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근로자에 대한 보호는 의식주 및 의료 지원, 교육 기회 부여 등 기본적인 보호뿐 아니라 상해, 질병, 노령, 장애, 임신, 육아, 실직 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경감시켜주는 것을 포함한다. 따라서 기업은 근로자에게 일과 생활의 균형을 돕는 육아휴가제도 및 보육 시설 등의 아동 보호를 위한 정책이나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합리적인 근로조건을 부여하는 등 근로자의 가족 부양 책임도 존중해야 한다."

그저, '귀에만 듣기 좋은 소리'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최근 국내 최초로 기업들을 대상으로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에 대해 통합 평가를 실시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가이드 라인'이기 때문이다. 출처는 글로벌 모델을 반영해 만들어진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 통합평가 사회부문 모범기준이다.

근로자, 협력사 및 경쟁사, 소비자, 지역사회 등과 관련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명시한 이 기준에 따르면, '직장보육시설'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필수다. 현행법'까지' 그러하다. 영유아보육법은 상시 여성근로자 300명 이상 또는 상시근로자 500명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주는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포스코 어린이집을 다녀간 대기업들은?

포스코 어린이집 입구
 포스코 어린이집 입구
ⓒ 이정환

관련사진보기


대상, 두산, 유한킴벌리, 코오롱, 한국석유공사, CJ, GS홈쇼핑, LG전자 등 대기업 관계자들 명함이 빼곡했다. 모두 삼성 포스코센터에 위치한 '포스코 어린이집'을 다녀 간 사람들이다. 23일 이현희 원장(50·여)은 "다른 대기업에서 벤치 마킹 차원에서 자문을 구하러 많이 온다. 전화 문의도 많다"고 했다. 직장보육시설로서 포스코 어린이집이 일종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셈이다.

포스코 어린이집은 작년 3월 2일 문을 열었다. 총 규모는 424.24㎡(128평)로 연령별로 보육실 3개, 실내놀이터(유희실), 아동도서실, 교사실·양호실, 주방, 화장실 등을 갖추고 있다. 보육 정원은 60명. 신입 원아 선발 기준은 남녀 불문 혼자 자녀를 키우는 직원이 1순위다. 2순위는 출산장려 차원에서 여직원의 자녀, 그 다음 맞벌이 부부 자녀가 3순위다.

시설은 아이들의 면역력을 고려하여 친환경 소재를 이용했다고 한다. 현관, 각 보육실 기둥이나 모서리, 실내놀이터 내부 벽면에는 완충시설이 설치돼 있다. 또 아이들이 보호자 없이 이동하거나 신원이 불확실한 사람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보안시설도 갖추고 있다.

시설은 오전 7시 30분부터 저녁 8시까지 운영된다. 각 연령에 맞는 교육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영어 교육은 6살(만 4세)반 어린이들만을 대상으로 외부 강사에 의해 주 3회 실시된다고 한다. 급간식은 오전 간식 - 점심 식사 - 오후 간식 - 저녁 식사 등 하루 4차례 제공한다.

포스코 어린이집은 '테헤란로 1층'

포스코 어린이집 유아용 세면대
 포스코 어린이집 유아용 세면대
ⓒ 이정환

관련사진보기


포스코 어린이집의 가장 큰 특징은 1층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현희 원장은 "아이들의 이동이나 안전 문제를 고려했을 때, 보육 시설 위치로는 1층이 적당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직장 내 보육시설이 1층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건물 활용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포스코센터가 위치한 테헤란로 '땅값'을 떠올리면 이례적인 '위치'인 것이 사실이다. 지금 어린이집 자리에는 농협PB센터 지점이 있었다고 한다. 추정 임대 수익은 1년에 5억 원 정도, 이 원장 말대로 "돈을 포기하고 돈을 투여하는 결정"을 한 셈이다.

