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겉그림 〈가격은 없다〉
▲ 책겉그림 〈가격은 없다〉
ⓒ 동녘사이언스

관련사진보기

본래 싸움은 말리고 물건 흥정은 부추기라고 했던가? 그런데 옛날에야 그런 일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게 우물에서 숭늉 찾기와 맞먹는다. 재래시장에서도 그런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본래의 가격 값에 'X'자로 빨간 선을 긋고 그 옆이나 아래에 제법 할인된 가격을 붙여 놓고 파는 까닭이다. 그걸 보고 누가 더 깎을 수 있겠는가. 헌데 이를 어쩌랴? 그게 모두 심리적인 상술에 기인된 조작이라는 걸.

윌리엄 파운드스톤의 <가격은 없다>는 일반 사람들이 속고 있는 물건 가격의 비밀을 시원하게 파헤쳐준다. 보통 사람들이 물건의 절대적인 평가에 능할 것 같지만 실은 미숙하고, 상대적인 가치 평가에도 더더욱 허술하다는 걸 깨닫게 한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격이라는 허상에 속고 있는지 알 수 있고, 물건의 가격은 경제학적 가치만으로 매겨지는 게 아니라 고도로 조작된 심리적 기법이 파고 든 가격임을 절감케 될 것이다.

"가격은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지만, 복잡한 감정의 집합을 만들어낸다. 이 감정의 집합은 이제 뇌 스캔을 통해서 눈으로 관찰되기도 한다. 상황만 달라지면 똑같은 가격이 할인된 가격처럼 보일 수도 있고, 또 바가지요금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가격의 변화가 전혀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포장 용기를 작게 만드는 것, 가격의 끝자리를 9로 맞춰 눈속임을 하는 것 등의 트릭들은 오래 전부터 애용되어 왔다. 이제 가격 컨설턴팅은 세상에서 통용되는 판촉술의 마지막 장에나 나올 법한 수법에만 머물고 있지 않다."(15쪽)

그런 감정을 최대한 끌어들이는 곳이 어디일까? 대형 초호화 백화점들이 아닐까. 이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지만 명품매장의 마케팅 기법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도 고가의 상품들 때문에 다른 모든 상품들이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처럼 느껴지게 만들도록 한다는 게 그것이다. 초고가의 핸드백들을 최고급 매장에 전시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명품들이 실제로 공급되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전시한다는 데, 그러다 보니 그보다는 좀 더 낮은 가격대의 제품을 구매하면서도 사람들이 합리적인 만족을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상술은 또 있다. 팔리지 않는 값비싼 제품이 팔리는 값싼 제품에 영향을 주도록 고안한다는 게 그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대기업 제품들이 주를 이루지 않을까? 이 책에도 나와 있듯이, 제빵기계의 가격이 279만 원이라면 사람들은 비싼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회사에서 429달러 모델을 출시하면 그 전의 가격을 더 이상 비싼 가격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그 제품들을 많이 구매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값비싼 제품을 만들어내는 이유가 그런 상술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럼 식당은 어떨까? 식당의 흐름을 주도하는 메뉴 컨설턴트들은 메뉴 품목을 '스타', '퍼즐', '플라우호스'(plowhorse), 그리고 '도그'(dog)로 분류한다고 한다. 스타는 인기 있고 이윤도 많이 남는 품목이고, 퍼즐은 이윤은 많이 남지만 인기가 없는 품목, 플라우호스는 팔아서 남는 게 별로 없는 품목, 마지막 도그는 인기도 없고 이윤도 없는 품목이라고 한다.

그런 것들 가운데 퍼즐 상품은 스타로, 플라우호스는 아예 선택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을 메뉴 컨설턴트들이 한다는데, 그건 모두 속임수라고 이 책의 저자 파운드스톤은 꼬집고 있다.  이른바 '계층화'라든지, '묶어 팔기'라든지, 가격 대신 음식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는 '이색적인 메뉴판 만들기' 등이 그것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기발한 속임수인가? 그런데 그게 음식점들뿐이겠는가? 이동통신회사들도 그런 속임수가 없을까?

"미국 자본주의에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가장 큰 속임수는 아마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일 것이다. 문자메시지의 시장 가격은 대역폭(주파수 범위, 특정 시간에 보낼 수 있는 정보량)이나 다른 기술적 혁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 가격은 소비자(혹은 그들의 부모)가 그 가격을 지불하도록 얼마나 잘 설득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휴대전화 요금을 건당으로 나누어 지불하는 경우 데이터 전송료는 메가 바이트당 1달러 정도 된다.

이런 요금 비율에서 열 글자로 된 메시지는 1000분의 1센트여야 한다. 센트 단위를 반올림하면 사실 공짜여야 한다는 얘기다. 심지어 1000분의 1센트라는 가격도 실제 문자메시지의 비용을 따져 보면 많이 내는 것이다. 따라서 휴대전화 회사들이 문자메시지에 요금을 메기는 것을 보면 엘리베이터도 없는데 엘리베이터 사용권을 파는 고등학교 심술궂은 패거리들과 다를 게 없다."(257쪽)

이 책을 읽자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물건과 제품 가격에 속으면서 살아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제품 가격은 고도로 고안된 심리적인 상술에 지나지 않는 숫자놀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이 그렇다. 이메일은 무료인데 왜 문자메시지는 돈이 드는지, 가격도 봉지 크기도 그대로인데 왜 과자 양은 줄어들었는지, 한 번 쯤 따져 묻는 이를 본 적이 있는가? 이제는 그런 것들이 부당한 가격이라고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제는 끼어 파는 것도, 원가 세일하는 것도, 할인쿠폰 행사 하는 것에도 속아 넘어가지 말자.


가격은 없다 - 당신이 속고 있는 가격의 비밀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최정규.하승아 옮김, 동녘사이언스(2011)


#공정거래#부당거래#문자메시지#묶어 팔기#마케팅 기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