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명절이 지나간다. 명절 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무색할 정도로 저녁 바람이 썰렁하다. 이제 가을이다.
스물 넷, 계절로 치면 아직 초여름. 신록도 오르지 않은 새파란, 싯푸른 젊음이 내게는 있다. 나는 그것만 믿고 잠시 학교를 쉬기로 했다. 그렇게 벼르던 휴학이었다. 휴학의 이유를 묻는 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내 의지대로 한 번 쉬어보고 싶어서."
자의식이란 게 제대로 갖추어지기 전부터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 이전보다는 훨씬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까짓 수업 들어가지 않아도 뭐라고 할 사람 없었고 그것에 대해 알아서 책임지면 되는 대학 생활이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 같은 대학의 공기는 견디기 힘들었다. 멈추는 것 자체가 두려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내 삶에 의미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삶의 중심에 어떤 가치를 두어야 하는지와 같은 물음을 던질 틈이 없었다.
더 깊이 있게 고민하고, '학기', '시간표' 같은 것들과 무관한 나만의 리듬을 찾고 싶었다. 거의 매번, 어설픈 자유와 강제된 타율 사이에서 생겨나는 갈등을 조절하다 보면 한 학기가 끝나곤 했다. 학점, 영어, 취업? 아주 신경을 안 쓸 수도 없고, 또 그것만 신경쓰기에는 내 삶이 너무 황폐해질 것 같아 아슬아슬 줄을 타는 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학기만 쉬어보자는 생각에 마침내 휴학을 결정했다.
지난 여름, 나는 마침내 휴학을 하겠다는 의지를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부모님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길게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한 번 해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솔직히 혼이 나거나 말다툼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내 일방적인(?) 휴학 선언 이후로 아버지는 가끔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오시곤 했다.
"휴학, 그거 왜 하는데? 얘기 해봐, 응?"
남들 다 하는 휴학이라고 믿었지만 선택하고 보니 나 혼자만 휴학생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평소엔 내색하지 않으시다가 가끔 저렇게 불만 혹은 공유된 불안을 술김에 털어놓으시는 아버지께, 그리고 역시 별 말 없이 내 선택을 지지하고 계시지만 아버지와 심정이 별로 다르지 않으실 어머니께 미안해진다.
같이 자취를 하는 형에게,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내려가는 대신 서울에 남아 있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대뜸 "미쳤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말이었겠지만 속으로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 내가 미쳤지. 1년에 몇 번 가는 집이라고 명절에마저 안 내려가면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 하더라도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괜한 자격지심이다. 용돈 받아 생활하는 휴학생 처지에 집구석에 무슨 낯짝으로 들어가랴. 하지만 그 핑계로 명절마저 가족들을 찾아뵙지 않는 건 못할 일이라는 건 생각지 못했는데, 이럴 때면 형이 형답게 느껴진다.
한 번도 궤도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삶을 살다가, 혼자서 롤러코스터에서 내린 것만 같아 가끔 멀리서 들려오는 괴성에 고개를 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밑이 꺼질 것 같은 불안감에 다시 고개를 숙인다. 나는, 이래도 괜찮은 걸까? 모두가 달려가고 있는데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멍청히 서 있어도 괜찮을 걸까?
M의 이야기
내 친구 M은 뮤지션이다. 중학교 때부터 밴드를 하고, 곡을 쓰고 그리고 그 길로 가겠다고 결심했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과 퍽도 많이 다투었다. 옆에서 불구경하는 처지밖에 안되는 나로선 자세한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난데없이 음악을 하겠다고 나서는 딸자식을 부모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다툼도 많았지만 이젠 부모님의 이해를 얻어 집에 있는 작은 방 하나를 작업실로 삼고 작곡, 반주, 믹싱까지 해내고 있다.
M에게 명절은 반가운 한편으로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조마조마한 시기다. 이번 추석도 그렇게 조용히 넘어가지는 못했다. 큰집 가는 길 차 안에서 어머니와 작은 말다툼이 생겼고, 그 말다툼의 와중에 과거 쌓였던 것들까지 쏟아져 나온다.
"너는 애가 어쩜 그렇게 나를 무시하니?"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말대꾸하지 말고 일단 가만히 들으라며 눈치 주는 아버지. 늘 있던 일이지만 이번에는 견디기 힘들다. 내 친구는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음악 작업을 할 때면 본의 아니게 약간은 사무적이 되고 만다는 M. 어머니가 뭔가 부탁이라도 할라치면 잠깐 기다려 달라고 말하곤 했는데 어머니는 그게 그렇게나 섭섭했다고. 하지만 이쪽도 이녁만큼 섭섭하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조금 있다가 해 주겠다는 약속을 한 번도 어긴 적 없이 자정까지 해야 하는 일이면 한 치 어김도 없이 어머니 부탁대로 시간 맞추어 해 드리고, 빠진 것 없이 챙겨드렸건만 사소한 말다툼 속에서 그동안의 쌓여온 감정의 결이 묻어나오는 건 꼭 어떤 사건, 특정한 감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M도 알고 있다. 부모님과의 관계속에서 자기 길을 걷는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이해를 받기 시작한 이제는 그래서 조금 홀가분해질 수 있는 여유 속에서 뮤지션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다. M에게 명절은 그렇게 조용하지만은 않게, 하지만 갈등 속에서 또 새로운 이해가 피어나는 가운데 지나간다.
