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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생명평화축제는 강정포구에서 진행된다. 포구로 내려가는 길에 노란 깃발이 걸려있는데, 절기와 맞아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2차 생명평화축제는 강정포구에서 진행된다. 포구로 내려가는 길에 노란 깃발이 걸려있는데, 절기와 맞아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 장태욱

 

강정마을 생명평화축제를 하루 앞둔 9월 30일 경찰은 육지부에서 병력 700여 명을 제주로 불러들였다. 이들이 목포에서 배를 타고 와서 제주에 상륙하면서 행사를 준비하는 측에서는 다시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되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행사를 치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기대는 물거품이 되어 돌아왔다. 

 

축제가 열리는 10월 첫날 아침, 강정마을에 대규모 경찰병력이 주둔하면서 마을에 삼엄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대규모 병력이 마을 구석구석에 배치되어 경비를 펼치는 사이,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손님'들이 삼삼오오 마을로 들어왔다.

 

4년 넘는 기간 동안 정부를 상대로 싸웠던 주민들이라, 이젠 이런 삼엄한 분위기마저 익숙한 눈치다.

 

 생명평화축제를 앞두고 경찰이 다시 마을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했다.
생명평화축제를 앞두고 경찰이 다시 마을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했다. ⓒ 장태욱

 

지난 9월 2일, 구럼비 해안으로 통하는 농로를 빼앗긴 이래로 평화행사의 구심이 되었던 코사마트 사거리에서 평화 봉사자들에게 행사가 진행될 포구로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리고 해군기지 문제해결과 구속자 석방을 위한 서명도 받고 있었다.

 

포구로 내려가는 길에는 '해군기지 결사반대'라고 적힌 노란 깃발이 줄지어 나부끼는데, 가을로 접어든 절기와도 분위기가 잘 맞았다.

 

평화비행기는 무산이 되었고, 평화버스가 남았다. 오후 4시부터 5시 사이에 도내 곳곳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이 포구에 도착하려면 대략 6시 전후가 될 것이다. 행사를 준비한 측에서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 마무리 하려고 손길이 분주하기만 하다.

 

"이거 보라,  이 많은 경찰들을 뭣 하러 불러들였는지 모르겠네. 대한민국에 경찰이 남아도나?"

 

길에서 만난 팔순에 가까운 마을 어르신이 늘어놓은 푸념이다. 본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국가가 감시한다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주민들이 국가를 향해 대화 좀 하자고 했을 때 성의 있게 나섰다면 이런 볼썽사나운 장면은 만들지 않아도 될 것을.

 

 자원봉사자 한제순씨가 마을의 평화를 위해 손수 준비한 허브를 팔고 있다.
자원봉사자 한제순씨가 마을의 평화를 위해 손수 준비한 허브를 팔고 있다. ⓒ 장태욱

 

포구 입구에 화분을 팔고 있는 봉사자들이 눈에 띄었다. 자신을 제주환경운동연합 회원이라고 소개한 한제순씨가 대학생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장미허브를 팔고 있었다.

 

"허부를 꺾꽂이해서 화분에 심었기 때문에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예요. 화분 속에서 허부가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강정마을에 평화가 뿌리를 내렸으면 좋겠네요."

 

한씨는 허브에 관심이 많은데, 이 봉사활동을 위해 화방에서 자비를 들여 허브를 샀다고 했다. 화분 당 500원이라 이윤이 남을 리 없지만, 사람들과 만나서 평화의 마음을 나누는 것만도 행복하다고 했다.

 

포구 안쪽 천막에서 민주노총 제주지역본부 고대언 본부장이 김영삼 마을 청년회장과 식재료를 챙기고 있다. 1일 포장마차를 준비하는데, 하루 매출 목표가 100만 원이다. 준비된 어묵 한 그릇을 지인과 나눠먹었는데, 국물 맛이 기대 이상이다. 고 본부장은 지난여름부터 몇 달째 강정마을로 출근해왔다. '중덕이 아빠' 김종완씨가 구속을 당한 이래로, 고본부장이 봉사자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면서, 그의 요리솜씨가 마을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옆에서는 부녀회 회원들이 분식 코너를 운영할 계획이다. 회원들은 라면과 김밥을 준비해서 팔 계획인데, 컵라면이 1000원, 김밥이 2000원이라고 했다. "김밥이 너무 비싸지 않냐"고 물었더니, "마을의 평화기금에 쓸 돈이나 아까워하지 말고 많이 샀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기념품을 파는 옆에서 대학생들이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니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기념품을 파는 옆에서 대학생들이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니다. ⓒ 장태욱

 

포구의 계류장 앞에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지난번 1차 생명평화축제 때와 마찬가지로 티셔츠와 목걸이 등을 팔고 있었는데, 여기서도 자원봉사에 나선 대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자신을 경희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박아무개라고 소개한 대학생에게 강정마을을 방문하게 된 사연을 물었다.

 

"강정마을의 소식을 인터넷과 트위터를 통해 들었어요.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교 안에서도 친구들과 이 마을의 문제에 대해 얘기도 나눴습니다. 마침 마을에서 평화대회가 열린다고 해서 방문했습니다."

 

박 군은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 4학년이다. 취업이 더 시급한 문제가 아니냐는 물음에 박 군은 "취업은 어차피 어디든 하게 될 거고, 중요한 것은 내가 즐겁고 행복하고 보람을 느끼는 역할을 찾아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무대를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무대 너머로 범섬이 보인다. 구럼비 바위와 주민을 갈라놓은 펜스만 없다면 마을은 다시 평화로 물들 것이다.
무대를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무대 너머로 범섬이 보인다. 구럼비 바위와 주민을 갈라놓은 펜스만 없다면 마을은 다시 평화로 물들 것이다. ⓒ 장태욱

 

무대에는 아직도 준비해야 할 게 많은 눈치다. 무대를 꾸미는 일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무대에 걸린 현수막은 가을바람에 펄럭이는데 그 소리가 경쾌하다. 멀리 범섬과 구럼비 바위가 내다보이는데, 그럼비 바위를 둘러싼 펜스만 없다면 영락없이 평화다.

 

무대에 나부끼는 현수막엔 '소리 질러, 펜스를 날려'라고 적혀있다. 펜스, 평화와 마을을 갈라놓는 저 펜스만 날리면 된다.


#강정마을#해군기지#생명평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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