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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3월부터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신설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꿈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는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입니다. <기자 말>

 

혁신학교에 대해서 학부모들이 하는 말 가운데 "혁신학교는 공부는 안 하나요?", "혁신학교는 시험은 안 보나요?" 다음으로 많이 떠도는 말은 "혁신학교에서는 경쟁을 안 한다는데, 경쟁을 해야 발전이 있지 않나요?" 하는 말입니다.

 

혁신학교는 '경쟁교육'보다 '협력교육'을 지향합니다

 

우리 학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혁신학교들은 '경쟁교육'보다는 '협력교육'을 지향합니다. 기존 학교보다 아이들을 경쟁시키는 교육활동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경험으로 볼 때 그동안 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대부분의 교육활동들이 우열을 다투면서 경쟁하면서 진행되는 일이 많았는데, 경쟁을 시키면서 교육을 하다보니 본래 목적보다 나타나는 부작용이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경쟁을 하면서 공부나 일을 하면, 서로 긴장이 되어서 발전속도가 빠르고 모두 다 함께 발전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분명 경쟁에 대한 이런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경쟁도 어떤 경쟁이냐가 중요한데, 학교에서 경쟁을 시키면서 하는 교육은 교육적 효과보다 오히려 부작용이 더 많아서 부정적인 측면이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실제로 교사들은 교육현장에서 부정적인 현상을 많이 겪어왔습니다. 사람들이 단순하게 '경쟁을 시켜야 발전이 있다'고 하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경쟁 교육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에 대한 예를 들어 보겠는데요, 경쟁 교육의 가장 표본적인 예가 평가결과인 성적으로 아이들을 경쟁시켜서 공부를 시키는 것이라고 봅니다. 부모들이 시험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내거는 것이 바로 '1등을 하면~', '상을 타면~', '100점을 맞으면~', '○○○를 해주겠다' 같은 것입니다. 심지어, '누구보다 잘 하면'이라는 조건을 내거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이 말 속에는 반대로 1등을 못하거나 상을 못 타거나 100점을 못 받으면 혼쭐을 내겠다는 말이 포함됩니다.

 

"경쟁을 해야 발전이 있지 않나요?"

 

1등을 하거나 상을 타거나 100점을 받는 것이 아이들이 경쟁을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조건이 아이마다 비슷비슷한 경우에는 경쟁을 하면서 1등도 할 수 있고, 상을 탈 수도 있겠지만, 학급에 누가 봐도 뛰어난 아이가 있을 경우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1등을 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할 것은 1등은 오직 한 명이어서 내 아이가 1등을 하면 누군가는 2등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무조건 1등을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꾸 1등을 하라고 하고 1등 못한다고 혼내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1등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은 그만 나보다 잘하는 아이를 미워하게 되고, 심지어 그 아이가 다른 학교로 전학가길 바랍니다. 시험보는 날 아파서 학교에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1등하라고 자꾸 다그치는 부모에게 늘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한 아이는 1등 하는 아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기도 합니다. 또 집이 무너지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 반 공부 잘하는 아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폭파됐으면 좋겠다'고도 말하는 일도 있습니다.

 

가끔 뉴스에서 초중등생들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되는데, 자살 요인 중 성적을 비관해서 자살하는 경우를 보면, 대부분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 아이입니다. 그것만을 봐도 경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쟁도 비슷비슷한 아이들끼리 하는 것입니다. 아예 경쟁할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경쟁은커녕 학습 자체를 포기해버려서 오히려 학습에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렇듯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가 좀 더 잘하라는 뜻으로 무심결에 던진 말이 부모가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참으로 무섭게 나타납니다. 

    

특히 1, 2학년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닦달하는 일이 '받아쓰기에서 100점' 받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한 날은 받아쓰기 점수로 아이와 부모의 사이가 천국과 지옥을 오고가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받아쓰기 점수와 관련해서 부모들이 놓치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받아쓰기 점수는 받아쓰기 100점에 핸드폰과 자전거, 컴퓨터를 건다고 해서 100점을 받고 못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전혀 영향이 없을 수는 없지만, 받아쓰기는 예상문제를 열심히 많이 써본다고 해서 100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어와 문장을 평소에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하면 틀리게 되어있습니다. 아마도 어른들에게 1, 2학년 수준의 받아쓰기를 하면 100점 받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으리라 봅니다. 1, 2학년 아이들에게는 받아쓰기보다 더 많이 해야할 일이 듣기와 말하기입니다. 받아쓰기를 잘하려면 먼저 듣기와 말하기를 정확하게 하면 됩니다. 

