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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덜의 탄생
▲ 둘째 산들이 아덜의 탄생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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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의 시작

5월 말, 둘째 산들이는 아직 엄마 뱃속에서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출산 예정일은 31일로 아직 여유가 있는 편이었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둘째는 대게 일찍 나온다고 이야기했던 터라 혹여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우리 부부는 조금씩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예정일보다 늦게 나온다는 첫째 까꿍이도 3일 일찍 나왔는데, 왜 이 녀석은 꿈쩍도 않는지. 엄마 뱃속이 그렇게 아늑하고 좋은가?

특히 아내의 초조함은 나와 격이 달랐다. 나야 아내의 출산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조금 늦으면 늦겠거니 했지만, 아내는 이러다가 태아가 너무 커져서 자연분만을 못하는 것이 아니냐며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첫째도 자연분만을 하기 위해 역아(출산할 때, 머리부터 나오는 정상의 경우와는 달리 다리부터 나온 아이)까지 돌린 그녀 아니던가. 게다가 둘째는 첫째와 달리 사내아이로서 조금 더 크다고 하니 걱정될 수밖에.

괴로워하는 아내
▲ 진통의 시작 괴로워하는 아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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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진통은 30일 밤에 찾아왔다. 며칠 전부터 가진통을 겪던 아내가 이번에는 진진통 같다며 잔뜩 인상을 쓰며 허리를 구부린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다. 이미 한 번 겪은 바 있지만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운 아내의 고통스러운 표정.

나는 아내게 다급하게 이야기했다. 지금 당장 조산원으로 가자고. 물론 속마음이야 안전하게 산부인과로 가고 싶었지만, 첫째도 조산원에서 낳은 아내가 병원에 갈 리는 만무한 터, 그러니 첫째와 마찬가지로 조산원에라도 가자. 제발!

그러나 아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꼭 집에서 낳겠노라고. 아내가 가정출산을 고집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가장 편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고 싶다는 것이었다. 소위 출산 3종 세트라고 하는 관장, 제모, 회음부 절개를 안 하겠다는 것은 기본이요(조산원에서는 이 모든 것들을 지양하고 있으며 요즘에는 이를 하지 않는 산부인과도 꽤 있다고 한다), 익숙한 공간에서 아이를 낳아 산모나 태아, 그리고 첫째에게 가해지는 정신적인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었다. 병원보다는 조산원이, 조산원보다는 집이 훨씬 마음 편하다는 아내.

가정출산에 대한 아내의 의지는, 집에서 낳겠다고 했다가 결국 조산원으로 향했던 첫째 때와는 그 차원이 달라 보였다. 훨씬 더 결연했고 굳건해 보였다. 이미 첫째를 낳아봤으니 출산의 두려움이 이전보다 덜한 탓이었다. 게다가 둘째는 이미 첫째가 길을 터 놓아 낳기가 훨씬 수월하다지 않는가.

있는 힘껏 다 하는 아내
▲ 힘주는 아내 있는 힘껏 다 하는 아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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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난 아내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래, 당사자가 기어이 집에서 아이를 낳겠다는데 남편인 내가 어찌 그 고집을 꺾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솔직히 나 역시 첫째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둘째를 집에서 낳아도 괜찮을 듯 싶었다. 어차피 조산사를 부를 것이고,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근처 산부인과에 가면 될 것이고. 인류가 언제부터 아이를 병원에서 낳았던가. 그것이 절대적인 냥 생각하는 것이 비정상이지.

아내는 조산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산모의 상황을 전해들은 조산사는 아직도 여유가 있다며 아내를 진정시킨 뒤 새벽 1시 곧바로 차를 몰고 집으로 와 주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지만 아내는 친정 엄마가 온 마냥 안심하는 듯했다. 그래 출산이란 일생일대의 경험을 공유했으니 그 인연의 끈끈함이 오죽하겠는가.

난 조산사가 온다는 사실을 듣고 잠자리에 들었다. 계속되는 산통으로 괴로워하는 아내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밤새 그 옆에서 뜬 눈으로 지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혹여 있을 지도 모르는 비상사태를 대비해서 눈을 좀 붙이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조산사 역시도 모든 부부에게 그러라 충고해 주었고, 난 충실히 그 조언을 따랐다.