이 원장은 교사 대 아동비율이 낮은 것도 포스코 어린이 집 특징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영유아보육법을 보면, 교사 한 명이 보육 가능한 영유아 인원수는 해당 연령에 따라 달라진다. 만 0세의 경우는 1:3, 만 1세는 1:5, 만 2세는 1:7, 만 3세는 1:15, 만 4세 이상은 1:20이다.

포스코 어린이집 교사 대 아동비율은 만 1세반이 1:4(교사 3명), 만 2세반(교사 3명) 1:6, 만 3∼4세 통합반(교사 2명) 1:15로 각각 나타났다. 여기에 보조교사 2명까지 더하면, 포스코 어린이집 '어른의 손길'은 법정 기준보다 훨씬 높은 셈이다. 이 원장은 "교육의 질에서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직원들은 표준보육료 부담, 회사는 연간 운영비 지원

포스코 어린이집은 안전 관리를 위해 가스 시설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포스코 어린이집은 안전 관리를 위해 가스 시설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 이정환

관련사진보기


다만 포스코 어린이집은 만 0세반을 운영하지 않는다. 이 원장은 "법에 따라 만 0세 영아에게는 더 넓은 1인당 보육 면적을 갖춰줘야 한다. 더 많은 직원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효율성을 고려한 결정"이라며 "교육적으로도 만 0세 영아의 경우는 가정에서 크는 것이 제일 좋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포스코 어린이집의 현재 운영 인력은 원장 1명, 보육교사 10명(보조교사 2명 포함), 영양사 1명, 조리사 2명 등 총 14명이다. 영유아보육법상 100명 이상의 영유아를 보육하는 시설에서는 영양사 1명을 두도록 하고 있다. 이 원장이 "영양사 상주"를 빠뜨리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식단은 '물론' 유기농이다. 쌀, 김치, 소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 닭고기 등 식재료는 모두 국내산을 쓰고 있다. 이 원장은 "과일류 등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을 조리사 선생님들이 직접 조리한다"면서 "인건비 다음으로 식비가 운영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고 설명했다.

포스코가 지원하는 운영비는 연 3억 원 규모다. 입학금, 급간식비, 특별활동비, 학습재료비 등 여타 비용은 회사가 지원하고, 직원들은 표준보육료만 부담하는 구조다. 이 원장은 "만 1세반의 경우 신청 대기자가 정원에 육박할 정도로 직원들 반응은 좋은 편"이라고 소개했다.

포스코가 어린이집 설치에 부담한 비용은?

포스코 어린이집 아동도서실 모습
 포스코 어린이집 아동도서실 모습
ⓒ 이정환

관련사진보기


또한 이 원장은 "출퇴근을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고, 점심 시간 등 틈날 때마다 아이들을 보러 올 수 있다"며 "아이를 데려다 주고 또 데려 오는 동선이나 심리적 거리감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부모 입장에서는 직장 내 보육시설이 가장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럼에도 현실은 '포스코 어린이집'과는 사뭇 멀다. 25일 보건복지부가 최경희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작년 말 기준 국내 100대 기업 중 22곳이 보육시설 지원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었다. 보육시설 설치 의무 기업임에도 '위법'을 저지르고 있는 사업장 비율 또한 41%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스코 어린이집 설치에 든 총 비용은 약 5억9천만 원. 이중 회사가 부담한 금액은 3억4천만 원, 나머지 2억5천만 원은 고용노동부로부터 지원 받았다. 여기에 포스코가 매년 지원하는 운영비 3억 원, 어린이집 개설에 따른 임대수익 손실분 5억 원을 더하면, 연 8억 원 정도를 쓰고 있는 셈이다.

적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근로자의 가족 부양 책임 존중"을 위해서는 반드시 투자해야 하는 돈이기도 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준수하기 위한 최소한의 금액을 외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직도 '필수'를 '선택'으로 착각하고 있는 대기업이라면 특히 말이다.


태그:#ESG, #포스코, #어린이집, #직장보육시설, #사회적 책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