과서 교체 추진을 더 이상 밀어붙이지 말아야 한다. 아집을 버리고 모두의 지혜를 모아 최선의 정책을 찾는 것만이 정부가 좋아하는 윈윈(win-win)하는 길이 될 것이다.


#교육과정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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