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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일이면 경기도교육청에서 경기도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한 지 1주년이 된다. 지난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제정·공포되자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생활인권규정을 개정하고 인권교육을 실시하는 등 가시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인권조례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도 함께 했다. 서울과 전북, 광주, 경남 등의 지역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경기도학생인권조례 1주년을 맞아 교사·학생·학부모 등이 학교 현장에서 보고 느낀 인권조례 체험기를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말]
몇 년 전, 아니 불과 작년 봄까지만 해도 나는 참 순종적이고 눈치 보는 '착한 학생'이었다. 불편하고 재수 없긴 하지만, 권력자인 교사들에게 밉보여서 피 보는 일이 나에겐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참 열심히 "쌤~ 쌤~"하면서 지각도 하지 않고, 무단결석도 하지 않고, 야자도 빠지지 않고, 염색도 하지 않는 참 말 잘 듣는 '학생'이었다.

그런 내가 '인권'을 만났다. 진보교육감이 후보로 등장하고, '학생인권조례'가 공약으로 등장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나는 학교 '안'의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인권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인권을 처음 만났을 때 사실은 의아해 했었다. '인권? 그게 나랑 무슨 상관? 별로 스펙도 안 될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하지만, 인권은 나랑 정말 어울리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었다('인권'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그나마 덜 꼰대인 교사와 인권동아리를 하면서도 참 혼란스러웠다.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학교 문화는 이미 내 안에 스며있었고,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을 보내왔다 (인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아마 고등학교 3년도 그렇게 지냈겠지만). 나름대로 학교로부터 덜 상처받기 위해 취한 전략 중 하나가 내재화였다. 소수에게 유난히 쌀쌀맞고 배척하는 학교에서 학생인권을 얘기하는 발칙한 사람이 된다면, 학교는 또 교육을 이유로 체벌이라는 폭력을 행사할 것이다. 학교에서 얘기하는 교육은 절대로 '유별나고 튀는 사람이 되지 말 것' 이니까.

사실 그쯤이면 학교는 우리를 다 똑같은 상품으로 '사육'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불만 좀 가지면 '그 정도도 못 이겨내고 어떻게 사회에 나오려고 그래?'라고 하더라.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다. 학교나 한국사회나 경쟁 앞에서 인권 따위는 어떻게 되도 상관없고, 우리를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은 매한가지였으니까. 학교가 늘 항상 얘기했다. 1등급 소가 되어서 어느 사육장에서 길러졌는지 등등의 스펙을 갖춘 후 대기업에 팔려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고 성공이라고.

나는 학교가 얘기했던 '교육'이란 것들을 모두 받아들인 채 긴 시간을 보내왔고, 그 모든 것들이 부정 받았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다시 한 번 인권이 얘기해주었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고. 근 10년간 학교에서 익혀온 눈치 보는 법, 튀지 않는 법, 경쟁하는 법, 침묵 하는 법 같은 것들이 부정 당하는 대신 난 새로운 것을 받았다. 그런 것들이 교육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나를 긍정 받았다. 인권에게서 힘을 얻은 나는 지난해 다니던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인권수업 중에 벌어진, 인권적이지 않은 사례

 영화 <투사부일체>의 한 장면.
영화 <투사부일체>의 한 장면. ⓒ (주)시네마 제니스

자퇴 후, 청소년인권단체에서 활동을 하는 동안 경기도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서울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가 성사되었다. 아직도 보수언론에서는 쉼없이 교권침해를 얘기하고, '무서운 10대들' 어쩌고 하는 보도를 계속 쏟아 낸다. 참 혼란스럽다. 이 와중에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 1년째에 접어든다고 한다. 시간 정말 빠르다!

시간 빠르다고 느낄 만도 하다.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여기저기에서 학생인권조례 시대를 맞이하는 교육이나 강연 요청이 들어왔고 실제로 몇 번 가기도 했었다(이제는 '청소년'인 활동가가 인권 교육을 와달라는 요청을 종종 듣기도 한다, 참 신기하다!). 그 때마다 나는 또 경험하지 못했던 혼란스러움을 경험하게 된다.

학교 혹은 인권에 관심 있는 교사가 일방적으로 신청해놓은 인권교육 때문에 억지로 책상에 앉아 꾸역꾸역 시간을 때우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그런 학생들을 보자니 지난날 정말 듣기 싫은 고등과학 수업을 듣고 있는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진짜 미안했다. '그대들에게 인권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인권을 얘기해서 미안해요!'

실제로 어떤 교육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강제로 인권교육을 듣게 되는 학생들이 안쓰럽고 미안해서 "교육을 듣는 것을 원치 않으면 듣지 않아도 좋아요~"라고 얘기하고 교육을 잘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복도를 지나가는 교사가 딴짓(카드게임)하는 학생을 보고 불러냈다.

