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산, 그 중에서도 안흥산 꽃게는요, 배에 왕(王)자가 선명하고 껍질이 단단하며 청록색의 윤기가 흐르는 게 특징이에유. 특히 알이 붉은색이며 등 아랫부분에 특유의 반점이 오밀조밀하게 몰려 있고, 살이 꽉 들어찬 게 왔따유. 다른 꽃게와는 눈으루 봐두 금방 구별할 수 있시유. 싱싱한 안흥산 꽃게 많이 애용해 주세유~."
충남 태안반도의 꽃게 집산지 신진도 수산물시장. '뉴태안수산'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수산물 위판업을 하는 정능영씨가 안흥산 꽃게 자랑을 늘어놓는다.
전어, 대하와 함께 가을철 대표 수산물로 손꼽히는 꽃게가 최근 하루에 4~10톤씩 위판되고 있을 정도로 풍어다. 꽃게 조업을 나서기 위해 통발과 그물을 손질하는 어민들은 눈코뜰새 없이 바쁘지만 얼굴은 함박웃음으로 가득하다.
안흥위판장 인근 '패킹' 작업장에서도 장시간 꽃게의 싱싱함을 유지해주는 톱밥을 넣은 상자에 3kg단위로 꽃게를 포장하느라 굵은 땀방울이 식을 겨를이 없다.
태안 안흥꽃게가 왔다... "살이 꽉 찬 게 왔다유~~"지난달 15일 꽃게 금어기가 풀린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조업에 나선 꽃게잡이 어선들은 만선의 부푼 기대를 안고 이른 새벽부터 한달째 조업에 나서고 있다. 한 번 출항하면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두달에 이르기까지 출렁거리는 파도와 싸우며 꽃게잡이에 나서고 있어 피곤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만선의 깃발을 올리고 당당하게 개선하는 그날을 꿈꾸는 어민들의 얼굴에서 피곤함은 찾아볼 수 없다.
태안군 근흥면 안흥외항(신진도항)에서 50년째 꽃게잡이를 하는 어부 김복진(70)씨는 "요즘 같이만 잡히면 살만할 것 같다"며 한 손으로 땀을 훔쳤다. 이어 그는 "요즘 안흥산 꽃게는 살이 꽉 들어차 무쳐서 회로 먹어도 달달허니 좋다. 암게보다 수게가 좋아 쪄서 먹어도 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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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게의 왕 ‘나는 안흥 꽃게다’ 꽃게잡이 작업선을 타고 자망으로 꽃게를 잡는 어민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이제는 기계화로 인해 어민들의 고충이 많이 줄긴 했지만 그물에서 꽃게를 분리하는 작업만큼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잡은 꽃게는 안흥위판장에서 경매를 통해 수산물시장 위판업소에 넘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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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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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의 고장답게 어두운 밤거리를 환하게 비추는 가로등에도 꽃게 캐릭터가 활짝 웃고 있다. 꽃게 집산지 신진도항 어민들을 따라가 봤다.
매일 변화하는 물때에 따라 출항하는 탓에 작업시간은 다르지만 이른 새벽부터 꽃게잡이 어선들은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작업준비에 들어간다. 새벽 6시, 초가을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꽃게잡이 어선들이 즐비한 신진항에는 아직도 어둠이 깔려 있다.
어느덧 출항준비를 마치고 어민들은 힘찬 뱃고동소리와 함께 바다로 항해를 시작한다. 출렁이는 파도를 따라 한참을 이동한 곳에 미리 설치한 그물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부표가 나타난다. 어민들은 기대반 설렘반으로 힘차게 그물을 걷어 올릴 기계를 돌린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올라오는 그물에 제법 묵직해 보이는 꽃게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배 위로 건져 올린 꽃게는 다시 어민들의 정성어린 손길로 한 마리씩 그물에서 떨어져 미리 준비해 둔 박스에 뒤섞인다.
