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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클리닉 원장이 3년간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떠나며 블로그에 올린 글.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클리닉 원장이 3년간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떠나며 블로그에 올린 글.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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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주의는 기본적으로 '상대적 욕망'을 찬양하고 부추김으로써 부를 축적하는 과정보다는 결과물인 부의 크기를 경배하는 천민자본주의가 자리를 잡게 됐다. (바로) 옆집에서 사람이 굶어죽는데도 만석꾼의 창고에서는 쌀이 썩어나가는 세상을 만들어 냈고, 이러한 자기파괴적 시스템은 현대 시장자본주의의 가장 큰 숙제가 됐다. 굶어죽는 사람이 늘어간다면, 만석꾼의 창고는 약탈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클리닉 원장이 3년간 진행했던 KBS 1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를 떠나면서 신자유주의와 시장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해 주목을 끈다.

그는 16일 오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서 한국경제의 왜곡된 시스템을 고발하면서 동시에 이를 감시하고 건강하게 비판해야 하는 언론의 역할도 주문했다.

특히 박 원장은 "우리는 역사의 배경이 될 수 없다"며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우리 공동체를 지키고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가치를 공유하며 공감과 연대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젊은이들에게 각성된 정치의식을 촉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 글을 통해 "방송이나 언론은 건강한 비판자의 역할, 자본과 권력에 대한 건강한 견제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며 "그 점에서 저처럼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에 있는 사람이 그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또한 그는 "지난 3년간 아슬아슬한 고비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KBS 내에 아직 심장이 살아있는 스텝들의 열정에 힘입어 지금까지 온 것 같다"며 "사람은 떠나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고, 또 비워지면 채워야하는 이치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자신의 상태와 관련해서는 "이번에 청춘콘서트 일정, 그와 동시에 석달간 밤을 세운 탈고작업 등으로 정신적 에너지를 완전히 쏟아낸 상태에서 관성적으로 방송을 계속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이제는 밀린 공부도 하고. 여행도 좀 다니면서 제 자신을 재충전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다음은 박경철 원장의 글이다.

라디오를 진행한지가 벌써 3년 입니다. 돌아보면 불명확하고 어눌한 발음을 가진 사람이 TV도 아닌 라디오를 3년이나 진행하면서, 이만큼의 사랑을 받았던 경험은 제 인생에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저는 방송이나 언론은 건강한 비판자의 역할, 자본과 권력에 대한 건강한 견제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 점에서 저처럼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에 있는 사람이 그 중심을 잃지 않아야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지난 3년 사이 중간중간 아슬아슬한 고비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KBS내에 아직 심장이 살아있는 스텝들의 열정에 힘입어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떠나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 비워지면 채워야하는 이치도 잊지 말아야 하고요.

그 점에서 이번에 청춘콘서트 일정, 그와 동시에 석달간 밤을 세운 탈고작업등으로 정신적 에너지를 완전히 쏟아낸 상태에서 굳이 관성적인 방송을 계속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밀린 공부도 하고. 여행도 좀 다니면서 제 자신을 재충전하는 작업을 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너무 과분한 믿음과 성원을 보내주신 청취자 여러분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여기서 인사드리고자 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아래는 오늘 방송에서 읽었던 고별사입니다.

지난 몇십 년간 관리자본주의에서 시장(금융)자본주의로 전환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서, 경제발전이 근로자와 대중의 삶의 질도 개선시킬 수 있다는 전통적인 믿음이 사라졌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본권력이 대의민주주의적 절차에 의해 대중의 위임을 받은 정치권력을 누르고 국가사회의 어젠더를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은 골드먼삭스를 가버먼트삭스(government socks)라 부르는 미국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은 겉으로는 완전한 민주주의체제인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부권력이, 자본이 제공하는 정치자금과 인력풀로부터 대단히 자유롭지 못한 나라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의 금융위기인데, 2000년 이후 2010년까지 10년간 미국민의 개인소득은 증가하지 않았지만 미국의 GDP는 19퍼센트나 증가했습니다. 그럼 늘어난 19퍼센트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요?

이것이 위기의 핵심이입니다.

신자유주의의 번성으로 지난 수십 년간 자본은 점점 비대해졌지만, 편중된 자본축적은 도리어 찬양되었습니다. 시장주의는 기본적으로 '상대적 욕망'을 찬양하고 부추김으로써 부를 축적하는 과정보다는 결과물인 부의 크기를 경배하는 천민자본주의가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옆집에서 사람이 굶어죽는데도 만석꾼의 창고에서는 쌀이 썩어나가는 세상을 만들어 냈고, 이러한 자기파괴적인 시스템은 현대 시장자본주의의 가장 큰 숙제가 되었습니다. 굶어죽는 사람이 늘어간다면 만석꾼의 창고는 약탈을 피할 수 없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문제를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습니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마차가 절벽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당장은 떨어지지 않을 테니 말을 멈추거나 방향을 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사고방식입니다.우리는 역사의 배경이 될 수는 없습니다.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우리 공동체를 지키고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가치를 공유하며 공감과 연대의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 점에서 언론이나 방송이 해야 할 역할은 건강한 비판자의 역할입니다.

자본과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비판자의 역할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라는 합리를 위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지난 3년간 공영방송인 KBS 채널을 통해 전송된 이 프로그램에서 저와 제작진은 이 점을 잊지 않으려고 나름 애써왔습니다. 사실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고, 중간중간 고비도 없지는 않았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하지만 부족함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다만 비록 제대로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지라도 초심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은 해왔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물론 거기에는 제작진과 KBS 라디오국의 심장이 펄떡이는 프로듀서분들의 격려가 큰힘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발음도 시원찮은 제가 3년이나 라디오를 진행할 수 있기도 했습니다.

이제 저는 이쯤에서 떠나려 합니다. 스스로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떠날 자리를 아는게 중요하니까요...

앞으로 청취자 여러분과의 인연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박경철 드림


태그:#박경철, #라디오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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