 

100점을 강요할수록 느는 건, 커닝과 거짓말 요령뿐

 

부모는 아이에게 받아쓰기를 잘 하라는 뜻으로, 받아쓰기에서 100점을 받아오라 하고, 틀린 만큼 한 대씩 맞는다고 하는데, 아이는 아무리 해도 받아쓰기에서 100점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커닝을 할 방법을 찾게 됩니다. 책을 책상 서랍 속에 몰래 펴놓고 하거나, 옆에 앉은 아이 것을 흘끔흘끔 커닝하거나, 내라고 할 때 안 내고 있다가 혼란한 틈을 타서 남의 것을 얼른 보고 씁니다.

 

쓰는 곳을 비워두거나 흐릿하게 써두었다가 채점해서 나누어주면 얼른 새로 고쳐 써놓고, 선생님한테 채점 잘못 했다고 따지는 아이도 있습니다. 받아쓰기를 점수로 나타내서 경쟁하면 경쟁할수록 받아쓰기 실력이 발전하는 대신에 커닝과 거짓말하는 요령만 발전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경우 아이들 눈에는 어느 글자를 왜 내가 잘못 썼는지에 대한 반성적 성찰보다는 오직 맞고 틀린 점수만 보입니다. 점수를 보고 우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도 받아쓰기에서 늘 한두 개 틀리는 아이들의 예이고, 늘 0점을 맞거나 한두 개 맞는 아이들에게는 경쟁이고 뭐고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니 점수로 경쟁하면서 받아쓰기 평가를 한다고 해서 아이들의 받아쓰기 실력이 발전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보면 됩니다.   

 

 

경쟁으로 하는 모둠학습은 폭력을 유발합니다

 

경쟁을 통한 부정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는데, 바로 모둠학습의 경우입니다. 현재 많은 학교의 학급에서 모둠학습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일이 많습니다. 모둠학습은 모둠원끼리 서로 협력하여 서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서로 아이디어를 내고 협력하면서 함께 공부하려는 뜻으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방법에서 많이들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둠학습을 하면서 교사들 중에 목적달성을 효율적으로 빨리 하기 위해 모둠끼리 경쟁을 시키는 일이 많습니다. 모둠끼리 경쟁을 시키다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오직 먼저 끝내는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 경우 모둠학습의 서로 가르쳐주고 협력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른 모둠보다 문제 해결을 빨리 해야하기 때문에 잘하는 아이가 못하고 느린 아이를 가르쳐주거나 기다려주지 못합니다.

 

못하거나 느린 아이는 그 모둠이 1등을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구박덩어리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잘하는 아이는 못하고 느린 아이를 저절로 무시하게 되면서 못하는 아이들에게 빨리 정답을 베껴 쓸 것을 강요하게 됩니다.

 

모둠경쟁에서는 모둠이 얼마나 빨리 목적을 달성했느냐가 중요하지 모둠원 중에 잘 모르는 아이 개인을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살펴볼 틈이 없습니다. 이런 모습이 그동안 수많은 학교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결과 중심의 경쟁 위주의 모둠학습에서 일어나는 폭력적인 모습입니다. 

 

경쟁을 통한 교육은 결국 서로의 다름에 대한 이해보다는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기 때문에 모두가 경쟁상대로서 서로에 대한 미움과 상처를 주게 되고, 경쟁에서 이겼다 해도 상처뿐인 영광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번 1등이 영원한 1등이 아니기 때문에 또 다른 경쟁을 준비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늘 크게 받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늘 자리잡고 있어서 마음의 여유도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활동을 할 기회가 적을 뿐만 아니라, 사고와 이해력의 폭이 당연히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열'이 아닌 '다름'으로,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공부를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원래 공부는 혼자할 때보다 협력해서 할 때 더 많이 더 풍부하게 일어납니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수-학습'이란 말 속에는 이미 '협력'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쟁'이 결과 중심이라면, '협력'은 과정 중심입니다. '경쟁'에서는 결국 잘하는 아이과 못하는 아이, 빠른 아이과 느린 아이를 '우열'로 나누어 구별하고 규정하게 되지만, '협력'에서는 아이마다 나타나는 저마다의 특징을 '우열'이 아닌 '다름'으로 보고, 저마다 다른 특징이 오히려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서 배우는 과정에서 더 큰 배움이 일어나고 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를 포함한 혁신학교들은 한창 성장기의 어린이들을 결과 위주로  '우열'로 구분하고 규정하게 되는 '경쟁'보다,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함께 하는 활동과정 속에서 서로서로 폭넓게 배우고 성장하는 '협력'을 지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태그:#서울형혁신학교, #경쟁, #협력, #서울강명초등학교, #서울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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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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