꽃게는 비단 자망(일명 걸그물)에 의해서만 잡히는 게 아니다. 어민들이 금어기 전 정성껏 손질해 둔 통발로도 꽃게를 잡아 올리는데 통발로 잡아 올린 꽃게는 자망으로 잡힌 꽃게보다 상품가치가 떨어진단다. 살이 꽉 들어차지 않은 일명 '뻥게'라는 말이다. 통발에 걸린 꽃게는 스트레스로 인해 살이 빠져 자망으로 잡은 꽃게에 비해 가벼워 상품 가치가 없다는 게 어민들의 설명이다. 이런 탓에 '뻥게'는 대개 찜이나 무침보다는 진한 국물맛을 내는 꽃게탕 거리로 주로 사용한단다.
하여 가격도 자망(일명 걸그물)으로 잡아올리는 꽃게에 비해 2분의1 수준밖에 안 된다. 실제로 추석연휴를 마치고 본격적인 꽃게잡이가 시작된 15일 기준으로 신진항에서는 통발로 잡아올린 꽃게는 킬로그램 당 4800원 선에, 자망으로 잡아올린 꽃게는 킬로그램 당 8500원에서 9500원 선에 경매가가 책정되기도 했다.
활기를 되찾은 안흥위판장 경매현장
대개의 대형 꽃게잡이 작업선(40~50톤급)은 꽃게철에 한 번 출항하면 길면 두 달에서 짧게는 한 달 동안 바다에서 조업한다. 작은 작업선도 길게는 10일에서 짧게는 일주일 정도 입항하지 않고 연신 꽃게조업에 매달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하루 네 차례 진행되는 경매에 어획한 꽃게를 팔기 위해 일명 고도리선(운반선)을 이용해 바다 어획 현장에서 직접 넘기는 게 대부분이다. 요즘처럼 꽃게 풍어기에는 평소의 5배가 넘는 10척 이상의 운반선이 태안 앞바다를 누비며 어민들이 땀흘려 잡은 꽃게를 부지런히 위판장으로 실어 나른다.
낮 12시 안흥위판장 경매현장. 손가락을 쥐락펴락하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계어'로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경매사의 말에 위판장 상인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상품의 꽃게가 다른 상인의 손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여 옷깃 사이로 집어 넣은 손가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지만 연신 쥐락펴락하며 경매사의 음성에 따라 경매를 진행한다.
안흥위판장에서는 통발 꽃게와 자망 꽃게, 그리고 무게와 크기 등으로 나누어 등급별로 꽃게를 분류해 놓고 오전 9시와 낮 12시, 오후 3시와 6시 등 하루 네 차례 경매를 진행한다. 그런데 정해진 시간마다 열리는 경매에서도 경매에 참여하는 물량에 따라 가격이 변화무쌍하다. 이런 탓에 꽃게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아니 하루에도 수차례씩 오르락내리락한다.
한마디로 꽃게를 사려는 소비자들은 운이 좋으면 싼 가격에 싱싱한 꽃게를 구입할 수 있고, 운이 나쁘면 큰 가격차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비싼 가격에 꽃게를 구입하게 된다. 상인들 역시 수시로 변하는 가격에 따라 울고 웃는다.
최근 금어기 해제 이후 한 달여(8.16~9.13) 동안 충남 수협을 통해 위판된 가을 꽃게는 모두 160톤이다. 올해는 47톤이 위판된 신진항보다 대하로 잘 알려진 안면도 백사장항에 107톤이 위판됐다. 태안 남면 마검포항에서도 5.4톤이 잡혔다.
특히, 추석연휴를 마친 15일에는 꽃게집산지 신진항에 꽃게잡이 조업선 여러 척이 입항해 절정을 이루었다. 경매가도 전날인 14일보다 3000~4000원이 내린 8500백 원선(자망 기준)에 거래됐다.
태안 근흥면 채석포에서 꽃게잡이를 하며 신진항 위판에도 참여하고 있다는 박아무개(52)씨는 "올해 태안 꽃게 어획량은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다소 줄었지만 최근 3년간 꽃게 생산량이 워낙 좋아 기대를 하고 있다"며 "날씨가 조금 더 선선해지면 살이 통통히 차고 껍데기가 단단해 더욱 인기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꽃게의 '王' 안흥산 꽃게, 찜·탕·무침·게장 등 시식법도 다양자! 이제 안흥산 꽃게를 구입했으니 맛의 세계로 흠뻑 빠져보자. 청정해역 태안 앞바다 인근에서 잡힌 안흥산 가을꽃게는 본격 조업철인 10월 하순까지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시식법으로 꽃게 특유의 맛을 즐길 수 있다.