출산의 고통

막상 잠을 청했지만 아내를 두고 편히 잠을 잘 수는 없었다. 전전반측. 자는 둥 마는 둥 그렇게 맞이한 이른 아침. 아내는 여전히 정기적인 진통에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그 주기는 짧아져 있었고 그만큼 강도는 세져 있었다. 계속되는 아픔에 정신을 못 차리는 아내. 첫째 때도 그랬듯이 내가 대신 아프면 좋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안 그래도 아픈 걸 잘 못 참는 아내보다야 내가 낫겠지.

거실의 부산스러움 때문일까? 안방에서 곤히 자고 있던 까꿍이가 눈을 비비며 걸어 나왔다. 엄마는 고통스러워하고, 못 보던 조산사가 쇼파에 앉아 있으니 잠을 덜 깬 상태에서 꽤 놀랄 만 하건만 녀석은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조산사 옆에 턱 하니 앉아 재롱을 떨기 시작했다. 설마 이 녀석 태어나던 순간에 본 조산사를 기억하는가?

어리둥절한 까꿍이
▲ 엄마 왜 그래? 어리둥절한 까꿍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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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린 눈에도 엄마의 상태가 이상해 보였는지 아이는 엄마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평소 자기만 보면 장난을 치거나 웃음을 지어 보이던 엄마가 있는 대로 인상을 찡그리고 괴로워하니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아내는 아이의 울음보가 터지기 전에 까꿍이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쥐어주었고, 평소 스마트폰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아이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에 대한 관심을 걷어들였다.

그렇게 1시간쯤 흘렀을까. 아내의 통증을 지켜보던 조산사가 이제 안방으로 들어가 누워서 힘을 주자고 했다. 자궁문도 열릴 만큼 열렸고, 이제는 아내와 나 모두가 힘을 합쳐 아이를 낳을 시간이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안방으로 들어가 우리가 평소 누워 잠자는 매트 위에 누었고, 난 그 머리맡에서 아내의 양 다리를 붙잡고 내 쪽으로 당기기 시작했으며, 조산사는 나의 건너편에서 힘 주라는 구령과 함께 아내의 자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들이 딸보다 낳기 힘들다는 말이 있듯이 아내는 첫째 때보다 고통스러워했지만, 출산을 두 번째 겪는 나는 비교적 여유만만이었다. 첫째 때는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었건만 둘째 때는 아내의 비명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상체를 지탱한 채 손을 쑥 뻗어 스마트폰으로 둘째 탄생의 순간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물론 시간이 지난 뒤 아내는 그런 남편이 얄미웠다고 회상했지만, 어쨌든 남편의 입장으로서, 아빠의 입장으로서 그 기적의 시간은 꼭 담아두고 싶었다.

엄마품은 내꺼야!
▲ 엄마 이건 뭐야 엄마품은 내꺼야!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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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밖에서 홀로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있던 첫째가 엄마의 비명소리에 안방으로 들어온 것은. 녀석은 들어오자마자 낯선 분위기에 울 듯 말 듯 인상을 쓰더니, 아내 다리를 붙잡고 힘을 주던 나의 팔꿈치에 얻어맞자마자 세상이 떠나갈 듯 울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온몸으로 울어대는 까꿍이. 엄마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지금까지 녀석을 키워온 18개월 동안 그렇게 서러운 울음 소리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아내나 나나 그런 까꿍이를 위로해줄 정신은 없었다. 아내는 이미 산통으로 말미암아 정신을 놔버린 상태였고, 그런 아내를 붙잡은 나 역시 모든 신경을 아내와 둘째한테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울음범벅이 되어서 마냥 엄마한테 매달리는 까꿍이.

까꿍아, 미안. 그러나 그게 첫째가 짊어져야 할 몫이란다. 아마도 이제 이런 일들이 꽤 자주 벌어질 거야. 그래도 네가 누나니까 조금 더 덤덤하고 씩씩하게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여주길 바란다. 대신 넌 말 잘 듣는 동생을 하나 갖게 되잖니.

