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반기문 사무총장님. 저는 한국에 살고 있는 23살 대학생 이슬기입니다. 지금, 지구 반대편에는 제 나이 또래의 팔레스타인 친구들이 국기를 들고 광장으로 뛰쳐나와 환호하고 있습니다. 바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23일 UN에 '독립국가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결정지을 안보리 승인과 총회의 표결을 남겨둔 지금, 세계의 이목은 UN의 행보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불법점령한 이후, 수천 년 동안 그 땅에 살아온 팔레스타인은 정부와 국민이 있음에도 '국가'가 아닌 '단체'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63년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난민으로 떠돌거나, 거대한 분리장벽에 갇혀 인생의 3분의1을 검문소 앞에서 보내왔고, 지금도 팔레스타인의 청년들은 이스라엘의 탱크에 맞서 돌멩이를 던지다 꽃다운 목숨을 잃어갑니다. 나라 없는 설움을 겪었던 한국의 청년으로서, 팔레스타인이 독립을 선포하는 역사적 순간을 꿈꾸며 반기문 UN사무총장님께 편지를 씁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지지하는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러시아, 중국, 브라질, 아랍연맹과 터키 등이 지지의사를 밝혔고, BBC 조사 결과 세계인의 절반이 팔레스타인 독립을 지지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에서도 5천 여명의 국민들이 지지시위에 나섰습니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승인은 단순히 한 국가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세계 국제뉴스의 약 18%를 차지하는 곳, 한반도와 함께 세계 무장력이 가장 집중되어 있는 곳이 바로 팔레스타인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가장 아픈 자리인 팔레스타인이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은 평화의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저의 조국인 한국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2006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도, 2009년 UN의 팔레스타인 평화결의에도 기권하며 침묵으로 동조해왔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에 잔혹한 무기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아프간, 이라크에는 유례없는 재파병과 파병연장을 감행하며 강대국의 불의한 전쟁을 돕고 있습니다.
국익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무기로 얻는 경제성장이 얼마나 끔찍하고, 전쟁으로 유지하는 평화가 얼마나 불안한 것인지 총장님이 더욱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매일 국경 너머 친구들 앞에 죄인이 되어가는 저는 떳떳하게 코리아의 청년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지구마을 이웃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차별 없이 어우러져 사는 것이라 배워왔습니다. 그래서 총장님이 가난과 전쟁, 자연재해로 고통 받고 있는 나라들을 방문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깊이 응원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글로벌 코리아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총장님께, 지금 저는 '진정한 글로벌'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식민지배와 전쟁, 가난을 넘어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기적의 나라, 그리고 유엔사무총장까지 배출한 글로벌 코리아의 역할이란 무엇입니까? 한국이 경제강국의 책임은 방관한 채, '작은 제국주의'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는 두렵습니다.
지난 '아랍의 봄' 이후 처음 열리는 이번 UN총회에서 한국과 반기문사무총장님은 또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팔레스타인의 독립이 불투명해진 지금, 세계인들의 눈과 귀는 반기문 사무총장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만약 팔레스타인의 독립이 이스라엘의 불법점령을 지원해온 미국의 반대로 각국의 의견을 모으기도 전에 부결된다면 세계 평화를 중재하는 UN의 임무와 위상은 더 이상 신뢰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지지하는 것은 UN사무총장으로서의 책임입니다. UN 헌장에도 나와 있듯 'UN사무총장은 국제평화와 안전이 위협 받는 사항에 대해 정치적 재량권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조정할 수 있고 안보리에 영향력을 행사할 권한과 책임'을 가집니다. 총장님은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지지하지만 결과는 회원국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중대한 정치적 사안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국제적 역학관계가 아닌 분명한 '옳고 그름의 문제'입니다. 총장님께서 올해 3월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은 종식되어야 한다"고 하신 것처럼, 이번에도 '정의'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은 입장을 명확히 밝혀주십시오. 다수결의 원칙이 아닌 지구시대 한 인간으로서 소신을 지켜주십시오.
UN 반기문 사무총장님과 한국의 선택은 인류역사에 길이 남아 평가 받을 것입니다. 총장님을 바라보며 꿈을 키우는 청년들에 대한 신뢰를 지켜주시기를 간곡히 말씀 드립니다. 어려운 현장에서 늘 건강 조심하십시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슬기 (대학생나눔문화,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 통번역학과 3학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