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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신용카드를 1년 이상 안 쓰면 자동으로 해지될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일제히 나왔습니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신용카드사는 1년 이상 사용 실적이 없는 휴면카드에 대해선 고객의 의사를 묻지 않고 자동으로 해지할 수 있도록 표준약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금융당국이 나서서 휴면카드 자동해지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국내에서 발급되어 사용하지 않는 휴면카드가 6월 말을 기준으로 전체 신용카드(1억2000만 장)의 25%인 3300만 장에 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현재 표준약관은 소비자가 1년 이상 카드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카드사들이 3개월 이내에 문자메시지(SMS)와 이메일, 전화 등을 통해 휴면카드 사실을 알리고, 고객의 의사를 확인한 후 해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3개월 이내에 고객의사를 확인하는 현행제도가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는 고객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카드사가 자동으로 해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꾸는 것은 그동안 시행해온 고객확인 절차 때문에 휴면카드를 줄이지 못했다는 평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 제도 역시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워 보입니다. 금감원의 발표에 따르면, 전체 신용카드의 1/4에 해당되는 휴면카드는 소비자들이 꼭 필요하지 않으면서 발급 받은 카드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자동차를 구입하면서 선할인을 받기 위해서, 자주 가는 금융기관 직원의 부탁 때문에, 신용카드 회사에 근무하는 친척이나 친구의 부탁 때문에, 신용카드를 발급 받으면 나눠주는 크고 작은 경품 때문에 꼭 필요하지 않은 신용카드를 발급 받습니다.

신용카드 이미지
 신용카드 이미지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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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카드 발급 늘어나는 원인에 주목하라

따라서 휴면카드를 줄이는 가장 좋은 해결책은, 신용카드 자동해지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신용카드 발급 마케팅을 규제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대형마트나 영화관 같은 곳에 가면 크고 작은 경품을 미끼로 제휴카드 발급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이 정말 휴면카드를 줄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한다면 '1년 이상 안 쓴 카드를 자동으로 해지'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신규 발급 이후 3개월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신용카드는 자동으로 해지'되도록 하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신용카드 보급이 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포인트', '누적 거래 실적' 때문에 주로 사용하는 카드를 웬만해서 다른 카드로 바꾸지 않습니다. 신규 카드를 발급 받는 것은 순전히 카드회사의 '신규 발급 마케팅' 때문입니다.

실제로 금융당국에서도 카드사 모집인의 불법 영업행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였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불법 영업행위에 대해서는 최고경영자에게도 과태료를 물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돈으로 때울 수 있는' 과태료 처분으로는 이런 불법 영업행위를 근절시킬 수 없습니다. 불법적인 신규 발급 마케팅을 무력화시키려면 '신규 발급 이후 3개월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카드는 자동으로 해지되도록 표준약관을 고쳐버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신용카드 회사들이 이번 조치에 반대하지 않는 것은 금융당국이 연간 신규카드 발급을 전년 회원 수 대비 3%로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조치가 곧바로 휴면 신용카드의 해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그야말로 금융당국의 '기대'로만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휴면 카드 사용자를 위한 마케팅이 증가하게 될 것
 휴면 카드 사용자를 위한 마케팅이 증가하게 될 것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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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줄이려면, 제휴 혜택 통합하시라!

신용카드 회사들은 1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신용카드를 자동으로 해지하는 대신에, 1년 이상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회원들에게 카드사용을 권유하는 마케팅을 할 것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어제도 제가 사용하는 카드회사에서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았습니다. "OO카드를 2개월 연속 매월 150만 원 이상 이용시, 최대 4만5천 원 청구 할인'을 해주겠다는 메시지입니다. 물론 휴면카드 소지자들에게 이런 고액 사용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월 30만 원 이상 사용시 최대 O만 원 할인 청구' 같은 마케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신용카드 회사들이 휴면카드를 소유한 소비자들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타 신용카드 사용자를 자사 회원으로 끌어들이는 것보다는 휴면카드를 소유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마케팅을 펼치는 것이 쉬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휴면카드를 소지한 고객들은 이미 신용카드 회원으로 가입할 때, 개인정보 활용에 동의하였기 때문에 전화, 이메일, 문자메시지 등 다양한 마케팅 수단을 어렵지 않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휴면카드를 가지고 있는 소비자들은 앞으로 신용카드 회사 상담원들에게 카드 사용 권유 전화를 더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

한편, 소비자들이 지갑 속에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넣고 다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제휴 회사마다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통신요금을 할인 받는 A카드, 주유비를 할인 받는 B카드, 영화 티켓을 할인 받는 C카드를 지갑에 넣고 다닙니다.

금융 당국이 정말 신용카드 발급을 줄이고 경쟁을 줄이려면 신용카드마다 따로따로 주어지는 제휴 혜택을 한 카드로 묶어서 발급해 주면 됩니다. 아니면 적어도 관계사들끼리 묶어서 제휴혜택을 통합해도 됩니다.

최근 카드사에서 받은 카드사용 권유 문자, 휴면 카드소지자들은 이런 문자를 더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최근 카드사에서 받은 카드사용 권유 문자, 휴면 카드소지자들은 이런 문자를 더 많이 받게 될 것이다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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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해지 신청, 소비자단체에서 받으면 어떨까?

소비자운동을 하는 제가 보기엔 금융당국이 대책이라고 내놓은 휴면카드 자동해지 기간 1년은 너무 길다고 생각합니다. 신규 발급 신용카드는 3개월, 이미 사용하던 카드는 6개월로 줄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신용카드 회사들의 직권해지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이 신용카드를 쉽게 해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소비자들이 신용카드를 해지하려고 하면 카드사로부터 여러 가지 방해(?)를 받습니다.

개별 신용카드 회사 대신에 금융 당국에서 카드 해지 신청을 받아주던지, 혹은 소비자단체에 신용카드 해지 신청을 위탁하면 분명히 휴면카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소비자단체가 신용카드 해지 신청 접수(법적인 위임 절차)를 받아서 개별 소비자를 대신하여 신용카드를 해지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고친다면 휴면카드는 물론이고 불법적인 신용카드 발급 마케팅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신용카드, #휴면카드, #마케팅, #소비자, #경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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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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