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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뜻밖에 손님이 찾아왔다. 아니 들이닥쳤다. 당혹스러워서 말도 잘 못 하고 어허, 어허, 이것 참, 어쨌든 앉아, 앉으라고 응? 허둥지둥인 심사로 그런 소리나 뇌까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러는 동안 후배녀석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죄송'은 후배의 트레이드마크라고나 할까, 그런 면이 있었다. 출가하기 전부터  무엇을 받아가거나 빌려갈 때도 '죄송'이었고, 자신이 내게 무엇을 주면서도 '죄송'이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죄송할 일이야 어디 한둘일까마는,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도 죄송, 죄송, 오직 죄송밖에는 할 말이 없다는 투로 어깨에 힘을 완전히 빼고 다니는 사람은 경험이 제법 많다고 자부해 온 나로서도 희귀한 사례에 속했다.

산문에 들어 행자를 거쳐 머리 깎고, 계를 받고, 강원 공부를 시작한 뒤로 그놈의 '죄송'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는가 싶었다. 특히나 지난 2년여 동안은 거의 연락도 없고 해서 이제 바야흐로 강원공부에 맛을 들였나보다, 그렇게 드디어 제 길을 찾았나보다, 하며 내심 안도하고 있었달까, 그랬는데 그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깊은 우울의 어떤 본질 같은 것에 잡혀 있었다는 느낌이다.

이 세상 모든 고민이 저한테 들어와 있습니다, 하는 표정으로 쓴웃음이나 가끔 지어대는 녀석과 하룻밤을 지내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는 도무지 무슨 얘기가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면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지? 아, 그래, 강진 갈래? 거기 다산초당에 앉아서 들고나는 바닷물이며 높아진 하늘이나 좀 보고 오자.

그렇게 길을 나섰다. 그런데 가는 중에 강진은 그만 잊어버렸다. 무슨 이야기 끝에인지 판소리가 화제에 올랐고, 판소리하는 분들이 목을 풀기 위해 맛보기로 내놓는 단가 중에 사철가의 도입부 "이산 저산 꽃이 피니 정녕코 봄이로구나"하는 대목을 합창으로 잠시 불렀고, 그러다가 느닷없이 함평천지 널따라 갯벌 어쩌고 하는 얘기를 주섬주섬 새기다가 그만 영광 백수 해안도로를 끼고 함평으로 가자, 해서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발견한 작은 섬
 길을 잃고 헤매다가 발견한 작은 섬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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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함평마저 잊어버렸다. 고창에서 무장을 지나는 길에 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니 한 분이 손을 들어 태워드렸는데 한사코 '차비'를 내놓으신다. 처음 몇 번은 아니라고, 그러시지 마시라고, 철없이 사양을 했는데 뒤에서 스님 명색의 후배가 한 마디 내놓는다.

"받으세요, 형님. 그런 돈은 안 받는 게 무례일 수 있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사실은 나도 받으려고 했었다. 버스가 두 시간에 한 번씩 지나가는 농촌에 살면서 이와 유사한 경험이 어디 한둘이었겠느냐. 다만 안 받으면 안 되는 그 돈을 받을 적절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 뿐이다. 내 속에서 은근히 볼멘소리가 나오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자꾸 뭐라고뭐라고 하셔쌌는다. 어쨌든 그렇게 요금(?)을 받고서야 할머니 가시는 곳을 여쭤보니 우리의 목적지와는 완전히 반대 방향이다. 그렇다고 중간에 여기서 내리세요, 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그냥 가기로 했는데 그때부터 할머니의 폭포수 같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이고 으째야 쓰까, 시님(스님)을 짐칸으로 몰아넣고 내가 이, 늙은 것이 죽지도 못험서 차말로 죄가 많소, 야?"

자동차가 2인승 미니밴이다 보니 나이 젊은 후배가 화물칸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할머니에게는 그것이 대단한 사건으로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 없다고 제아무리 반복을 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끝도 없이 자발자발 말씀을 하시는 할머니 덕택에 길을 잘못 들었던 것인가. 사실은 내가 길치이다 못해 운전도 툭하면 전봇대나 들이받는 식의 기계치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내비게이션은 '나를 잃어버릴까 겁난다'는 이유로 사용은커녕 만져본 적도 없었다.

그런 데다 또 할머니의 말씀하시는 '태'가 뭐라고나 할까, 구성지다고나 할까, 맛갈지다고 할까 하여튼 나도 모르게 운전보다는 할머니 쪽으로 자꾸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그러다가 덜컥 잡혀 버렸다. 굴비의 고장 법성포에서 나오는 차량들로 인해 영광 원자력 발전소 사택 인근 삼거리 교통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되었는데 우리가 그만 그 와중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 거였다. 족히 20분은 꼼짝이나 겨우 하면서 그냥 서 있었을 것이다. 그 20여분 동안 할머니는 아따 이것이 웬 멍석이냐, 하는 투로 우리의 신상정보를 묻고, 당신의 신상정보를 자백(?)하고, 그러다가는 또 느닷없이 "아따 참말로 우리 딸이 과부라도 있으먼 사위 삼고 자프요, 야?" 하는 식으로 사람을 둥둥 허공에 띄워놓고 있었다.

