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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일 4대강 공사 완공행사를 연다고 하지만,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서는 '한 삽'도 뜨지 못했습니다. 경기도는 두물머리 유기농지를 그대로 둘 수 없다면서 행정대집행을 위해 3차 계고장을 발송했지만, 오는 15일 두물머리 유기농 공동체는 강변가요제를 엽니다. 경기도가 강제집행을 하지 않는 한 '두물머리 통신'을 계속 올릴 예정입니다. <기자 말>
 

자전거에서 내린 농부는 기지개를 켰다. 길게 하품을 하며 자전거를 세운다. 물안개가 그의 얼굴을 덮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신발을 갈아 신으며 잠긴 목을 풀었다.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터벅. 터벅.

 

그가 이윽고, 물안개 사이로 사라졌다. 그가 하우스로 향하는 내내 고무장화에 흙탕물이 튀었다. 그는 털썩 주저앉아서 녹색 잎들을 쓰다듬었다. 노래를 부르며 농부는 눈을 맞추듯이 바라보았다. 길게 자란 풀들이 그의 몸에 닿아 바스락거렸다. 온 세상이 잠이 든 것처럼 고요했다. 바람은 차고, 공기는 가볍게 떠오르듯이 흩어지곤 했다.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고 저 멀리, 강 저편에서 태양이 차오르는 중이었다.

 

그는 오래된 기억들을 더듬었다. 낡고 부서져서 잘 떠오르지 않던 이름들이 생각났다. 바로 옆에서, 바로 뒤에서 함께 농사짓던 사람들의 얼굴들. 목소리와 걸음걸이까지. 그의 지난 몇 년간이 연기처럼 사라진 걸까. 몹시, 희미했다. 땅을 짚고 일어서던 그가 어느 한 사람의 이름을 또 다시 떠올린다. 그립기 때문이었다.

 

그는 담배를 꺼내고 불을 붙이고, 잠시 긴 한숨을 쉬었다.

 

한참을 일하던 그가 아우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한다. 아우들에게 막걸리를 마시자고 외친다. 이내 다른 하우스에서 몇 사람의 농부가 걸어나왔다. 때마침 태양은 눈이 부시게 빛이 난다.

 

"어여 와. 어여."

 

그가 또 다시 외친다. 그의 얼굴에 가득한 주름은 웃음이 되어 다시 사람들의 이름으로 새겨진다.

 

둘러앉은 농부들의 어깨에 간밤의 노곤함이 아직 남아있다. 술잔을 건네고 술을 따르고, 몇 번의 농담을 주고받으면, 언제나처럼 그때의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땅을 지키려 애쓰던 어느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눈동자에 품고 떨리는 눈으로 말한다.

 

"처음에는 많았던 사람들. 이름조차 다 외지 못했지. 4대강 싸움 한다고 고생을 그렇게 같이해 놓고 1년이 지나니까 우수수 떨어져나가고, 다시 1년이 지나니까 그나마도 다 떨어져나갔어. 내 살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야. 내가 좋아하는 아우들, 형들 다 떠나버렸어. 그것도 억지로. 강변을 시멘트랑 콘크리트로 덮겠다고 말이지.

 

우리는 떠나기 싫었다기보다 헤어지기가 싫었어. 그게 사는 낙이었거든. 그저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이 웃고 울면서 살았던 사람들이잖아. 그래서 그게 그렇게 힘들더라고. '형, 나 그만 가요. 우리 그만 하는 게 어떻겠어?'하고 말할 때마다 속이 뒤집어지겠더라고. '우리 그냥 여기서 끝까지 변치 말고 같이 살면 안 될까?' 겨우겨우 목구멍을 넘어온 그 말 하는데 왜 그리 설움이 북받치는지.

 

정말 서러워 죽겠는데, 이것들이 뭐? 발암 물질이 나온다고 지껄이질 않나. 경찰들을 떼거지로 몰고 오지 않나. 유기농 다 죽여놓고 세계유기농대회 한다고 하질 않나. 툭하면 벌금 때려. 철거 계고장 보내지, 재판하라고 하지. 또 부르는 데는 왜 그리 많아? 국회, 경찰서, 검찰, 법원, 관공서. 내 살면서 안 가본 데 없이 다 가봤어. 난 그냥 농사꾼이지, 범죄자가 아니여. 그런데 툭하면 경찰이 조사 받으러 오라고 해.

 

대체 내가 뭘 잘못했어? 24억이나 들여서 여기 이 좋은 땅 갈아엎고 공원에 자전거 도로 만든다고 하는 거 반대하는 게 뭐가 잘못이냔 말이여.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이렇게 헤어져야 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니께. 막말로 해서 10년, 20년 함께 지낸 사람들하고 지네들도 헤어져 보라고 해봐. 지들은 좋겠어?

 

800가구가 자진 철거했으니까 4가구 남은 것 얼른 나가라고 또 지랄하던데, 그게 어째서 자진철거냔 말이야. 어쩔 수 없이 이별하는 거지. 철거는 곧 이별이여. 내가 사랑하는 땅과 이별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고 내가 원하는 삶과 이별하는 거라니께. 안 그려?"

 

술잔이 빈다. 해가 뜨거워지고 하우스 안은 점점 무더워지고 있었다. 농부가 노래를 부른다. 처음에는 한 농부. 그 다음에는 두 농부. 그 다음에는 모든 농부가 쩌렁쩌렁 노래한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농사짓고, 그게 죄냐고 노래한다. 그립기 때문이다. 평화를 농사짓던 한때, 모두 모이면 축구공을 찰 수 있었던 어느 저녁 무렵과 오늘도 어제처럼 변함없이 마주할 수 있어서 좋았던 어느 새벽 무렵들이.

 

노래하는 농부의 입에서 술 냄새가 폴폴 나기 시작할 즈음, 눈에 맺힌 눈물이 또 점차 기억 속에서 지워질 누군가의 이름처럼, 마치 이별의 슬픔처럼, 가슴에 스미고 있다.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는 그들의 눈은 말한다. 우리는, 마지막 남은 우리는 절대 헤어질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이별하지 않는다. 이 땅이 곧 나고, 네가 곧 나고, 내가 곧 너다. 우리 그때도 지금처럼 함께 춤추자. 웃든, 울든. 다함께 춤추면 좋겠다고, 그들의 눈은 말하고 있다. 눈물이 나면 좋겠다고, 그들의 눈이 말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 봄눈별: 두물머리와 한 몸이 되어버린 음악가. 우연한 기회에 두물머리를 찾았다가 두물머리가 되었다. 현재 혜화동 이음책방에서 그가 찍은 두물머리 사진들이 전시 중이다.
* 강변가요제 홈페이지: http://riverun.org/dmf


태그:#4대강사업, #두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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