형의 이야기
20년 전만 하더라도 노총각 소리를 듣고 남을 스물아홉 살, 우리 형은 이미 진행된 탈모로 인해 액면가는 이미 30대에 도달한 공대 대학원생이다. 점점 늦어지는 평균 결혼연령은 아직까지는 그에게 솔로로 남을 자격을 허하고 있으나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연구실에서 나오는 용돈으로 근근히 생활을 이어나가는 형에게 9·10월은 악몽과도 같은 달이다.
"무슨 결혼들을 이렇게나 많이 해."
하긴 올봄에도 주말만 되면 집을 나가는 형에게 어디 가느냐고 물으면 유독 "결혼식"이라는 답변이 자주 돌아왔다. 그리고 가을, 어김없이 혼사가 잦은 철이 찾아오니 돈 떨어진 지갑에서 낙엽이 흩날릴 지경이다.
방학도 없이 연구실에서 여름을 보내고, 설 이후로 거의 반년 만에 찾아온 집. 반가움과 울먹임이 뒤섞인 할머니의 마중 인사 뒤에 이어지는 건 가까운 친척의 결혼 소식이다.
"아이고, 이제 오나. 세현이가 올 가실게(가을에) 결혼한단다 야."
아파트 계단참으로 신발도 안 신고 뛰어오시는 걸 보면 우릴 몹시도 기다리신 게 분명한데, 그것만큼이나 형의 결혼소식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 같아 형은 몹시도 불안해했다.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세현이는 6촌형이다. 지난주 벌초하러 내려왔던 당숙 아저씨가 혼사를 알려왔다. 옆에서 보는 처지인 나로서는 이 상황이 시트콤보다 더 웃기지만 본인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언제 결혼하느냐며 주변에서 부추기는 이야기가 나오면 농담처럼 넘기는 듯 보이다가도 막상 주변에서 진짜로 결혼 소식이 들려오면 표정이 진지해진다.
결혼 말고도 고민 거리는 있다. 취직과 유학, 어느 쪽이나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하루에도 열두번 마음이 바뀌는지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린다.
"미국 갈 수 있을까? 다음 주 토플 시험인데?"
"나 취업해도 너 용돈 안 준다."
그래도 형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또 옆에서 지켜보는 나 역시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혀를 차줄 밖에. 형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새 글이 올라왔다. 인생 그래프를 무작위로 그려주는 어플리케이션이 있는데, 들쭉날쭉 이상한 그림이 나온 모양이었다.
'에잇, 인생의 굴곡표, 내가 만들어 가겠어! 짜증나서 지워버렸어.'
나는 거기에 이렇게 댓글을 단다.
'결혼부터 하십시오...'
보름달을 보고 싶다
이번 한가윗날은 비가 얄미웠다. 비옷을 입은 채로 엉거주춤 성묘를 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날이 개었다. 가족들이 모여 묘를 둘러보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이야 그대로였지만, 축축한 옷을 털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반짝 돋아난 해를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낮엔 그렇던 것이, 밤에는 또 구름이 끼어 보름달 구경을 할 수 없었다. 친척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자 집이 텅 비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정신없이 지나가버린 연휴, 이제 서울로 돌아가면 또 이 마음 추슬러 한 철 나야겠지. 이번 가을은 '학기'가 아니라 온전히 내 시간이 될 텐데, 괜히 머리 굴리지 말고 온몸으로 부딪히는 법을 터득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연휴 마지막 날 새벽, 서울로 올라오는 친척 큰형님의 차를 얻어 타고 도둑처럼 고향을 빠져나온다. 차에 타기 직전 할머니는 있는 돈 없는 돈, 그 동안 챙겨두었던 배춧잎 탈탈 털어 형과 나에게 찔러주신다. 받지 않으려고 하면 오히려 성을 내시는 탓에 정말 어쩔 수 없이 뒷주머니에 넣는다.
자취방으로 돌아와 창밖을 본다. 여전히 구름이 끼어 있지만 보름달 빛이 희부옇게 그 뒤편에서 새어나온다. 나는 가만히 손을 들어 달을 가리켜 본다. 보름달을 보고 싶다. 구름이 걷히면, 이 어둠도 잠시나마 사라지겠지. 불안과 두려움, 걱정 그리고 아쉬움 모두 그 달이 환히 비추어주겠지.
오늘은 또 오랜만에, 형이랑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려야겠다. 달빛을 받으면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내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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