아내의 비명소리와 첫째의 울음소리와 나의 구호소리, 그리고 조산사의 차분한 목소리가 묘하게 울리던 5월 31일의 우리 안방.

둘째 산들이의 탄생... 아, 위대한 모성이여!

곤히 잠에 든 아기
▲ 갓 태어난 둘째 곤히 잠에 든 아기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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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내의 다리 사이로 둘째의 까만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내의 비명소리는 더욱 날카로워졌고 첫째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여보 조금만 더 힘을 내! 이제 곧 나온다! 우리 산들이도 고생이 많다. 조금만 힘내라. 엄마, 아빠가 이렇게 기다리고 있단다.

첫째와 달리 둘째는 머리가 나온 이후로도 꽤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며 힘을 주는 아내. 대체 저 고통의 깊이는 얼마나 되는 걸까. 아내는 도저히 안 되겠다며 잠시 쉬는가 싶더니 다시 힘을 주었고 드디어 '꾸물텅' 하는 느낌과 함께 산들이가 물 흐르듯이 흘러나왔다. 까꿍이와 달리 녀석은 눈을 감고 있었고 세상 떠나갈 듯 울어 젖혔다. 지금 시각 오전 9시 2분.

조산사는 흡입구로 신생아의 입과 코를 살핀 다음 산들이를 아내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신생아에게 가장 불안한 이 찰나, 가장 필요한 것은 엄마 심장소리라지 않던가. 아기는 낯익은 심장소리에 이내 진정한 듯 울음을 그쳤으나 문제는 까꿍이었다. 엄마 뱃속에서 무언가가 나와 꼬물거려 그것만 해도 겁이 나 죽겠는데, 그것이 자기 것이라 여기던 엄마 품에 들어서니 더 놀랄 수밖에. 녀석은 더욱더 서럽고 가열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엄마를 뺏길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연유한 그 본능적인 울음. 덕분에 울음을 그친 둘째도 다시 울어댔다.

두 아이에게 젖을 물린 아내
▲ 나는 엄마다 두 아이에게 젖을 물린 아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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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경쟁자의 등장
▲ 누구냐 넌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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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꿍이를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엄마의 젖뿐이었다. 아내는 갓 태어난 산들이와 까꿍이 두 녀석 모두에게 가슴 한 쪽씩을 내어주었다. 지금 막 출산을 해서 힘들 텐데도 아내는 겨우 몸을 일으켜 자식들을 온몸으로 진정시켰다. 위대한 모성이여.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본 아내의 모습 중 가장 본능적이면서도 숭고한 자태였다.
처음에는 반대편 젖을 빨고 있던 산들이를 한 손으로 밀어내던 까꿍이도 다행히 엄마 젖을 빨면서 안정을 찾는 듯했다. 엄마 젖을 빨며 물끄러미 동생을 쳐다보는 까꿍이. 저 순간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산들이가 자신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과연 지금의 기억이 녀석의 무의식에서 어떤 작용을 일으킬까? 우리의 바램대로 가정출산이 녀석의 충격을 최소화시켰을까?

30분쯤 지나자 까꿍이가 엄마 젖에서 떨어지더니 동생을 두어 번 쓰다듬은 뒤 거실로 나갔다. 아침부터 우느라 진을 다 뺐는지 요구르트와 쥬스를 허겁지겁 빨아들이는 녀석. 네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는 마냥 기쁘기만 했건만 둘째가 나올 때는 네가 안쓰러운 마음이 반이구나. 부디 좀 더 일찍 이 현실을, 우리가 네 식구임을 받아주기를. 우리 부모님도 동생이 나올 때 나와 같은 생각을 하셨겠거니.

지쳐버린 모자녀
▲ 어렵게 찾아온 평화 지쳐버린 모자녀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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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맥진 누워있는 아내를 안방에 놔둔 채 산들이를 거실로 데려와 몸무게 등을 쟀다. 55cm에 3.2kg의 건강한 아기. 아들! 내가 네 애비다!

덧붙이는 글 | 엄마의 관점으로 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보시고 싶으신 분은 http://www.cyworld.com/karam79/7345547
로 들어오세요.



태그:#가정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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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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