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놈의 인생살이 참 다양합니다. 때로 고달프고 힘에 부치다가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산에 비유하나 봅니다.
삶이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듯 부부의 삶도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왜냐? 나이 들면 추억을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추억은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더군요. 꼭 결정적일 때 좋지 않은 한 방이 있어 코너로 몰리기 일쑤입니다.
부부여행과 가족여행을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여행을 떠올리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나이 들어 수시로 꺼내 먹을 수 있는 고운 추억이 있다면서. 여기에 좋지 않은 추억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잠자리와 관련된 쓰라린 추억입니다. '여행은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나는 게 여행이다'란 생각 때문에 여행갈 때마다 숙소 잡느라 고생했거든요. 그걸 아내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끄집어내 속을 뒤집는데 미칠 지경입니다.
"당신 정말 나빴어. 부부 여행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가도 바퀴벌레 나오는 그 여인숙만 생각하면 꿈에 다시 나올까봐 가슴이 섬뜩해."
3년 전 부부 단풍 여행에서 아내에게 박힌 나쁜 추억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그때 드라마 촬영과 전국 규모의 체육대회가 있어 대여섯 시간 동안 숙소를 찾아 헤매다 겨우 잡은 게 여인숙 같은 여관이었습니다.
나쁜 기억을 좋은 추억으로 바꿀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만회해야 두고두고 구박받지 않을 것 같아서요. 또한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바꿔주는 것도 부부 간 해야 할 노력 중 하나입니다.
지난 금요일부터 2박3일 설악산 가족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아내의 나쁜 추억을 좋은 추억으로 바꿀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하여, 떠나기 전부터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숙소 예약과 코스 선정 등 만반의 준비를 하였지요.
8시간을 달려 자정이 넘어 도착한 곳이 설악산에 있는 A리조트입니다. 숙소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아내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궁금했습니다. 아이들이 먼저 한마디 하더군요.
"와~, 아빠 최고!"
아이들은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워 만족을 표시했습니다. 모른 척 아내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당신 이번에 완전 신경 썼네. 고마워요. 이제 좋은 추억만 기억할게요."
나오는 말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아내와의 쓰라린 몹쓸 여관의 추억을 한방에 만회한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살피니 권금성과 울산바위가 눈에 들어오는 전망도 아주 끝내주더군요. 오랜만에 가장 위신 제대로 세웠습니다.
단풍은 아직 전이더군요. 10월이 되어야 아름다운 단풍을 선보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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