"야, 이 XX 너 나와 봐".

따라가 보니 학생들이 교무실에 불려가서 열중쉬어 자세로 교사의 꾸지람을 듣고 있었다. "수업을 듣는데 그런 태도가 말이 되냐? 학교 안에서는 그런 게임을 해서는 안 돼." 인권교육을 진행하는데도 이렇게 인권적이지 않은 사례들이 실제로 교실 안에서 자주 일어나기도 한다. 이럴 때면 참 당혹스럽고 혼란스럽다. 하루에 반나절을 책상에 앉아서 가만히 수업을 '듣기만'하는데 피곤하고 집중이 안 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사실 교육(수업)이 재미없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학생들도 인간이므로 '인권'이 있는 것이다

그이들도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학생인권조례는 제정이 되었지만, 아직도 '조례보다 내가 더 위에 있다'라며 폭력이 교육인 줄 아는 교사들에게 상처받고, '어린 것들이 무슨 인권? 요즘 학생들 무서우니 당연히 손 좀 봐줘야지!'라고 쉽게 얘기하는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학생인권에서 가해자인 학교가 우습게도 학생인권을 얘기하고 훈계하듯 교육을 신청해버리고 무슨 교화 받는 것 마냥 인권교육이란 걸 듣게 하는데, 이 상황에서 이미 그들의 인권은 '삭제' 당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있기 때문에, 그런 법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인권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학생도 인간이므로 '인권'이 있는 것이다. 이 간단한 명제를 학교는 왜 이렇게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걸까? 뭔가 그들의 마음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나도 알 수가 없다. 어떻게 호소해도 듣질 않는다.

'대충 인권활동가한테 강연 요청해놓고, 강제로 학생들 앉혀놓지 말아라. 교육 몇 번 진행하는 것이 학생인권조례 맞이라면, 그런 맞이는 필요 없다! 사실 조례 이전에도 우리들에게 인권은 있었다. 당신들이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꼭꼭 숨겨 놓고 없는 척 해서 없는 건 줄 알았을 뿐이지! 뭐가 그렇게 당당한 거야?'

사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뚝딱'소리와 함께 학교현장에서 인권적인 교육이 실현 될 줄 알았는데, 그건 멍청한 기대였다. 그런 기대는 몇 번의 교육으로 비참하게 무너졌다. 생각해보면 항상 우리에게 폭력을 일삼으면서 우리를 사육하던 학교가 갑자기 '학생인권조례'를 들고 와서 체벌도 하지 않고, 자 너희에게 권리와 자유를 주겠어!'라고 말하는 건 좀 이상하긴 하다. 한 번도 그 권리와 자유를 누려 본 적 없는 학생들이 아직까지 조례를 두발자유, 체벌금지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지금까지의 사육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다. 그것은 또 많은 인권 활동가들이 학교 현장으로 교육을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생인권이 통하는 진리가 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2011학년도 수능시험이 100일 앞으로 다가온 2010년 8월 9일 밤 서울 배화여자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들이 방학 중임에도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2011학년도 수능시험이 100일 앞으로 다가온 2010년 8월 9일 밤 서울 배화여자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들이 방학 중임에도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학교가 학생인권조례를 두발자유, 체벌금지 등 몇 가지 법이나 규칙으로써 그저 준수하고 따르는 것에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슨 소리냐면, 학생인권조례를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해온 사람들의 인권에 대한 고민은 그저 몇 가지 조항으로 끝나지 않는다.

학생을 때리지 않고 머리 길이를 어디까지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생을 동등한 인간으로서 대하기 위해 매 순간순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사소한 것에서부터 거의 수직적이고 반인권적인 문화로 가득찬 학교이기 때문에, 그런 학교 안에서 학생인권을 얘기하는 것은 체벌금지 두발자유 등 몇 가지 이슈화된 문제들을 넘어서 매 순간순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사나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학생들도 권리의 주체로 함께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이건 당연한 이야기를 한 것에 그치지 않아서 죄송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놓고도 이 혼란스러운 1주년에 대해서 대책을 얘기해보라고 하면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자위일 수도 있겠지만, 이 혼란스러움은 어느 정도 당연한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인권을 처음 만났을 그때와 같은 혼란스러움. 지난날의 사육들을 부정하고, 학생인권조례를 토대로 한 교육들을 긍정 하는 과정에 필연적인 진통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 혼란스러움을 좀 더 겪고 나면 '가장 인권적인 것이 교육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학생인권을 긍정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나는 믿는다. 학교 안팎에서 학생인권이 통하는 진리가 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지금은 조금 혼란스러워도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아무쪼록 괜찮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민다영 기자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경기인권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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