그렇게 허공에 뜬 기분인 채로 할머니를 내려드리고, 그 유명한 영광 백수해안도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가도가도 어째 뭔가 좀 이상하다 싶더니 자동차가 도로 고창 쪽으로 머리를 틀어놓고 있었다. 어허 이것이 뭔 일이라냐, 하고 다시 차를 돌렸다. 어찌어찌 겨우 해안도로를 찾아서 관광을 좀 하고 계속 나아갔다. 그러다가 완전히 길을 잃어 버렸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하여튼 바닷가 염전지대로 들어섰는데 2차선 포장도로가 사라지면서 느닷없이 들쭉날쭉 엉망인 자갈밭이 나오는 거였다. 이쪽으로 가자, 하고 가면 저쪽으로 가 있고, 저쪽으로 가자, 하고 가면 다시 이쪽으로 와 있어지는 기막힌 상황이 자꾸만 되풀이되는 것이었다.

갯벌 앞에서 길을 찾는 후배
 갯벌 앞에서 길을 찾는 후배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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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이것이 참말로 이것이, 뭔 일이다냐, 이거, 응?"
"뭘요. 저는 좋은데요."
"뭐이?"
"형님 덕택에 이런 여행도 해보고, 저는 아까부터 계속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형님은 항상 저를 이렇게 새로운 경험세계로 끌어들여 주신다니깐요."
"어헛, 보살 나셨네."

이 녀석이 지금 먹물 들인 승복을 입었다고 나를 노골적으로 조롱하는가,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아니었다. 본래가 서툰 농담 한 마디 용납을 못하는 인상에 표정이었지만 더할나위 없이 진지하고 호기심에 눈빛마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런 뒤에야 가만 생각해보니 나야말로 오랜만에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퍼뜩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렇다. 맞다. 그렇다. 여행이란 결국 잘 정련된 질서라든가 체제 같은 것을 버리거나 혹은 떠나서 무질서 속으로, 혼돈 속으로 나를 들이밀어 보는 것 아니겠는가. 그 혼돈 속에서 다른 어떤 새 질서를 발견하든 말든 그것은 별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무엇'을 생각하기에는 여행자의 심사가 너무 절박하니까, 일단은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보는 것, 그렇게 우리는, 후배와 나는 갯벌 옆 소금밭 두렁을 돌고 돌다가 구멍가게 하나가 딸린 아주 작은 해수욕장을 발견하고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사 먹고, 삶은 오리알로 점심을 해결한 다음 본격적인 토론(?)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형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데요. 우리 눈에 보이는 은하계에 천억 개 이상의 별이 있고, 보이지 않는 우주 공간에는 다시 천억 개 이상의 은하계가 또 있다는 게 천문학계의 관점이라고 하셨잖아요. 저도 그 부분은 박수를 치는 입장입니다. 그러니까 별의 숫자를 굳이 헤아려 보자면 우리 눈에 보이는 은하계의 별 천억 개 곱하기 보이지 않는 우주 내의 은하계 천억 했을 때 나오는 숫자만큼은 최소한 된다는 것이란 말이거든요. 이것은 명백하게도 시간을 초 단위까지도 수억 개로 쪼개는 식의 찰나라든가 억겁이라는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하는 불교의 시간관 내지 공간개념과 닮아 있단 말이거든요. 신비적이면서도 매우 과학적인 종교라는  거죠, 불교가. 그런데 말입니다, 형님, 제가 무슨 현실도피나 하자고 산문에 든 것은 절대로, 아니란 말이거든요."

무슨 말인가 했더니 그것이었다. 요즘 들어 후배를 부쩍 괴롭히는, 고민의 근원이랄까 일시적인 현상이랄까 하여튼 불만의 실체가 드디어 꼬리를 내밀었다. 후배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규모의 사찰에서 주지 시봉을 하고 있었다. 속세간으로 치자면 일종의 비서실장 격인데, 아직 '초짜 중'에게 그런 중임을 맡긴 것은 아무래도 후배의 외국어 실력이 한몫 했을 터이다.

삶은 오리알로 하는 점심식사
 삶은 오리알로 하는 점심식사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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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에서 요즘 하는 공부는 화엄경이었고, 경내에서 요즘 맡고 있는 소임은 불전관리라고 했다. 매일 한 차례씩 불전함을 개봉해서 그 안에 든 것들의 개수를 헤아리고, 다음 날 그것들을 들고 은행으로 가는, 속세간의 용어로 말하자면 경리, 내지는 회계사 업무인데 그 대목을 말할 때 후배는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자기가 지금 절간에서 하고 있는 일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알 수가 없어서 괴롭다는 뜻이었다.

