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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생물과 같습니다. 시쳇말로 등장해 시대를 들끓게 하다 시나브로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 생물들의 생몰과 흡사합니다. 속담도 마찬가지입니다. 강가에 뒹구는 몽돌처럼 동글동글해 모나지 않은 것 같지만 칼돌 만큼이나 날카롭게 시대를 힐난하고 풍속을 조롱하고 하는 게 속담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의 욕설이 갈수록 심각해진다는 지적에 따라 앞으로 욕을 많이 하는 학생은 학교생활기록부 비교과영역에 기록하고, 입시 과정의 학교장 추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를 우리 속담으로 정리하면 '입이 걸기가 사복개천' 같다가는 '십 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이 될 것입니다

'십 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이 그런 뜻이라고?

'입이 걸기가 사복개천 같다'는 속담은 '말을 조금도 조심하지 않고 상스럽게 함부로 지껄이는 경우를 빗대어 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사복개천이란 고려시대에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말을 기르던 관청인 사복시 앞을 흐르던 개천을 말합니다.

요즘 말로하면 말을 기르는 목장 앞을 흐르는 개울이니 말똥과 같은 더러운 오물이 두둥실 떠다녔을 겁니다. 오물이 떠다니는 이런 개울처럼 함부로 욕(상스런 말)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 '입이 걸기가 사복개천 같다'고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공들여 해 온 일이 허사가 되는 경우를 '십 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이라고 하고 있으니 생활기록부에 욕설이 기록되어 학교장 추천 대상에서 제외되면 열심히 준비하였던 입시 과정이 허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미주알고주알 우리말 속담 표지
<미주알고주알 우리말 속담 표지 ⓒ 도서출판 한울
하지만 오랫동안 공들여 해온 일이 허사가 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십 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은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뜻과는 반대의 뜻입니다.

"십념공부나무아미타불(十念工夫南無阿彌陀佛)은 불교에서 사람이 죽어 사는 임종 시에 아미타불을 열 번 만 정성 들여 외면 어떤 중생이든지 왕생극락할 수 있다는 뜻의 무량수경에 나오는 불교 권념의 말이다. 이것을 강조하여 여기서 다시 '십념공부도로아미타불十念工夫都盧阿彌陀佛 쓰게 된 것이다.

여기서, '십념(十念)은 열 번을 왼다는 뜻이요, 공부(工夫)는 계속 외는 것(持誦)을 바르게 염하여(正念) 익힘을 뜻함이요, 도로(都盧)는 다만(但)이라는 뜻이요, 나무南無는 '귀의(歸依)'라는 뜻이요, 아미타(阿彌陀)는 무량수(無量壽)의 뜻이요, 불(佛)은 불타(佛陀)를 뜻한다." - 최창렬, <우리 속담 연구> (1999)에서 재인용(본문 43쪽)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하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십념공부나무아미타불'이 '십념공부도로아미타불'로 바뀌고 '십 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로 바꾸면서 십념이 '십 년'으로, 한자로 된 도로都盧를 우리말 부사 '도로'로 인식하면서 결국은 '오랫동안 공들여 해 온 일이 허사가 되는 경우'를 말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속담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현직 국어교사가 쓴 한국말 박물지 <미주알고주알 우리말 속담>

현재 서울 개웅중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인 박일환 선생님이 쓰고 도서출판 한울에서 펴낸 <미주알고주알 우리말 속담>은 우리가 사용하는 속담의 유래, 정확한 뜻과 시대적 배경은 물론 변천사까지를 꼼꼼히 엮고 있습니다.    

"속담은 민중의 지혜의 보고(寶庫)다. 민중들의 교양과 식견의 광맥(鑛脈)이다.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알알이 지침이 되고 깨우침이 됨으로써, 남들을 대하는 인간관계, 세상을 대하게 되는 세계관 그리고 사물을 보는 이삭이며 인식 등에 결정적인 여향을 끼치면서 그것들을 위한 길라잡이가 된다.

저자는 거시적인 망원경과 미시적인 현미경을 아울러서 속담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또 관찰하고 있다. 그로써 이 책은 역사학과 민속학 그리고 수사학 등, 인문학의 3대 영역이 멋지게 아우러진 한국말의 박물지를 엮어낸 것이다." - 본문 5쪽.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인 김열규 교수가 <미주알고주알 우리말속담> 첫머리에 쓴 '출간을 반기며'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김규열 교수는 망원경과 현미경을 이용해 속담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또 관찰하고 있다고 소개했지만, 책을 읽어보니 내시경이나 MRI, X-ray나 CT처럼 속까지 들여다보는 통찰력으로 100개의 속담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성인용품을 팔던 '동상전'을 찾은 사람들이 짓던 어색한 분위기에서 유래한 '동상전 들어갔나',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영계'를 선호했음을 보여주는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같은 속담을 해부한 내용에서는 속담에 담긴 시속을 읽을 수 있습니다.  

꿩 먹고 알 먹는 <미주알고주알 우리말 속담>

본래 '동무 따라 강남 간다'였던 속담이 '동무'라는 말이 북한에서 많이 쓰인다는 이유로 '동무'가 '친구'로 바뀌어 '친구 따라 강남 간다'나 '벗 따라 강남 간다'로 바뀌는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100개의 속담으로 엮은 <미주알고주알 우리말 속담>는 우리나라의 근대사 까지를 두루두루 투영하고 있습니다.   

모르고 있던 속담은 알게 되고, 잘못 알고 있었던 속담은 제대로 알게 됨은 물론 속담의 유래와 변천사까지를 꿰뚫게 되니 <미주알고주알 우리말 속담>을 읽는 거야 말로 우리 속담을 제대로 알고 사용하게 해주는 '일거양득一擧兩得'으로 '꿩 먹고 알 먹는 일'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미주알고주알 우리말 속담>|박일환 지음|한울 펴냄|2011.9.15|17,000원



미주알고주알 우리말 속담 (반양장)

박일환 지음, 한울(한울아카데미)(2011)


#속담#미주알고주알#박일환#개웅중학교#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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