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일깨우고 있는 바다. 세계 패권을 쥐고 있는 나라들도 그 때문에 과거사를 정리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웃 나라들도 견주어 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오늘날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나라도 예외이지 않을 것이다.
'제국'하면 떠오르는 나라들이 몇이나 될까?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그리고 로마 정도가 아닐까? 바벨론 제국이야 헤로도토스의<역사>에도 곧잘 등장하고, 페르시아는 '살라미스 해전'을 떠올리게 하고, 헬라 제국은 알렉산더 대왕과 그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를 생각나게 하고, 로마는 '팍스 로마나'를 떠올리게 하는 제국들이다.
조병호의 <성경과 5대제국>은 그 네 나라에다 '앗수르'를 하나 더한 5대 제국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그야말로 각 제국의 탄생에서부터 멸망하기까지,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읽는 '통(通)역사 개관'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성경에 등장하는 5대 제국을 그리고 있기에 일반인들 시각과 약간 차이가 날 수 있다.
"5대 제국을 정리하면서 작은 민족이 민족주의로 나가고, 제국주의를 꿈꾸며, 제국으로까지 가면 제국의 최고 통치자는 결국 교만해져 스스로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속성을 자기의 것인 양 착각을 하는 것이지요. 결국 제국은 '제국이여 영원하라'는 구호를 외치나, 오히려 모두 하나같이 다 멸망했습니다."(들어가면서)그는 성경 속에 등장하는 '애굽', 다시 말해 이집트를 제국으로 보지 않는다. 사실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을 받은 나라답게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400년 간 노예로 삼았고, 앗수르와 패권을 다투었고, 변방 나라들을 손아귀에 넣고 흔들어대던 나라였다. 그런 이집트를 제국으로 칭하기엔 2%가 부족하다고 하는 뜻이 무엇일까?
"애굽이 가진 제국에 대한 야망은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았으나,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때에 '홍해'에 무기들과 장군들이 수장되면서 제국 수립에 대한 야망을 일단 접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 유다의 요시야 왕 때에 애굽의 바로 느고 왕이 다시 한 번 제국의 야망을 불살랐으나 오히려 바벨론에게 통째로 나라를 빼앗기고 마는 신세가 되었지요."(18쪽)
그가 본격적으로 제국을 다루기 시작한 나라를 '앗수르' 곧 앗시리아다. 물론 앗수르는 헤로도토스의<역사>에도 그 언급이 있을 정도지만, 일반 사람들과 성경의 회의론자들은 앗수르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않을 정도다. 적어도 실제 왕국의 도읍지였던 '니네베(니느웨)'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국의 고고학자 레이어드가 1846년부터 7년 동안 앗수르의 수도인 니네베를 발굴하여 그 실체를 밝혀낸 뒤에야, 비로소 그 존재감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병호 박사는 앗수르 제국에 대한 경영 키워드를 '경계'에서 찾고 있다. 앗수르는 정복한 이웃 나라들의 민족 경계를 무너뜨려 혼혈족들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각 민족의 독특성을 소멸시킴으로서 반란의 근원을 없애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영원할 것 같은 앗수르 제국도 뜻하지 않는 홍수의 범람으로 B.C.609년에 그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실로 '자연에 대한 경계'는 소홀히 했던 탓일까?
조병호 박사는 앗수르의 경영 키워드를 '경계'에서 찾았다면, 바벨론 제국은 '교육'에서, 헬라 제국은 '숫자'에서, 페르시아 제국은 '융합'에서 그리고 로마 제국은 '관용'에서 각각의 키워드를 뽑아낸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인간 마음대로, 제국의 마음대로만 된다면, 어느 제국인들 영구 통치를 못하겠는가?
그 때문에 그는 다윗이 구사한 통치기반을 이룩할 때에만 태평성대가 가능하다고 평가한다. 이른바 법치에 기반을 둔 통치체제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집트의 무바라크처럼 대화없는 일방적인 소통방식으로도, 헬라제국처럼 3S문화정책의 융합통치술로도, 로마의 귀족중심을 위한 관용기술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오직 법아래 만인이 평등할 때에만 그 나라가 영원하다는 뜻이다.
한편 <성경과 고대전쟁>은 고대 제국의 왕들이 전쟁을 통해 어떻게 세계질서를 유지했는지, 역사적 관점에서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성경과 5대제국>이 보다 큰 담론으로 숲의 관점이었다면,<성경과 고대전쟁>은 숲 속의 나무를 보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두 권의 책은 함께 보는 게 역사 지식은 물론이고, 성경 지식을 쌓는 데도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을 꼬집어 주는 게 있다. 이른바 창세기 14장에서 이미 앗수르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아시아 여러 도시국가들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싸움은 창세기의 앗수르 제국에서부터 페르시아 제국 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 '오빌의 금'이란 바로 '인도의 금'에 해당하는 것으로 당대의 '두로' 즉 페니키아가 인도까지 영역을 뻗쳐나갔다는 게 그것이다.
"가끔 일본 우파 사람들이 일제 강점기 36년을 '조선의 근대화를 이룩해 준 시기'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제국들은 이렇게 제국 스스로 지배 질서 논리를 강변합니다. 일찍이 성경 속 제국들에 의한 세계 질서 유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앗수르 제국 중심의 질서가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평화라고 여겼습니다.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들 역시 그들 중심으로 세계질서를 개편하고 좋아했었습니다."(2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