단순 계산으로만 풀자면 어떤 것을 꺼려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일을 안 시키는 게 합리적이고 조직의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 같지만, 그런데 불가의 법칙이라는 것이 어디 속세간 셈법으로 닿을 수 있는 것이던가. 싫어하면 싫어할수록, 꺼려하면 꺼려할수록 그것을 가까이 하게 하는 것으로써 그것을 넘어서게 하는 것, 천경자 화백이 뱀을 징그러워하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어서 뱀을 아예 방에 들이고 같이 살았다고 하는 그 지점.

그러니까 젊은 비구가 자신의 머릿속 생각과는 전혀 무관하게 일어서는 성욕의 근원을 자른답시고 성기를 잘라내고자 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아마도 후배의 은사 스님이 후배에게 경리의 소임을 맡긴 까닭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후배는 아직 '중' 생활 경력이 일천한 까닭에 그 냄새에 닿지 못했거나 알아도 감정적으로 용납이 안 된다. 그래서 괴로운 거다.

그런데 정말 그것일까? 그것뿐일까? 아니다. 보다 깊은 전과(?)가 있었다. 후배가 아주 어렸을 적에 그 어머니가 역전여인숙을 하셨다. 과거의 역전여인숙이란 소박하게 잠자리를 필요로 하는 손님도 물론 '손님'이기는 하지만, 아가씨라는 이름의 '상품'을 두고 '긴밤'이냐 '짧은밤'이냐를 따지는 손님이 '진짜 손님'이었다. 손님이 많은 날은 주인 가족들이 안방이든 뭐든 방이란 방은 죄다 내주고 밖에서 떨며 손님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도 한단다.

그런 생활이 4년이라 했던가, 5년이라 했던가, 그리 길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후배는 그곳을 떠난 뒤로도 10대와 20대, 30대 청춘을 고스란히 역전여인숙 시절의 너무나도 리얼한 기억에 매몰된 채로 허둥거려야 했다.

대학원 공부를 하던 시절에는 어찌어찌 그럴싸하게 서정적인 정서가 되어 연애를  시작해 보기도 했지만, 어느 하루 저녁에 느닷없이 튀어나온, "너 처녀 아니지?" 아무 생각없이 쏟아진 이 한 마디에 그날로 연애사업은 쫑, 쫑을 찍고 다음 날부터 "내가 왜 그랬지? 내 안에 무슨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 거야" 따위 고민으로 괴로워하기를 몇 년이나 하다가는 결국 가족간의 불화를 구실로 집을 나왔다. 가족간의 불화는 출가의 표면적인 구실일 뿐 뿌리는 "너 처녀 아니지?"에 있었고, 그것은 다시 역전여인숙 시절의 무수한 비명으로 각인된 여인들에 깊이 박혀 있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나도 대체로 따르기는 하지만, 자네의 경우를 새기다 보면 전체와 부분을 가려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쪼깨 복잡해, 잉?"

이마에 진지라는 딱지를 열 개도 넘게 붙이고 앉아 있는 후배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후배는 인색하게 아주 잠깐 웃었다.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너무도 진한 노을이 바다를 태우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허망할 정도로 일사천리, 여기가 어디지?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술술 달렸다.

서해안 노을
 서해안 노을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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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후배는 무슨 느닷없는 이불빨래를 하겠다고 야단을 떨었다. 지난 여름 습도가 너무 높아서 이불빨래는 며칠 전에 이미 해두었던 참이었다. 그 뽀송뽀송하게 잘 마른 이불을 겨우 이틀 사용했을 뿐이었다. 그것을 또 빨겠다고? 뭐여, 너 혹시 오줌 쌌냐?

내 딴에는 웃자고 한 말이었지만, 말없이 희미한 미소나 짓고 있는 후배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어쩌면 몽정을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몽정이 있었고, 뒤따라 쉬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순서니까. 그러니까 후배는 길도 모르는 선배의 여행안내에 이끌려 다니느라 엄청 피곤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불을 빤다고 다소는 민망한 표정으로 서둘러대는 후배의 뒤를 가만히 서서 보고 있자니 그제야 문득 그가 사람처럼 느껴진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굳어 있던 후배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의 내부를 차지하고 있는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저도 모르고 나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은 그놈의 괴물도 민망해서 숨었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런 느낌인 채로 나는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꽉 찬 나이 마흔이나 되는 놈이 몽정을 해? 허헛, 참 재주도 좋다."


태그:#짧은여행, #학승의고뇌, #후배, #직업의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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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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