꽃게는 독특한 '단맛'을 내는데 특히 가을 꽃게는 단맛이 더해 안흥꽃게만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꽃게음식하면 봄, 가을 가릴 것 없이 뭐니뭐니해도 밥도둑 '꽃게장'을 들 수 있다. 꽃게장은 바로 잡아올린 싱싱한 꽃게를 미리 준비해 둔 끓인 간장과 사이다를 1대1의 비율로 섞은 재료에 술과 생강, 마늘, 고추, 파 등을 넣고 3일 정도 담가두면 완성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밥에 알이 꽉 들어찬 꽃게장 하나만 있으면 한끼 식사로 그만이다. 특히, 게딱지에 밥을 비벼 먹는 맛은 그 어떤 산해진미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이 계절의 별미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게국지 끓이는 법 |
전통게장은 10월부터 꽃게를 담그면서 시작된다. 끓여서 식힌 소금물에 꽃게를 담갔다가 건져먹고 나서 게국에 물과 소금을 추가하여 다시 끓이고, 꽃게를 담그는 일을 이듬해 5월까지 반복하다가 꽃게 철이 지나면 칠게나 농게 등을 같은 방법으로 담근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생긴 국물이 게국이다. 이 게국에 담근 배추김치가 게국지다. 게국지는 1년 동안 게를 담그는 과정에서 우러난 게의 국물이 배여 있어 구수하고 감칠맛이 난다. <우리고장 바로알고 바로알리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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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장의 꽃게를 다 먹은 뒤 아까운 게국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대개는 마른 김을 찍어 먹는 이도 있지만, 태안에는 게장을 담근 게국에 푸른 배추와 늙은 호박 등을 담갔다가 쪄 먹는 특유의 향토음식인 게국지가 있다.
요즘처럼 간장으로 담근 꽃게장으로는 흉내 낼 수는 없지만 과거 소금물로 전통 꽃게장을 담근 선조들은 꽃게를 건져먹고 난 뒤 남은 게국으로 배추김치를 담가 게국지를 끓여 먹었다. 지금도 게국지는 태안의 대표 향토음식으로 자리잡을 만큼 태안에서는 쉽게 맛볼 수 있다.
꽃게장이 싱싱한 꽃게의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밥도둑이라면 우리가 흔히 먹는 꽃게찜과 꽃게탕은 꽃게의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게 한다.
가장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는 꽃게찜은 싱싱한 꽃게를 바로 찜통에 넣고 끓이면 된다. 하지만, 게살이 한 번에 쏙 빠지는 대게와는 달리 꽃게살을 빼 먹기 위해서는 가끔 꽃게 다리에 솟아 있는 돌기에 찔리는 것 쯤은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딱딱한 껍질을 깨고 드러나는 게살을 소스에 찍어 먹는 그 맛을 어디 대게와 비교할 수 있으랴.
또 하나 꽃게의 깊은 맛이 우러나는 꽃게탕 또한 꽃게 음식의 대표 주자다. 각종 조개와 미더덕 등 해삼물과 함께 시원한 국물맛을 내는 무를 첨가해 끓이는 꽃게탕은 꽃게살을 다 먹고난 뒤 개운한 맛을 내는 국물이 일품이어서 술안주로도 제격이다.
태안 인근 식당에서는 보통 5만 원선에 꽃게탕을 맛볼 수 있지만, 수산물시장에서 꽃게를 구입한 뒤 5000원이면 구입할 수 있는 꽃게탕 양념을 사 인근 펜션에서 직접 끓여 먹으면 저렴하게 꽃게탕을 즐길 수 있다.
이외에도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달달한 맛이 일품인 가을꽃게로 무침을 해 먹기도 한다. 양념게장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꽃게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마늘과 고추장만으로 버무린 꽃게무침도 미식가들에게 권장할 만하다.
가을 별미를 원하는 식도락가들! 싱싱한 꽃게와 대하 등 수산물이 풍어를 이루고 있는 태안반도로 맛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